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아 숨쉬는 그녀 Feb 09. 2021

그녀에게 미소를 보낸 이유

코카서스에서 만난 히치하이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만든 요리를 떠올렸다. 파를 송송 쓸고, 마늘을 다지고,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 간장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낸 가지나물, 전분 가루를 살짝 묻혀 튀겨서 양념한 어향 가지, 달콤하고 짭조름한 간장물이 밴 가지 절임…‥. 올해는 참으로 다양한 가지 요리를 즐겼다. 요리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가지 요리처럼, 글이 주는 재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기분에 따라,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요리가 다르듯 글이 주는 재미도 다를 것이다.      


2018년 조지아 여행에서 히치하이커와 마주치며 썼던 글을 올려 본다. 여행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혼자서, 또 어떤 이는 친구와, 또 어떤 이는 여럿이 떠나는 여행을 선호할 테다. 왁자지껄한 시장을 찾거나, 조용한 서점을 찾거나 알려진 미술관을 찾거나.... 여행이 즐거운 건,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네 번이었다. 그녀와 마주친 것은. 

조지아의 쿠타이시와 주그디디, 메스티아와 가까운 길목에서. 그리고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트래킹을 떠나던 날 아침에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녀는 히치하이커였다.      


“미국 한 달 여행비용으로 800밖에 달러 안 썼대요. 그게 말이 돼요? 도무지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정말 저예산으로 여행했는데, 교통편은 모두 히치하이크로 해결했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난 여행 친구 김훈 씨가 자신이 만났다던 히치하이크 여행자, 터키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같은 경험을 했다. 히치하이크 여행자를 만난 것이다. 코카서스 산맥 초입 마을 메스티아로 향하는 미니버스가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경유지 쿠타이시에 들렀을 때였다.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접어드는 도로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자기 몸만 한 큰 배낭을 뒤로 메고, 작은 가방은 앞으로 멘 채 도로에 서 있었다. 그 길목에 서 있는 여행자라면 당연히 트래킹을 위해 떠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운전사는 속도를 늦추어서 그녀를 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 버스를 외면했다.      


‘아니, 이 길에서 이 버스를 안 타면 어디로 간다는 말이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주그디디에서 그녀와 또 마주치기 전까지는. 이번에도 그녀는 도로 위에 서 있었다. 내가 탄 버스가 그녀보다 먼저 출발했는데, 어떻게 그녀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불현듯 ‘아, 히치하이커로구나. 히치하이크로만 여행하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메스티아로 가는 길목에서 또 그녀를 발견했다. 나뿐 아니라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눈길도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나처럼 그들 역시 그녀가 의아했던 모양이다. “아니, 쟤는 뭐야?”라는 웅성거림도 들려왔다.      


여행길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어떤 이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도시나 국가 간 이동을 비행기로만 하고, 또 누군가는 육로로만 국경을 통과한다. 기차만 이용하는 사람, 버스 여행을 하는 사람, 자전거로만 다니는 사람, 짧은 시간에 많은 도시를 둘러보는 사람,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사람 등.     

조지아. 메스티아 트래킹에서 만난 여행자들

 

지난번에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가는 국제열차를 탔을 때 만났던 일본인 친구는 기차로만 여행한다고 했다. 기차가 없는 구간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대체로 기차만 이용한다던 그는 기차역을 지나치는 순간이면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를 들었다. 기차가 역을 떠나는 순간, 역에 들어가는 순간, 역 주변의 풍경,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기차역이 가까워지면 미안하다며 이야기를 중단하고 창가에 달라붙어 서서 카메라를 들이대곤 하던 그가 기억에 남는다. 우루무치에서 만났던 호주 할머니는 지도를 가지고 다녔다. 그녀는 모바일에 의존하지 않고 지도를 이용해 여행한다고 했다. 정말이지 큰 지도를 들고 다니며 일일이 자신이 다닌 길들을 표시하고 기차가 달리고 있는 구간도 지도에서 찾곤 했다.     


“제가 좀 구식이지요. 그래도 저는 지도를 보며 여행하는 것이 좋아요. 저는 딸들이 네 명인데 가끔 그 애들이랑 여행하다 보면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서 싫어요, 뭐든지 그 애들이 다하니. 저는 좀 느리잖아요. 그 애들은 내가 몇 시간씩 걸려서 하는 일을 순식간에 해낸다니까요. 난 그런 여행이 좀 재미가 없어요. 나를 표현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래서 혼자 하는 이번 여행이 좋아요.”     


알마티에 도착했을 때, 호주 할머니는 시내까지 걸어서 가겠다고 했다. 지도를 보더니 오래 걸리지 않는다며, 기차역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택시기사들을 따돌리고 유유히 걸어갔다. 나중에 알마티의 한 등산로에서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그 아침에 두 시간이나 걸어서 시내로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와 커피 한잔을 하고 헤어져서도 그녀는 걸어서 산길을 내려갔다. 우리가 로프웨이로 단숨에 내려간 길을. 물론 한 손에는 지도를 쥐고서.     

우루무치에서 알마티까지 함께한 친구들


거의 3년째 세계여행 중인 김훈 씨는 비행기로 움직인 우리 일행과 헤어져 카스피해를 배로 넘었다. 순식간에 이동한 우리 일행과 달리 그곳 항구에서 배가 떠나기를 기다리며 며칠을 보냈다.      


“부정기선이어서 배가 매일 출발하지 않아요. 언제 배가 출발할지 몰라서 무작정 기다려야 해요. 그래도 배로 카스피해를 넘고 싶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카스피해에 가득한 유전을 보고 싶거든요.”     


그가 카자흐스탄의 악타우에서 출발해 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도착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경로였다. 여행자들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여행을 한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 걷는 사람, 추운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사람,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편안함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등 저마다 여행 스타일은 다르다.      

파미르 고원. 무르캅 근처 4775m 산을 오르는 길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째로 그녀와 마주쳤을 때, 나는 어쩐지 그녀가 히치하이크에 성공해서 메스티아의 어딘가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그저 길에 서 있던 그녀의 곁을 몇 번 스쳤을 뿐인데도 그녀는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메스티아의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그녀의 안부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음날 트래킹을 나서던 아침에 나는 그 아가씨와 마지막으로 마주쳤다.     

 

‘와, 그녀가 히치하이크에 정말 성공했구나. 나처럼 어제 메스티아에 도착했나 보네.’     


마치 내가 과제를 해결한 것처럼 기뻐서 그녀를 보자마자 웃음을 건넸다. 그녀도 나에게 웃음을 건넸다. 아마도 그녀 역시 몇 번씩이나 나와 눈이 마주쳤기에 나를 알아봤으리라. 여전히 배낭을 앞뒤로 멘 아가씨는 부지런히 자신의 앞에 서는 차를 향해 자신의 목적지를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며칠에 걸린 트래킹으로 도착할 우쉬굴리로 자신을 태워 줄 차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빠르게 또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숱한 노력을 통해 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에게 히치하이크는 어떤 의미일까? 50이 넘은 나이에 배낭여행을 위해 휴직계를 내고 온 나나, 히치하이커 그녀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씩 자기 가슴속에 품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남들에겐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어쩌면 해결하지 못한, 꼭 해내고 싶은 무언가 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상을 벗어나 낯선 세계로 걸어 들어간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내 마음이 그녀에게 미소로 전해졌을 것이다.     


여행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인생에 한 번은 자기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이런 일을 가슴 한구석에 밀쳐두고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지금 자라나는 내 딸들 세대도 그러할 테고. 언젠가 가슴 깊이 감추어둔 열정을 쏟아낼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에게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밀 어보라고. 괜찮다고.      


“그래도 나는 노래를 불렀어요. 나는 가수이지요. 아무도 나를 가수가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할 거예요.” 

 

유명한 음치 성악가였던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 ‘플로렌스’에서 주인공이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가진 후 한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낸,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실천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관계없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두 달 넘어 낯선 길을 떠돌고 있는 나 역시 같은 이유가 아닐까?      


조지아. 메스티아 트래킹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여행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