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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Feb 01. 2021

국경을 넘는 상상

낯선 곳을 향하는 설렘과 긴장이 있는 곳

‘다른 언어, 다른 화폐, 다른 유심 카드…….’     


국경을 넘는 순간은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을 선물 받는다. 세계 곳곳의 국경이 닫히고 나라 밖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 오래되면서 그동안 숱하게 넘었던 ‘국경’에서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유럽, 중앙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이웃 지방에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통과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거부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따르기도 했다.      


여권과 비자만 있다면 국경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우리나라 여권 파워는 세계 2위여서 무비자로 188개국을 여행할 수 있다. 그만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행 전에 그 나라의 비자 정책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국경에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에피소드 1. 국경에서 버려진다고?     


2014년 1월 중남미를 여행할 때다.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카리브해의 낙원으로 알려진 칸쿤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타야 했는데, 항공료는 비쌌고, 버스 이동은 만만치 않았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처지라 결국 버스를 타기로 했다. 55시간이나 걸리는 버스여서 세 번을 환승해야 했고, 국경을 두 번 통과해야 했다. 과테말라와 멕시코 사이의 작은 나라 벨리즈를 경유하는 여정이었는데, 벨리즈는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 여행자에게 비자를 요구했다. 여행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국경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비자 발급 시간이 오래 걸려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출발 전에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과테말라시티로 가야 했다. 과테말라시티는 “걸어 다닐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안이 불안한 곳이었다. 그래도 벨리즈를 통과하려면 별수 없이 그곳에 있는 벨리즈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비자를 발급받았다.      


55시간의 여정을 함께할 15명의 여행자들이 모였다. 몇몇 구간은 대형 버스가 아닌 벤을 타야 했다. 불편한 자리와 편한 자리가 나뉘는 벤을 탈 때면, 서로 번갈아 자리를 교체하며, 즐겁게 달렸다. 과테말라에서 벨리즈로 입국하는 국경에 도착해서야 버스에서 내렸다. 기지개를 켜고 몸을 풀며 출국 수속을 준비했다.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비자를 발급받지 않고 여정에 합류한 한국인 여행자가 있었다. 이 여행자는 여러 여행 블로그에서 미리 경고한 말을 뒤로한 채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요량으로 왔다고 했다. 이미 비자를 받은 나와 딸,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 유럽,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문제없이 벨리즈로 입국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안티구아에서 육로로 칸쿤까지 이동. 버스를 세 번 환승하고, 55시간이나 걸리는 힘든 여정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비자 발급이 한나절이 걸린다고 했다. 운전사와 다른 여행자들은 그녀를 남겨두고 떠나려고 했다. 비자를 준비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잘못이어서 그들이 그녀를 기다려야 할 의무는 없었다. 문제는 출입국관리사무소만 있는 국경은 허허벌판이었고, 국경을 통과하는 다른 버스가 없었기에, 우리가 떠나버리면 그녀는 꼼짝없이 국경에서 하룻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었다. 한국인 여행자는 영어가 서툴렀다.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녀를 두고 떠날 수 없어서 내가 나섰다. 운전사와 다른 여행자를 설득하고, 출입국사무소의 직원들에게 부탁하고, 애원하고, 재촉했다.     


“진, 네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애를 써? 그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같은 버스에 탄 외국인 친구들은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의사소통도 제대로 못 하는 한국인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결국 한 사람 때문에 열다섯 명의 발이 국경에서 묶였다. 비자는 세 시간 만에 발급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국경에서 지체한 시간 때문에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할 여행자들이 연결 버스를 놓친 것이다. 국경 대신 버스터미널에서 밤을 보낸 사람이 생겼다. 선한 마음으로 그녀를 도왔지만, 피해가 다른 여행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 셈이다. 가끔 그 순간을 돌이켜본다.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일은 없었겠지만, 황량한 국경에, 한 명의 여행자를 덩그러니 두고 오기는 힘들었다. 비자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나뿐 아니라 다른 여행자에게도 피해를 입힌다는 것을 실감한 경험이었다.      


에피소드 2. 지도에 왜 타이완이 없지     


2018년에 육로로 실크로드를 여행할 때다. 국경에서 여행자는 물건을 압수당하기도,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억류당할 수도 있는 약자라는 것을 경험했다. 중국 시안을 출발해 실크로드를 여행한 후 신장위구르 지역인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가는 국제 열차를 탔다. 다섯 량짜리 기차로 33시간을 달리는 여정이었다. 승무원 다섯 명과 여행자 8명만 탑승하고 있었기에 기차 안에서는 승무원, 여행자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사이의 국경에서 열차가 멈춰 섰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여행하면서 기차로 국경을 넘을 때는,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유로웠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까다로운 출국 수속을 받아야 했다. 다섯 번에 걸친 심사였다. 입국이 아닌 출국 수속인데도 말이다.      


우선 기차 안에서 세 번의 검사를 받았다. 공안 요원이 먼저 여권을 검사했다. 다음에는 다른  공안 요원이 와서 수하물을 검사했다. 작은 가방부터 큰 가방까지 모든 짐을 일일이 검사했다. 검사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공안 요원이 와서 전자기기와 책을 검사했다. 여행자가 지닌 책을 한 권씩 펼쳐서는 어떤 내용인지 물었다. 그런 다음 휴대폰과 노트북을 검사했다. 공안 요원이 가지고 온 기기를 노트북에 연결해서 사진 폴더, 동영상 폴더를 열어 확인했다. 한 번도 그런 검문을 경험해 본 일이 없던 터라 깜짝 놀랐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나 군사 지역을 찍은 사진과 영상은 삭제한다고 했다.      


중국을 여행하며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모두 외장 메모리카드에 옮겨놓았는데, 다행히 공안 요원이 메모리 카드를 발견하지 못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여권과 수하물, 전자기기까지 검사를 한 터라 심사는 모두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출국심사가 시작되었다. 검사가 끝난 수하물을 몽땅 기차 밖으로 들고나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국 수속을 받아야 했다. 여행자뿐 아니라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국제열차의 승무원은 모두 카자흐스탄 인이었는데, 여행자와 똑같이 긴장하며 심사받는 장면을 보니,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승무원과 여행자들은 모두 사진을 찍고 지문 등록을 해야 했다. 출국장에서 지문 등록이라니!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짐을 풀어서 일일이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 중국 편’이 문제가 되었다.  

   

“지도에 왜 타이완이 없지?”     


생각도 못한 질문이었다. 여행 책자의 첫 페이지에 중국 지도가 있었는데, 지도 속에 타이완이 없었다. 타이완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이기에 여행 책자에 타이완이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지도 때문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억류될 수도 있는 일이었고, 다음 입국이 거절될 수도 있었다. 결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여행 가이드북을 압수했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총 세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불평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짧은 시간에 통과한 것이었다. 버스로 국경을 통과한 여행자 중에는 국경에서 8시간이나 붙잡혀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역 아라산커우 국경역

    

에피소드 3. 사과 상자 대신 사과 한 알     


2018년에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때다. 중앙아시아는 ‘땅’이라는 의미의 ‘스탄’으로 끝나는,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된 나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그래서인지 각 나라마다 고유 언어와 러시아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고, 문화도 비슷해서 언뜻 보아서는 국가 간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국경을 넘는 일 역시 마치 이웃 도시로 볼일 보러 가는 것 같았다. 실제로 현지인들 중에는 집은 키르기스스탄에, 직장은 카자흐스탄에 있는 경우도 있어서 국경을 넘는 일이 일상인 사람도 있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은 여행자들에게 친절했다. 대체로 사무적인 말만 건네는 다른 곳의 국경과 달리, “우리나라가 어땠어요? 좋았어요? 음식은 맛있었나요?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같은 여행 소감을 물어오는, 인간적인 친밀감도 보내왔다. 입국장에서도 “환영해요.”라는 말로 맞아주어서 국경을 넘는 긴장감 대신 따뜻한 환대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파미르 하이웨이 구간은 달랐다. 키르기스스탄의 오쉬에서 타지키스탄 두샨베에 이르는 1200km의 파미르 하이웨이를 통과하려면, 파미르 통과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고, 곳곳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친구들과 나는 아미타가 운전하는 차량을 빌려 10일간 파미르 하이웨이를 여행했다. 검문소가 나올 때면 아미타는 어쩐 일인지 우리를 차에 남겨 두고 혼자서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나오곤 했다. 알고 보니 파미르 고원의 검문소는 뇌물을 요구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여행자를 이유 없이 오래 붙잡아 두기 때문에 운전사는 검문소에 약간의 뇌물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파미르 하이웨이를 빠져나와 두샨베로 들어갈 때 거쳐야 하는 검문소는 뇌물을 요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두샨베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에 있는 검문소여서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파미르를 빠져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미타가 여권과 파미르 통과 비자를 가지고 검문소 안으로 들어간 지 한참 만에야 나왔다. 아미타가 수속을 마치고 나올 때 군인 한 명이 따라 나왔다. 싱글벙글한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 군인은 검문소 앞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서 차 안에 있는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때까지도 영문을 몰랐던 우리는 “Thank you!”를 연발하며, 군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냈다. 친절한 군인이라고도 말했다. 나중에야 아미타로부터 진실을 전해 들었다. 아미타에게 뇌물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군인이 우리에게 사과를 준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 도로라고 알려진,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파미르를 빠져나오는 곳. 파미르 하이웨이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검문소 앞 사과나무의 숨은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쉬에서 두샨베까지 1200km에 달하는 파미르 하이웨이 경로


에피소드 4. 신발을 들고 모두 내려야 한다고?     


코로나로 인해 매일 아침 출근할 때면 소독물에 신발을 적시고 학교 건물로 들어선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소독물에 발을 담글 때면 아프리카에서 국경을 넘나들 때가 떠올랐다. 황토색의 붉은 땅, 시리도록 파란 하늘,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횡단하던 코끼리가 눈에 아른거렸고, 국경이 닫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우리와 달리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2019년 1월 한 달간 잠비아에서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를 거쳐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여행했다. 영국과 독일에서 온 친구들과 트럭을 타고 한 달 정도 여행했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하면, 국가 간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국경의 출입국관리소에서 출입국 도장을 받을 때에야 또 다른 나라로 이동했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그런데 보츠와나에서 나미비아로 이동할 때는 국경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신발 소독이었다.      


“신발을 몽땅 들고 내려야 해요.”     


신고 있는 신발뿐 아니라 다른 신발도 몽땅 들고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의아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보츠와나에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많다. 코끼리의 고향이라 불리는 초베 국립공원, 오카방고 삼각주와 모레미 야생보호구역에는 코끼리와 사자, 치타, 하마, 들소, 기린, 영양, 자칼, 하이에나, 악어, 수달, 얼룩말이 자유롭게 다녔다. 그래서 여행자의 신발에 묻은 동물의 배설물이나 오염물이 어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있다. 보츠와나에서 나미비아로 가는 국경과 검문소에서는 동물의 배설물이나 오염물질에 의한 전염병이 다른 나라로 전파될 것을 우려해 신발을 소독하게 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는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보니 그때의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짐바브웨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여행한 경로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한 노매드 트럭킹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 가는 길도 막혀 있어서 국경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일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가까운 과거에만 해도 길은 중국으로, 러시아로 이어졌고, 마음만 낸다면 유럽까지 갈 수 있었다.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로만이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낯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설레는 일도, 두려운 일도 있어서 언제나 즐거움과 긴장이 함께 한다. 지금은 집 밖으로 나가기도 꺼려지는 때라, 여행은 꿈도 못 꾸지만, 언젠가 넘을 수 있을 국경을 상상하며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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