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 라이즈 : 누군가의 희생으로 구해질 현실이라면
2024.11
---스포 있음---
어쩌다 나는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태평성대는 없다. 모든 시대가 제각기의 혼돈을 지녔다. 그 혼돈 속을 핀셋으로 헤집어 가장 아프거나 악하거나 기상천외한 사연을 끄집어내는 일이 나의 업이다.
어제는 유독 힘들었다. 응급환자가 병원에 못가 구급차는 운구차가 되었다. SUV가 도심의 인도로 돌진해 회식하고 수다떨던 직장인들이 떼로 비명횡사했다.
그럴 때마다 꺼내보는 영화를 틀었다. 고동치는 심장을 닮은 한스 짐머의 음악. 막이 오르면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긴장과 불안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 이 음향이 묘한 위안을 주는 까닭을 나는 알지 못한다.
THE DARK KNIGHT RISES (2012, Christopher Nolan)
영화의 백미는 액션이다. 웨인의 도움으로 탈출한 경찰 부대와, 베인이 탈옥시킨 범죄자 무리가 맞붙는 마지막 전투씬을 좋아한다. 수백명이 뒤엉킨 아수라장에서 웨인과 베인은 자석처럼 서로를 찾아 마주한다. 온갖 첨단 무기를 코앞에 두고 재래식 승부를 펼친다. 맨주먹이 쩍쩍 부딪는다. 급소를 가격하는 둔탁한 소리.
폭풍이 지나가면 평화와 고요가 찾아온다. 남은 자들은 몸바친 자를 추모하며 생을 아름답게 이어간다.
"아름다운 도시와 멋진 사람들이 어둠에서 벗어난다. 내가 목숨을 바쳐 지킨 사람들은 평화롭고, 훌륭하고, 번창하며, 행복하다. 그들의 가슴속에, 그 후손들의 가슴속에 나에 대한 기억이 남을지니. 이는 지금까지 내가 한 그 무엇보다 훌륭한 일이며 앞으로 내가 할 그 무엇보다도 나은 일이다."
브루스 웨인의 유언
누군가의 희생으로 구해질 수 있는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영화다. 경찰 뱃지를 던지고 웨인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로빈의 뒷모습은 지극히 영화적인 사치다. 브라운관 밖에선 지리한 삶이 이어진다. 나일수도 있는 누군가 죽고 다치고 오열하는 하루하루.
p.s. 그러고보니 소설가 김훈은 4년 전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라는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거리의 칼럼]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