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개념의 늪

by Jinsylvia

"아씨... 저 친 거예요? 기분 나쁘게~"



벌청소를 안 하고 도망간 것에 대해 지도하다가 어깨를 건드린 게 화근이었습니다. 앞으로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말하며 톡톡 친 건데...

'그래.... 어떤 의미든 털끝하나 건들면 안 되는 세상이지... 기분 상해 죄에 걸렸네...'


잘못이 있어 지도할 때도

잘한 일을 칭찬할 때도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울 때도

아이들의 기분은 건드리면 안 되는 시대라...

학습과 인성을 교육시켜야 하는 교사는 두 손 두 발이 다 잘린 체 말로만 일을 해야 합니다.


예전보다 영민한 아이들은 귀신같이 이해관계와 타인의 약한 부분을 캐치해 공격해 들어옵니다.

그 과정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한다기보다는 권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특별하게 누려야 할 권리라고 착각하며 무례하고 개념 없는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민경샘반 다은이는 중학생답지 않은 학생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도 많이 돕고 벌써부터 아르바이트로 자신이 쓸 돈을 벌고 있어 다른 학생 들게 비해 훨씬 성숙하고 영리했습니다. 가끔은 약았다는 생각이 드는 행동과 말을 했지만 사회생활에서는 필요한 능력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영민함을 넘어 무례함이 짙어지고 있어 이따금 민경샘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하루는 민경샘이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가는데 남자친구와 백허그를 하는 다은이를 보았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교무실로 불러 학교에서는 애정행위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지도했습니다. 지도하는 내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하던 다은이는 민경샘의 말이 끝나자 당당하게 묻습니다.

"선생님도 남편이랑 스킨십하잖아요? 근데 왜 전 안 돼요?"

순간... 너무 당당한 태도와 자신의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질문으로 민경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건 다르지! 선생님은 결혼했어. 그리고 결혼했다고 공공장소에서 스킨십을 하지는 않아."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다은이의 모습에 민경샘은 가치관이 흔들립니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혼란스럽습니다.



2반 민재는 흥이 많고 자존감이 넘치는 학생입니다. 수업시간에는 자거나 이상한 질문으로 수업을 방해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복도를 거닐며 군기반장 노릇을 합니다. 복도를 거닐 때면 노래방인 양 큰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주로 민경샘이 잘 아는 옛날 노래를 열창하기 때문에 가끔은 저 노래를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쉬는 시간 종이 쳐도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을 반에 데려다주고 맘에 드는 여자 선생님을 붙들고 복도에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합니다.

수업을 하러 가던 민경샘이 혼자 복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민재를 보고 얼른 교실로 들어가라고 당부합니다. "앗! 영어쌤~~ 네~"

웬일로 바로 대답하는 민재가 기특해 등을 토닥이며 칭찬해 줍니다. 그러자 갑자기 표정이 서늘하게 바뀌더니 "아... 씨 왜 쳐요~ 아동학대 신고할까 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더니 놀라 멈칫한 민경샘을 보고 씩 웃으며 교실로 향합니다.


4교시 5반 앞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민경샘은 크게 심호흡을 합니다. 교실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복도에서도 들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가 다른 여학생과 실랑이가 붙어 싸우고 있습니다. 분명 사소한 장난으로 시작해 감정싸움으로 번졌을 것입니다. 수업이 시작됐던 말던 선생님이 들어왔던 말던 싸움은 계속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말썽에 이미 지칠데로 지친 5반 아이들의 무기력한 눈빛이 민경샘의 마음을 굳건하게 합니다.

"현재야~ 수업 시작했으니 일단 자리에 앉자~ 다들 영어책 꺼내고~ 수업 합시다."

교실을 정비하고 교과서를 화면에 띄웁니다. 주섬주섬 교과서를 꺼내는 아이들과 달리 현재는 아직 그 자리에서 싸우던 학생을 노려보며 서있습니다.

"현재! 자리에 가서 앉아요."

본문 영상을 재생하고 유인물을 나눠주는데도 여전히 서있는 현재에게 소리칩니다.

"현재야! 뭐하니? 자리에 앉으라고~"


그러자 자리쪽으로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앉고있잖아요! 왜 소리를 질러요!"

슬로우 모션을 건것처럼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 현재를 보며 화가 치밉니다. 하지만 여기서 화를 내면 오늘 수업을 망칠꺼라는 걸 알기에 무시하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5분 뒤

현재는 다른 남학생과 다시 시비가 붙어 싸우기 시작합니다. 화가난 민경샘은 현재를 복도에 나가게 했습니다. 복도에 나간 현재는 교실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떠들기 시작합니다. 아까 싸우던 학생을 노려보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자극합니다. 아이들은 현재를 쳐다보느라 수업에 집중하기 못하고 민경샘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이번 시간도 수업은 실패입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중학생이라고 해도 가끔 말과 행동이 상식과 예의를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과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무개념 행동들은 비단 아이들만의 것은 아닙니다.


다은이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놀란 민경샘은 방과 후 다은이 어머니에게 상의차 연락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종종 남자친구와 스킨십을 하는 것과 오늘 지도한 사안에 대해 알려드리고 가정에서도 함께 지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내내 듣고만 있던 다은이의 엄마는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게.... 뭐 어때서요? 남친이랑 스킨십할 수 있죠~"

민경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내에서 쉬는 시간에 흡연을 해서 잡혀온 현오. 평소에도 아침부터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서 주변 아이들이 괴로워하고 학교 근처 빌라 담벼락에서 매일 담배를 오랫동안 펴서 주민신고도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지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도움을 구하고자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니

"담배요? 제가 일부러 가리켰어요. 스트레스받을 때 이만한 게 없거든요~ 제가 담배 사다 주고 집에서는 같이 피는데요."

어이가 없는 민경샘에게 그게 뭐가 대수냐며 일관하는 현오의 엄마. 지금까지 수많은 지도가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한 번에 이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집에서 엄마와 맞담배 하는 아이에게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마음 한편이 답답합니다.


수아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적인 학생입니다. 수업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복장이나 태도면에서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다만 냉소적인 말투와 눈빛. 민경샘이 하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표정. 거기에 가끔 한 번씩 던지는 말들이 가슴을 쪄릿하게 만드는 아이였습니다.

하루는 영어 수업이 끝나고 교탁 앞으로 와서 수행평가에 대해 물었습니다. 왠지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듯 보여 대화를 튼 김에 방과 후에 뭐하는지 물었습니다.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한다는 말에 힘들겠네.. 할만하니?라고 물었더니 특유의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안 가면 어쩌겠어요? 그거라도 해야 사람 취급하겠죠."라고 답했습니다.

"어... 학원을 안 다닌다고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더 잘하라고 보내시는 거겠지~"라고 차분히 설명하자 수아는 너무 상투적인 말에 속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오후.

방과 후 수업을 중간에 그만두겠다는 수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지만 이미 학기가 2/3 지난 시점이라 수업료 환불은 어렵다고 설명하니 알겠다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런데 1시간 뒤 다시 전화가 와서 수업을 다 듣지도 않았는데 환불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민경샘은 다시 환불 규정을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수업이 개떡 같아서 환불해 달라는데 왜 안된다는 거예요! 교장실에 전화하겠어요!!"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전화를 끊었습니다.

멍하게 수화기를 들고 있던 민경샘은 순간 아까 수아의 마지막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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