엄마의 편지 02
산들아.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구나. 아침 햇살 속에, 사그리다 파밀리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는 순간, 그동안 엄마가 가졌던 불안과 두려움이 모두 사라졌단다.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날아갔어. ‘아, 어쩌면 하느님이 널 지켜줄 수 있겠구나.’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생겨났단다. 이게 엄마의 마음인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도 말리던 바르셀로나에서 1박을 한 후 생장으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정말 불안했단다. 네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우리가 함께 여행한 바르셀로나. 그곳은 온갖 방법으로 여행객들을 후려치는 소매치기로 유명한 도시잖니. 그래서 엄마는 더 걱정이 되었지. 게다가 밤 11시쯤 공항에 도착해서 혼자 바르셀로나 시내로 간다니 더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사그리다 파밀리아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네 사진을 본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 어떤 이유에선지 아직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 산들이는 더 이상 내가 걱정하고 돌봐야 할 아이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동안 내가 너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는 어엿한 성인인 네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생각도 들고.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었어.
그러면서 딱 10년 전에 너랑 스페인 여행했을 때가 떠오르더라. 그때 우린 참으로 용감했다고도, 무모했다고도 할 수 있지.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 너는 화상을 입었어. 뜨거운 곰국을 둘러쓰는 바람에 왼쪽 팔의 피부가 홀라당 벗겨졌지. 그런데 엄마는 정말 어리석게도 네가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기보다 ‘아, 이제 여행은 어쩌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도 같아. 그만큼 엄마는 철이 없었던 거야.
“산들아, 화상을 입어서 여행 갈 수 있겠나?”
“엄마, 그래도 여행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힘들지 않겠나?”
“응, 팔에 화상을 입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만약, 다리에 화상을 입었으면 걷지도 못할 건데, 다리가 아니라서 괜찮잖아. 그리고 손이었다면 움직이지 못했겠지만, 손이 아니고 팔이니까 좀 더 자유롭잖아. 또 오른팔이 아니고 왼팔이라서 더 다행이지.”
“와, 그런 생각을 다 했다니. 산들이가 참 대견하다.”
“엄마, 부산에 있으면 날씨도 더운데, 화상 입어서 수영장도 못 가고, 차라리 여행을 하면 아픈 것을 잊을 것 같아.”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지. 여행하면서 별로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칭얼거리지 않는 너를 대견하다고만 생각했던 엄마가 미안하기만 하다. 그때 못한 소리를 지금이라도 해주고 싶다.
“산들아.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엄마가 미안해.”
한편으로는 우리의 여행이 가능했던 것은 아빠의 힘이기도 했어. 아마도 다른 아빠들 같았다면 여행을 떠나지 못했을 거야.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침을 맞아가면서 치료를 하고 또 팔에 침을 꽂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아빠 덕분이지. 그래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셨지.
네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네 모습에서 아빠를 본다. 그래서 엄마는 좋아. 네가 아빠를 닮아서. 나한테는 부족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모습 말이야. 가우디의 건물을 보며 완벽해지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대견하다. 아빠가 있었더라면 네게 해주었을 말을 엄마가 대신한다.
“산들아, 좀 모자라도 괜찮아. 천천히, 천천히 가도 괜찮아. 너는 타고난 긍정적인 아이니까 뭐든 잘 해낼 거라고 믿어.”
2005년의 스페인 여행 앨범을 꺼내 본다. 초등학교 3학년인 너는 정말 예쁜 아이였지. 23일 동안 매일 팔에 침을 꽂고 붕대를 감고 다녔는데도 찡그리지 않던. 거의 한 달을 우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부터 시작해서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었지. 가우디 공원에서 만났던 한국인 아저씨가 반갑다고 붕대 두른 네 팔을 두드리는 바람에 침에 찔린 네가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도 기억난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구나. 매일 아침 먹던, 걸쭉한 초콜릿에 찍어 먹던 추로스, 올리브 오일을 잔뜩 바른 하몽 샌드위치, 저녁으로 먹던 빠에야며 매일 저녁 마시던 상그리아. 바르셀로나는 음식으로도 기억되는구나.
그리고 가우디의 작품들. 길거리의 가로등이며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네 혼을 쏙 빼놓았던 젤 리가 가득하던 알폰소 시장 등 곳곳을 잊지 못하겠구나. 그때의 기억들이 또 너를 그곳으로 불렀다고 생각하니 너를 데리고 떠났던 엄마의 무모한 여행이 그저 한 순간의 즐거움으로만 흘러가 버린 것은 아니었던 듯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스무 살의 너에게 바르셀로나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열 살의 스페인을 추억하며 스무 살의 스페인을 만나는 너에게 옛 여행 사진을 보낸다. 그 길에서 너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구나.
산들.
너의 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