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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ooni Mar 12. 2021

나는 항공산업을 떠난다.

항공산업이 실패할 3가지 이유

 '코로나만 끝나면 보복 소비가 이루어질 거야', '다시금 항공사에게 해 뜰 날이 올 거야'. 2020년부터 1년간 펜데믹으로 휴직/단축근무를 번갈아 하는 내가 지겹게 들어온 이야기다. 물론 나도 2020년 중반까지는 현실을 부정하고 이 말을 믿었다.

 하지만 2021년을 맞이하고 나는 항공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2021년 초부터 수십 곳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십여 곳에서 면접의 고배를 마신 끝에야 겨우겨우 다른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게 됐다. 정말 사랑했던 산업이지만 나는 항공산업이 앞으로 성공할 수 없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1. 변화를 싫어하는 산업

 흔히들 항공산업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전 세계를 누비느라 오픈마인드를 갖춘 승무원', '매주말마다 제주, 도쿄의 트렌디한 카페를 가는 직원'이 보통의 이미지가 아닐까? 대체로 맞는 이미지다, 이들이 생각보다 오픈마인드가 아니고, 그렇게 트렌디하지 않다고 수정한다면 말이다. 생각보다 항공사의 문화는 정말 보수적이다.

B737 MAX의 MCAS 시스템이 초래한 에티오피아항공/라이온 항공 참사

 보통 생명을 다루는 업종이 보수적이다. 항공을 비롯해 군대, 건설, 제약이 대표적이다. 아마 딱 저 단어만 들어도 전투 선글라스를 낀 행보관님의 old 한 모습이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섣불리 도입했다가는 누군가의 생명이 사라질 수 있기에, 타 산업군에 비해 보수적인 경향이 나타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는 실제로 항공산업 역시 수십 년간의 역사를 거치면서 겪어왔던 슬픈 행보이며, 당장 성급했던 기술 도입이 야기한 Boeing MAX 사태로 몇백 명의 생명이 산화했다.

SKT는 자사 직원의 주소지를 분석하여 2020년 4곳의 거점 오피스를 구축했다.

 하지만 변화에 소심한 태도가, 분명 개선이 필요할 시점에도 발목을 잡아버리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자율복장을 보자. 2010년대 초부터 많은 기업이 답 자유로운 복장을 권해왔다. 그런데 모 항공사 직원이 갑갑한 넥타이를 벗어던질 수 있게 된 것, 승무원이 머리를 염색할 수 있게 된 것은 놀랍게도 2019년의 일이다.

 2020년 3월 모 종교 발 1차 집단감염 사태가 터졌을 때, 대기업을 필두로 대다수의 기업이 재택근무를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시행착오 끝에, 하나둘 씩 재택근무를 하나의 '근무형태'로 인정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화, 롯데는 '거점 오피스'를 구축해서,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하는 한층 나아간 근무형태를 마련했다.

 하지만 항공사 대다수는 사무실 근무를 고집했고,  재택근무를 고려한 것이 코로나 위기가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광복절 집단감염 사태 이후의 일이다. (참고로 저 시점에도'한시적 운영'이었다. 재택은 몇 번 하다 눈치 보여서 나 역시 포기함.)

보령제약의 웹 심포지엄에는 2000여 명의 의료/제약 종사자가 참가했다.

 또 코로나 사태로 많은 업종이 비대면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다. 여러 기업의 인사팀은 화상면접과 AI 인적성을 적극 도입하고, 유튜브에서 트렌디한 채용설명회/직무 인터뷰를 실시했다. 영업이 필요한 산업군은 웹비나나 B2B 영업 플랫폼을 구축하여, 대면 영업을 대체해가는 데에 성공했다. 채용의 플랫폼은 전통적인 사람인/잡코리아에서 원티드로 IT기업을 선두로 세대격변중이다.

  하지만 항공산업은 공채/수시채용이 멈췄으니 채용 트렌드에 뒤쳐졌고, 전통적인 수익구조상 비대면 운영방식을 실현할 수가 없다. '무착륙비행'이 뉴노말의 새 여행모델로 포장되고 있지만, 그냥 주기시키는 것 보다 나은 거지 혁신은 아니다. 또 항공사 내 IT인력의 이탈이 심해졌지만, 여전히 개발자를 사람인/잡코리아에서 찾고있기도 하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지만, 변화의 흐름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 항공산업이 새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2. 인재를 유인할 처우/복지의 증발

LCC는 그간 10년간 쌓아온 이익을 단 한 해에 날려버렸다.

 2021년 2월부터 순차적으로 항공사의 2020년 실적이 발표됐다. 화물이라는 무기를 갖춘 대한항공이 흑자를 내긴 했지만, 제주항공은 무려 -3,358억, 진에어는 -1,800억의 적자를 기록했다. 다른 LCC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LCC가 호황이던 시절의 영업이익이 대충 400~500억 사이었던걸 기억한다면, 코로나 이후 호황이 최소 4~5년은 이어져야 본전 치기다. 대한항공, 아시아나가 화물로 이득을 보긴 했지만.. 이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적자 및 부채의 증가를 경험하던 회사다.

2020년부터 대다수의 항공사는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겨우겨우 임금을 보전하고 있다.

 국내항공사는 지난 2020년 2월부터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버텨오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11~12월은 지급을 받을 수 없어 대다수의 직원이 무급 휴직에 들어가야 했다. 2021년에는 다시 새롭게 6개월간 지원을 받겠지만, 2021년 하반기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고용보험 납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스타항공의 직원은 이렇다 할 지원금도 받지 못한 채 이미 2020년에 휴직/실직을 경험해야 했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제대로 된 고용지원금 조차 받지 못한 채 실직을 경험했다.

 코로나 이전 운항승무원/객실 승무원은 높은 연봉과 수당으로 부러움을 샀고, 일반 경영/지원직군의 연봉은 작고 귀여웠지만 높은 할인율의 ZED를 이용해 자유롭게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현재 항공사는 직원들 월급 조차 제대로 줄 수 없는 가난한 산업이다. 잘리지라도 않으면 다행이지. 설상가상으로 ZED 우대 항공권은 작금의 상황에선 없어진 처우가 되었다. 기껏해야 김포-제주 말곤 갈 곳이 없고, 월급이 줄었는데 어디 여행을 가라고요?

항공사의 핵심인력이었던 조종사가 택시운전사,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시대가 와버렸다.

 그렇다고 항공사의 경력이 타산업 군에선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동경의 대상이었지.. 최첨단 항공기를 조종하는 기술은 항공업계에서는 수억 원의 가치를 지닌 기술이지만, IT/게임산업에서는 1원의 가치 조차 없는 기술이다. 객실 승무원의 서비스 마인드가 다른 서비스 업종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서비스 업종은 역시 코로나 타격이 큰 산업임을 고려하면 채용 규모가 클까 싶다. 그리고 코로나를 계기로 비대면 기술이 급속히 상용화되고 있으니 고용안정성도 기대할 수 없다.

 항공업계에서 그나마 쉽게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직종은 경영/IT 직군이겠지만, 생각보다 산업을 옮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 역시 느꼈기에...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기는 하지만...

 설령 항공사가 코로나를 이겨낸다 하더라도, 앞서 보았던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향후 몇 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금융권으로 지원받은 금액은 절대 공짜가 아니니 갚아나가야 한다. 설령 호황이 와서 항공사가 역대 수익을 내더라도 '코로나'가 남긴 상처와 후유증이 너무나도 크다. 휴직/단축근무의 악몽을 겪었는데 내부 직원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 투자, 연봉 인상, 복리후생 확대가 선뜻 이루어질까? 애초에 보수적이었던 항공사가, 또 재정적인 부분서 여유가 없는 LCC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 할 것이다. 더 이상 항공사는 능력 있는 인력을 유인/유지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3. 코로나가 끝인 줄 알았지?

 코로나 19가 끝났다고 더 이상 악재가 없을까? 이미 코로나 19 이전에 항공산업을 위태롭게 할 사건이 있지 않았는가? 근 20년간 SARS, MERS, 에볼라와 같은 전염병이 이미 코로나 19 예고편을 보여줬고, 한-중 THAAD 사태, 한-일 NO JAPAN 사태도 항공사에게 큰 시련을 안겨줬다. 코로나 19가 끝나면 또 다른 외부적 악재가 항공사를 기다리고 있다.

LCC의 충성고객은 20대부터 30대 초중반인 젊은 세대다.

 가장 대표적인 악재는 급속한 인구의 감소화 고령화이다. 이미 해외 영업망이 탄탄한 대한항공급 FSC야, 해외에서 한국으로 오는 inbound 승객으로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LCC는 순수 내국인의 outbound, 그중에서도 좁은 좌석 간격을 감수할 수 있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의존이 크다.

대한민국은 '적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결혼관의 변화, 맞벌이의 증가, 부동산 폭등은 출생아수를 점점 줄여가고 있었지만, 코로나는 이를 폭발적으로 앞당겼다. 대한민국은 '적어지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메가 LCC(대한-아시아나 통합)/티웨이-제주/에어로 K, 에어 프레미아 가 3파전을 벌일 여객 시장의 규모가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든과 시진핑 사이의 미-중 신냉전이 예고되어 있다.

 코로나 이후의 국제정세도 그다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박살 냈던 미국-동맹국 간의 관계를 바이든 행정부가 회복시키려는 과정을, 코로나 이후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한국은 또다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강요당할 것이고, 원만한 대응에 실패한다면 중국노선 운항에 규제를 받는 제2의 THAAD 사태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한 때는 좋았던 한일관계, 다시 이때가 오긴 올까?

 2019년 일본 측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시작된 한일 간 관계 악화는 2021년에도 회복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아베 내각의 계속된 실각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물러났지만, 뒤이은 스가 히데요 리 내각은 여전히 한국에 대해 냉소적이다. 차기 대한민국의 강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19년 No Japan 사태 때 일본에 보였던 공격적인 행보를 고려한다면, 한국 역시 계속 일본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할 거라 본다. 즉 LCC의 호황기를 이끌었던 일본 노선의 회복 역시 향후 5년간 쉽지 않을까 판단한다. (물론 대선 결과를 까 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직은 거품이 좀 꼈다곤 생각하지만.. 진짜 2030년엔 서울-판교. 김해-제주 정도는 드론 타고 가지 않을까?

 드론 기술의 발전 역시 항공사에게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항, 우버, 에어버스 등이 적극적으로 드론 택시를 개발하고 상용화를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차세대 산업인 드론 택배 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당장은 이 드론 산업이 태동기에 있지만, 기술이 보완되고 상용화됐을 때 전통적인 여객/화물 항공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이미 코로나 19는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2021년에도 판데믹의 종식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리고 코로나 19를 과연 인류가 완벽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2021년부터 하나 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일부 선진국에서만 접종이 개시됐다. 여전히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일부 백신은 그 효용성에 대해 논란이 많기도 하고, 화이자/모더나 같은 백신도 속속히 생겨나고 있는 코로나 변종에 대응이 완벽할 수 없다고 제조사에서 시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19를 이겨내더라도, 코로나 21, 코로나 23은 계속 생겨나 인류와 항공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항공업에 종사하는 이상, 다시금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한두 번은 더 겪어야 할 수 있다는 것. 

멈춰있는 것은 항공기뿐 아니라, 내 커리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뉴 노말 시대의 기술이나 문화를 경험하지 못해 뒤쳐진 나 자신, 직장인의 가치라 할 수 있는 '연봉'이 박살 나고 현실, 다시금 휴직과 정리해고의 위협이 올 수 있다는 높은 확률. 이 3가지 이유로 나는 항공사를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

 항공/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며 항공사 입사를 꿈꾸었던 학생이었지만, 폭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할 인력 확보를 위해 국내외를 뛰어다녔던 사원이었지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내려두기로 결심했다. 아마 항공사에서의 마지막 날은 엉엉 울면서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한편으론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 내가 존경하는 항공사의 선후배들이 제대로 된 월급을 받으며 근로했으면 좋겠고, 같은 회사가 아님에도 좋은 인사이트를 공유해줬던 항공산업 종사자분 역시 마냥 행복한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동료가 아닌 직원-승객으로 연을 이어가더라도 너무나 행복할 테니까. (그리고 또 해외여행 가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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