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호구일지 1편(5월 22~23일)
선착순? 가보자고
성인이 된 후 피아노나 수영처럼 어릴 땐 크게 관심두지 않던 것들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다. 무술도 그 리스트 중 하나였다. 왠지 모르게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했던 것도 결핍 아닌 결핍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집 주변에 아싸(!)도 다닐 만한 분위기의 성인 태권도장이 있었다면 진작 등록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SNS를 통해 본 성인 태권도장의 대다수는 범접하기 어려운 인싸(!)의 향기를 내뿜고 있으므로 차마 시도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동네에 검도장이 오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개관 이벤트로 선착순 30명에게 도복과 죽도를 준다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여럿 있었다.
무릎 통증? 가보자고
하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금만 잘못 운동해도 무릎이 아파온다(나이 때문임). 힘차게 발을 구르는 검도의 특성상, 무릎에 악영향이 가지 않을까 고민했다. 둘, 맨발로 땅을 밀기 때문에 발바닥에 물집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물집 관리가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망설임의 시간이 길어졌다. 또 검도장 분위기가 너무나 자유분방하여 뻘쭘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살짝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몸사리던 차, 일단 상담을 가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오픈 전에 상담을 했기 때문에 과연 어떤 인물들이 내 동료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동안 엘리트 선수 위주로 지도해오다가 사설 검도장은 처음 오픈하는 관장님의 때묻지 않은 마인드에 일단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오픈 기념 선착순 증정 이벤트로 도복과 죽도를 내걸었으면서 몇 개월 이상 등록해야 한다는 규칙도 없고, 딱히 내 연락처를 물어보지도 않고, 검도 동작 때문에 무릎이 아플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닥재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 이렇게 고민할 바에 일단 한 번 배워보자는 마음이었다. 물론 진짜 결제를 하기까지, 그런 후에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등록 2주 후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 안 봐도 눈에 선한 어색함과 뻘쭘함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도복에 새겨졌을 내 이름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무료로 도복과 죽도를 받았다면 최소 몇 개월은 다녀야 하지 않나, 하는 책임감 한 스푼에 눈물 한 방울.
도복 입기? 가보자고
성인반은 총 4명. 그중 3명이 같은 날 검도에 입문했다. 아직은 눈인사도 겨우 하는 사이지만 어쨌거나 동기는 동기. 첫날이니만큼 수업의 대부분은 도장에서 지켜야 할 예의, 도복 입는 법, 죽도의 세부 명칭 같은 기본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다. 남들은 관장님 설명 한 번에 척 보고 딱 입고 나온 도복을 혼자 야매로 입고 나온 것(긁적). 탈의실에서 다시 입다가 땀이 삐질(탈의실이 더워서임). 등 뒤로 끈을 묶느라 팔도 아파오고 원리도 모르겠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진심). 다행히 같은 성별의 동기가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덕분에 미션 클리어. 도복 하나 입었을 뿐인데 이마에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쓱 닦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본다(집에 가고 싶다). 첫날부터 엄청난 체력을 소진할까 봐 쫄았었는데 그렇진 않았다.
호떡? 가보자고
수련 첫 날, 검도장의 단점 하나를 발견했다. 동네 번화가에 위치한 탓에 주변에 음식점이 많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호떡 트럭이 떡 하니 있을 줄이야? 초여름의 호떡 트럭이라니 매우 매력적이어서 눈길이 절로 갔지만 꾹 참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호떡 러버로서 언젠가 사먹긴 하겠지만 참고 참다가 정말 안되겠을 때 먹어야지. 호떡 트럭이 사라지기 전에 먹어야지(조만간 먹겠다는 뜻).
물집? 가보자고
두 번째 수업에서는 좀더 오랜 시간 검도 기본 동작을 연습했다. 발을 앞으로, 뒤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밀다 보니 '발에 물집이 곧 잡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틀 차에 물집이 생기진 않는건가? 물집도 훈장 같은 것이라 초심자에겐 오진 않는 걸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몇 주 앞서 수련을 시작한 단원에게 "물집 생기셨나요? 언제쯤 생기나요?" 하고 물어볼 뻔 했다. 그렇지만 오픈 초기인 이 검도장은 아직 서먹서먹, 어색어색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검도가 재밌어서 물집의 쓰라림을 이겨내고 검도장에 나올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마음은 나중에 바뀔 수도 있다.
이상, 검도 수업 2번 나간 나의 호구일지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