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의 첫 도시, 생장

산들의 편지 02

by 살아 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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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드디어 생장이야. 오늘은 정말 이동하는데만 진이 다 빠졌어. 바르셀로나에서 사라고사까지 기차를 타고, 또 그곳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서 팜플로나로,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생장에 도착했어. 팜플로나에서 생장으로 가는 길에 론세스바예스를 지나쳤는데, 거기서부터 생장까지는 정말이지 계속 내리막길 이더라고. 그래서 내일이 걱정되기도 해. 내일이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첫출발이잖아. ‘내일은 하루 종일 오르막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생장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순례자 사무실에 순례자로 등록한 일이었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사무실로 찾아갔어. 내가 앞으로 걸을 길이 표시된 지도, 알베르게 정보들, 순례자 여권. 그리고 예쁜 조가비 하나를 가방에 달고 나니 정말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어. 생장은 대체로 순례자들이 처음으로 출발하는 도시라서 숙소도 많고 가게도 많아. 순례자 등록을 하고 숙소를 알아보는데, 버스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립 알베르게는 이미 다 찼고 사립 알베르게만 남아있었어. 그래도 오늘 잘 곳이 있어서 다행이야. 아쉽게도 아기자기한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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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기 전, 엄마랑 같이 봤던 영화 <나의 산티아고>에서 보면 주인공이 순례에 필요한 모든 걸 생장에서 사잖아. 예쁜 지팡이, 물병, 그리고 조가비까지. 나도 그러려고 했지만 가게는 닫혔고, 또 하루 종일 버스를 탔기 때문에 피곤해서 동네를 돌아볼 생각을 못 했어. 그저 숙소에 가방만 내려놓고 저녁을 먹었지.


생장은 순례자들의 첫 출발지라 그런지 숙소의 주인이 여러 가지를 설명해줬어. 다른 순례자들도 마치 신입생이 첫 오리엔테이션을 듣듯, 다들 긴장한 듯 설레는 표정으로 주인아저씨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어. 아저씨 말로는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대. 카를로스 길과 나폴레옹 길. 카를로스 길은 좀 쉬운 길이지만 경치가 별로라서 추천하지 않는대. 그래서 좀 험하지만, 경치가 아름다운 피레네를 정면으로 넘어가는 나폴레옹 길로 가기로 했어. 눈이 내리는 겨울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나폴레옹의 길을 택한다고 하더라고.


몇 시에 출발하려고 하냐고 묻는 아저씨한테 “8시쯤?”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거야. 6시에는 출발해야 내일 제때 도착할 수 있을 거래. 이번 여행은 혼자인 만큼 아침에 늦잠 자지 말고 잘 일어나야 할 텐데. 벌써부터 미션을 받은 느낌이야. 내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아저씨가 “피레네를 넘으려면 얼마나 힘들다고. 26킬로를 걸어야 하니까 일찍 가야 해. 그리고 물 적게 먹으면 탈수증 걸릴 수 있으니 목마르지 않아도 미리미리 물을 충분히 먹어주어야 해.” 라며 초보 순례자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셨어. 정말 아무 준비 없이 온 나는, 덕분에 긴장도 좀 했어.


그래도 사실 긴장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커. 하지만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얼른 자야 할 것 같다. 이 곳 알베르게는 항상 여러 명이 같이 자기 때문에,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면 민폐 순례자가 될 것 같아. 나는 내일 열심히 걷고,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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