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화파
베네치아 화파의 영향
14세기 베네치아 미술은 지역적인 조건으로 인해서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15세기에 들어서는 색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향을 갖게 되었으며 성기 르네상스 때에는 선을 중심으로 하는 피렌체 화파와 확실히 구분되는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베네치아 화파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15세기 후반까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주역이었던 피렌체가 1494년 메디치 가문의 추방과 1498 도미니크 수도사 사보나롤라(1452-1498)가 화형을 당하는 등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그 세력이 약화되면서 당시의 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발전을 위한 절대적인 후원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비록 1512년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 전처럼의 주도적인 힘을 발휘하진 못 했다. 그 반면 베네치아는 정치와 경제적인 안정으로 기존의 봉건귀족들에 의한 미술작품의 주문이 계속되었고, 결국 이들의 강력한 후원은 베네치아 미술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베네치아 화파는 벨리니 일가로부터 시작된다. 죠반니 벨리니(1430-1516)는 아버지 야코포 벨리니와 형 겐틸레 벨리니가 기초를 이룬 초기 양식에 보다 발전된 자신의 양식을 가미하여 흔히 말하는 베네치아 화파의 틀을 잡았다. 이들은 기존의 인체와 주변 사물과의 경계를 명확한 선으로 표현했던 것을 색의 변화로 이 경계선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로 인해서 마치 서로의 경계선이 물고 물리어 자연스럽게 섞이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되었다.
또한 이전까지 그림 뒷 배경의 처리로 중요시되어왔던 정확한 원근법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의 표현은 더 이상 이들의 중심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고 색의 명암으로 분위기를 강조한 그림을 완성했는데 특히 그림의 분위기를 더욱 잘 살리기 위해서 그때까지 흔히 사용되어왔던 흰 종이 위에 스케치를 하는 대신에 푸른색 종이(Catra azzyrra)를 사용하기도 했다.
죠반니 벨리니, <레오나르도 로렌단 총독 초상화>, 1501/05, 캔버스에 유화, 61,5 x 45 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당시의 벨리니의 명성은 실로 엄청났다. 듀러는 그의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1506-07) 기간 중 친구에게 쓴 편지에 벨리니는 '최고의 화가'라 칭하기도 했다. 이 벨리니 일가의 뒤를 이어서 이 화파의 정점을 이룬 인물이 죠르죠네(1477/78-1510)와 티치안이었다.
그들은 벨리니의 밑에서 함께 그림 공부를 했으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후 레오나르도의 그림을 연구하여 자신들만의 양식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비록 죠르죠네의 작품 활동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영향은 벨리니의 후기 작품이나 티치안의 그림에서 여실히 들어 난다.
죠르죠네, <악천후>, 1505, 캔버스에 유화, 82 x 73 cm, 아카데미 갤러리, 베네치아
죠르죠네는 자연과 인물의 관계에 있어서, 자연은 단지 인물을 뒷받침 해 주기 위한 배경으로만 다루어졌던 이전까지의 해석과는 달리 '자연'그 자체를 주된 데마로 설정하였다. 아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림의 대부분의 공간을 자연(풍경)이 차지하고 있다. 푸르스름한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사이로 악천후의 징후인 한 줄기 섬광이 드리워져 있다. 인간의 형상은 더 이상 관심의 주된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들에게서 인간은 단지 대 자연을 이루는 일부분일 뿐이었다.
이 '베네치아 화풍의 색채'는 시간을 거치면서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죠르죠네의 색채, 즉 밝게 빛나는 선명한 빨간-노란-초록-파란색은 베네치아 화파의 특징적인 색채로서 굳건한 자리를 지키게 되었고, 벨리니와 죠르죠네의 이 색의 전통은 티치안에게로 계속 전수되었다.
티치안의 초기와 중기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선명한 색채와 섬세한 붓의 터치, 그로 인해 뚜렷하게 묘사되는 인물과 물체는 후기 작품으로 가면서 색과 색들의 섞임과 크고 열정적인 붓의 터치로 변화되었다. 특히 빛을 받아서 빛나는 부분을 단순히 흰 물감으로 처리한 방법은 티치안의 그림임을 알려주는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죠르죠네, <세 명의 철학자>, 1506/08 , 캔버스에 유화, 123 x 144,5 cm, 미술사 박물관, 비엔나
티치안 사후의 베네치아 미술은 베로네제와 틴토레또로 이어졌고, 이 '티치안적 색채'는 이미 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매너리즘적인 요소를 띠고 있으며 그의 '인상주의적이며' 열정적인 붓의 터치는 이후 엘 그레코, 루벤스 그리고 렘브란트의 그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레오나르도의 색채를 연구하여 발전시켰던 베네치아 미술은 또한 독일의 미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496과 1506/07년의 두 차례에 걸쳐 베네치아를 여행했던 뒤러는 죠반니 벨리니의 '색을 통한 윤관서'표현의 기술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독일에 소개했다. 이 영향은 곧 마티아스 그뤼네발트(1470/80-1528)의 <이즌하아머 제단화>1512, 에 잘 나타난다.
이 제단화의 다양한 색채와 윤곽선의 묘사는 이후 독일 미술의 절대적인 표본이 되어 루카스 크라나흐(1472-1535),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1480-1538)로 그 전통이 이어졌으며 독일 로만틱의 기초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