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멋진 일이 찾아올까요?

엄마의 편지 04 (2)

by 살아 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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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하니 엄마 역시 네 어린 시절을 더듬고 싶었단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의 네 육아일기를 몽땅 꺼내와 읽어봤어. 지금 보니 너무너무 재미있더라고. 24권이나 되는 것을 읽느라고 밤을 꼴딱 새웠단다. 길을 걷다 보면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에 매혹되어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지만, 문득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 오늘 엄마가 딱 그랬어. 일기장 속에 담긴 네 어린 시절이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웠어.


네가 어렸을 때, ‘7번가 피자’에서 피자 배달을 시키면 공짜 쿠폰이 따라왔잖아. 운 좋으면 음료수나 스파게티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동전으로 쿠폰을 긁는데, ‘다음 기회’라는 문구가 나온 거야. 너는 박수를 치며 “엄마. 다음 기회에 얼마나 멋진 일이 우리를 찾아올까요?”라고 하는 거야. 황홀한 표정으로. 그때 엄마는 네 말에 감동해서 눈물까지 흘렸잖아.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거든. 일기장을 읽다 보니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더라. 이번 여행길에 어린 날의 네가 기다리던 멋진 일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어린 날의 네 모습이 담긴 일기 몇 편 보낸다.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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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1일 월요일, 만 28개월 20일


어린이집 미연 샘의 일기

산들이는 오늘 자랑할게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나누어 먹은 ‘오디’부터 선글라스 달린 모자, 새 신발 등을 출근하는 선생님들에게 모두 자랑하고 등원하는 엄마들께 열심히 보고대회를 열었습니다. 영원한 라이벌 경빈이와 나들이 나가기 직전 심하게 싸워 야단을 맞고 벌을 섰습니다. 둘 다 화가 가라앉지 않아 많이 울었습니다. 나들이 나가서는 모든 것을 잊고 바위를 오르락내리락, 소각장 안에서 집짓기 놀이 등을 하며 잘 놀았습니다. 밥 먹고 마당에서 놀았는데 어느새 경빈이와 사이좋게 모래를 컵에 담았다 쏟았다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또 싸우긴 했지만 오전처럼 심하진 않았습니다.


집에서 엄마의 일기

엄마가 맞아도 아프기만 한 산들이의 손때에 경빈이가 아팠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엄마, 아빠와 달리 산들이는 왜 그렇게 거칠기만 한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시끄러운 음악을 많이 들어서 그런 걸까요? 사물놀이 음악을 자주 들었거든요. 안 씻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10시가 조금 넘어서 목욕을 하고 머리도 감았습니다. 잠이 오니까 개운하게 씻는 것이 좋은 모양이지요. 목욕 후 큰 수건으로 감싸고 앉아있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선 “아이 추워!”하면서 웅크리고 있지요. 요즈음은 자기 전에 ‘섬 아기’ 노래 불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 밤에도 열 번은 넘게 불러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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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31일, 만 40개월 19일


어린이집 미연 샘의 일기

더운데 카디건까지 걸치고 나들이를 나가더니 골목길에서 벗겠다고 했습니다. 점옥 샘이 “그래, 그냥 벗고 나오지 왜 입고 나왔노?” 했더니 카디건을 엉덩이에 두르며, “이렇게 묶으면 예쁘잖아.”라고 했습니다. 나들이 내내 엉덩이에 옷을 둘렀다 목에 둘렀다 하며 멋을 부렸습니다. 서영이와 돌아다니며 종이컵에 흙과 장미꽃잎을 섞어 산들이는 주스, 서영이는 약이라며 미연 샘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장미가시로 코뿔소의 코를 연출하는 게 대유행이어서 산들이도 코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점옥 샘, 미연 샘이 나무 위에 올라가 버찌를 따는데 산들이는 큰 목소리로 “여기 있네. 바로 앞에.”하며 버찌 위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손이 안 닿는 곳인데도 “바로 앞에 있네.”하고 채근을 했습니다.


집에서 아빠의 일기

엄마가 조금 늦겠다고 해서 산들이는 아빠 서예원에 왔습니다. 배가 고픈지 냉장고 점검부터 했습니다. 먹을 게 없자 아이스크림 타령을 했습니다. 동전을 챙겨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오자 한 10분간은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뚝딱 하더니 사탕 타령을 했습니다. 한 개만 먹기로 하고 하나를 주었는데, 나중에 다시 사탕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까 한 개 먹었으니깐 안돼.”라고 해도 거짓 울음을 울어가며 보챘습니다. 시작했으면 이겨야 된다는 전략으로 버티는데 엄마가 오면서 사온 『만희네 집』 그림책을 보여주자 정신이 그리로 쏠렸습니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며 산들이는 사탕을 잊었습니다.



2000년 6월 1일, 만 52개월 20일


어린이집의 일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아이들도 실내에서 놀자고 하여 나들이를 가지 않고 어린이집에서 놀았습니다. 오늘은 순아 샘 마지막 출근 날이자 새로 오신 한상진 선생님이 처음 온 날이라 전체 모임 때 인사를 하고 내일부터 못말리는반 보조를 하기로 하셨습니다. 오전에는 2층에서 순아 샘 환송회 준비로 색종이 꾸미기, 편지 써서 비행기 만들기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순아 샘의 마지막 수업으로 동화를 읽고 순아 샘 퇴직하면서 아이들에게 선물로 사 온 다기세트를 가지고 쑥차를 한 잔씩 했습니다. 산들이는 다도를 하면서 설명을 하자 많이 봤는지 계속 “나도 안다.” 그러더니 차 마시면서 엎질러 놓고는 자기도 조금 미안했던지 쑥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집에서 엄마의 일기

소라 죽을 끓여서 산들이도 먹고 온천동 할아버지께도 갖다 드리자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많이 먹었지만, 산들이는 조금밖에 못 먹어봤다.”라며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산들이 먹을 것도 남겨뒀으니 갖다 드리자.”라고 했는데 그래도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며칠 전 할머니 댁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을 생각해내고 “아, 난 아이스크림 먹으면 되겠네.”라며 가자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빨리 가자고 졸라대었지요. 산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입니다. 잠도 오고,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고, 그래서 가기 싫어도 억지로 갔는데 가는 길에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할머니 댁 조금 못 미쳐서 보니까 앉아서 졸고 있더군요. 누워서 자라고 했더니 나중에 깨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올 때까지 잠을 자서는 집에 돌아온 지금도 자고 있습니다. 지난밤에 늦게까지 있다가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가는 바람에 잠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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