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by 도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디로 떠날지 아는, 목적지가 있는 여행


오늘은 공항까지 나오느라 애를 먹었다.

내 등껍질이 너무 따가운 관계로

동생에게 배낭을 메게 했다.


티는 안 냈지만 무거울 거라 생각이 든다.


동생은 또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가는 여행의 종착지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마지막 마드리드,

또 어떤 것들이 숨어 있을까



기대된다. 하루하루 꿈꾸게 만드는 게 여행이라지. 한국에서의 꿈은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것이었는데 여기선 무엇을 볼까 무엇을 느낄까 기대하는 거다. 새롭고 낯설다. 말이 툭툭 튀어나오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때 알음알음 배운 영어로 몇 마디 내뱉지만 결국엔 알아듣지 못한다. 뭐, 상관없다. 손짓 발짓, 구글 번역기라도 돌리면 통하지 않겠나 길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무작정 걸어도 길이 된다. 우린 쉬운 것들을 너무 어렵게 느낄 때가 있다. 굳이 어렵게 느껴도 되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뺄 것은 빼야 되는데 먹으면 살이 찌듯이 계속 늘어난다. 근데 걱정은 되지 않는다. 살을 빼면 되니까,


아등바등 살았던 삶이 그려진다. 전화를 돌리며 입털던 나의 모습, 전화받는 걸 싫어하던 거래처 사람들, 사실 거래처 사람도 아니다. 일방적인 통화였으니. 나도 전화를 하면서 (일을 하는 거지만) 전혀 보람차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이게 뭐하나 싶었다. 일이라는 게 단순히 버티기만 하면 될까. 버틸 수 없었다. 기계도 아니었고 감정을 참아내는 성인군자도 아니었다. 난 그저 감정에 솔직하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뿐. 기계적인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내 정체성이었다. 안 맞았고 계속 반복해야 했다. 하기 싫지만 꾸역꾸역 했다. 남들은 어떻게 저걸 반복해서 하는지 의아해했다. 이해하지 못했다. 난 일은 흔적이라 생각했다. 모르겠다. 지금 와서 보면 일은 흔적이 아니라, 나를 체바퀴 굴리는 통에 가둬놓고 계속 돌리라는 강요와 폭력의 흔적인지도. 어렵다. 행복하려 일하는 거지만 일하면서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 자체에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난 그 줄을 끊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떠나기로 한 건 우발적이었다. 동생은 오래전부터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했고 난 내가 느꼈던 유럽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혼자 갔을 때의 감동을 다시 또 느끼고 싶었다. 하나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소매치기를 당했고 지갑에 든 돈을 몽땅 잃었다. 그래도 필요한 돈을 분배해놨기에 다행이었다. 여행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동생의 꾸중을 듣긴 했지만 우린 그다음 날 맛있는 걸 먹었다. 카페 디 로마, 스테이크를 썰고 감자튀김을 씹었다. 마냥 좋았다. 우리가 있는 곳이 프랑스이고 낭만과 로망이 있었다. 에펠탑도 있었고 에클레어도 몽생미셸이란 수도원도 있었다. 높은 산이 없어 구름이 낮아 보이는 프랑스의, 해 질 녘 풍경은 넋을 잃게 만들었다. 이건 직접 가서 봐야 알 수가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로 스케치가 되어 있는지.


2014년 겨울에 봤던 파리는 2016년도 모습을 지닌 채 내 곁에 다가왔다. 그때도 지금도 늘 중세의 모습을 하고서 말이다. 눈높이에 맞는 건물들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하나 사람에 대한 안정감은 없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그 이후로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제일 못 믿을 게 사람이라는 말이 실감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가 심해졌다. 하지만 경계를 했어도 잘만 돌아다녔다. 트라카도 공원도, 에펠탑 위도, 노트르담 대성당도, 몽마르트르 언덕도,

발만 디디면 유명한 곳이었고 그곳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낭만이 있었다. 트라카도 공원에서 탱고를 추고 있는 남녀의 모습 속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공을 잘 다루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이었고 낭만적이었다.


그런 곳을 떠나 니스로 향했다. 니스는 프랑스 최대 휴양지로 물이 맑고 깨끗했다. 마을을 에메랄드 빛이 나는 해변이 잔잔히 품어주고 있는 형태랄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었다. 플리마켓이 열려 지갑, 조각품 없는 게 없이 다 팔았고 강변 근처에서는 공연이 펼쳐졌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해변가에서 어푸어푸 수영을 하고 선탠을 즐겼는데 이틀째되던 날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온몸은 뜨거웠고 등은 쓰라렸다. 아직까지도 몸뚱이는 뜨거움을 내려놓지 않았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우면서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고래고래 아프다고 소리치며 짐을 쌓았다. 이상하게도 떠나는 그 순간에 아픔을 잦아들더니 기분이 좋아지고 이상하리만큼 괜찮아졌다. 아직도 (특히 동생이 나를 만지면) 아! 소리를 칠만큼 쓰라리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곳을 떠나는 나의 마음을 이겨낼 수는 없다.


유럽에서의 여행은 나의 로망이자 오랜 바람이었기에 고통과 시련도 더 좋은 날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자양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나 몸상태가 더 좋았다면 분명 더 좋았겠지, 어쩌겠는가. 이게 운명인데, 좋게 받아 들어야지, 아모르파티


행복하고 좋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유럽, 나만의 유럽은 이렇다. 유럽이 주는 이미지도, 정열도, 뜨거움도, 자유도, 소매치기도, 니스의 거대한 해변도, 등의 쓰라림과 어둠도 좋다. 좋아 미칠 지경이다. 유럽으론 온 자신이 좋은 게 아니라, 유럽 그 자체로도 너무나 좋다.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느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