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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시간을 낭비하는 리더 (3편)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는 리더

by 녹차라떼샷추가

급한 일,

야근의 원인


직장인들의 야근 이유 절반 정도는 '급한 일' 때문인 것 같아요. 회사 다닐 때를 돌이켜 보면 계획한 일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었는데 그 와중에 종종 급한 일이 떨어졌었어요. 그럴 때마다 상사들은 헐레벌떡 찾아와서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했고요. 그러면 어쩔 수 있나요. 계획한 일을 제쳐두고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죠. 그런데 문제는 원래 계획된 업무들도 대부분 기한이 정해져 있고 안 하면 큰일 나는 중요한 일이라는 점이어요. 슬프게도 이런 상황에서 제가 가진 선택은 야근 밖에 없었어요.


회사에서는 왜 그렇게 늘 급한 일이 생기는 걸까요? 도 궁금하더라고요. 동료들은 매번 촉박하게 업무를 요청하고, 리더들은 업무 마감 기한을 앞두고 갑자기 결정을 뒤집는 일이 다반사였거든요. 그런 상황들이 일을 급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더라고요. 정말 중요한 일들이 갑자기 생겨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리가 일을 제대로 못 해서 그러는 건지도 판단하고 싶었어요. 유관 부서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사전에 업무 계획에 반영해 두면 좋잖아요. 그러면 업무와 시간 관리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회사 일 때문에 자유 시간을 포기하는 일도 줄어들게 되겠죠. 신입사원이 할만한 순진한 생각 같지만 연차와 상관없이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을 거라 생각해요.




급한 일

급한 일 나름


물론 어쩔 수 없이 대응해야 하는 급한 일도 생길 수 있어요.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일들이 여기에 포함되어요. 예를 들어서 얼마 전에 홈플러스가 갑작스레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홈플러스에 물건 납품 대금을 받아야 하는 회사 경영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겠어요. 그 대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서 회사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곳들도 있었을 거예요. 만약 올해 홈플러스에 기대했던 매출이 줄어든다면 서둘러 대체 판매처를 찾아야 할 것이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야근특근 가리지 않고 대책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적어도 리더도 직원도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있을 거예요. 그야말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은 변화니까요.


반대로 리더의 무지, 게으름, 변덕, 욕심 때문에 급한 일이 생기는 경우도 꽤 있어요. 외부에 보낼 자료에 대해 리더에게 검토 요청을 했는데 한동안 아무런 의견이 없다가 고객한테 보내기 직전에 자료 전체 구성을 뒤집는 코멘트를 한다든지. 아니면 외부 미팅 다녀올 때마다 리더의 관심사가 바뀌어서 수개월 동안 최우선순위로 진행해 온 개발 과제가 손바닥 뒤집듯이 중단된다든지 같은 상황들이 해당되겠네요. 그리고 리더가 사내 정치한다고 안 해도 될 일까지 받아와서 갑작스레 직원들한테 일을 시키는 상황도 포함될 수 있고요. 회사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개인 자유 시간 희생해 가며 야근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 일이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라는 걸 알게 된다면 직원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급하다는 핑계로

비효율을 만든 리더


유독 급한 일을 자주 만드는 리더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리더들의 공통점은 나서서 문제 해결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반면에 업무에 대한 전체 그림이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풀어서 얘기하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열정은 넘치지만 본인의 행동과 판단이 회사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지 못하는 거죠. 리더가 되면 여러 부서와 주요 의사결정의 접점에 위치하게 되어요. 본인 부서 업무만 신경 쓰기보다는 옆 부서의 업무 진행 상황이 본인 부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본인 부서의 업무 진행에 따라 옆 부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경영진 회의의 결정 내용에 따라 회사 우선순위와 사업 계획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같은 주변 맥락을 360도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 자기 눈앞에 보이는 일만 신경 쓰다 보면, 본인은 열심히 일하는데 회사 자원을 낭비하게 될 수 있어요.


기 목표에 열정적인 리더가 회사 전체적으로 비효율을 만들었던 사례를 하나 공유할게요.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영업담당 리더가 있었어요. 그 리더는 어느 날 해외 출장을 다녀오더니 출시 예정인 신제품에 대한 대규모 매출 계약을 따냈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왔어요. 그러면서 이제 제품 인증 관련 문서들을 고객사에 보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회사 내에서 해당 제품은 개발이 완료되지도 않았고, 더더욱 제품 인증 관련 문서들도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던 상태였다는 점이었어요. 영업 리더는 매출 실적 올리려면 해당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개발 부서와 인증 부서를 들쑤시고 다녔죠. 보통 1년 걸리는 작업을 1달 안에 끝내달라고 억지를 부리면서요. 그렇게 갑자기 생겨난 급한 일 때문에 1달 동안 회사 차원의 우선순위와 부서별 계획이 뒤죽박죽 되어버렸어요. 결국 1달 뒤에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원래 계획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요. 그렇게 지나가 버린 1달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아쉬워요. 관련된 인원들의 인건비만 생각해도 10억 원은 족히 넘었을 거예요. 만약 영업 리더가 고객과 계약을 논의하기 전에 내부 개발 상황과 인증 준비 계획 등을 미리 숙지하고 있었다면 계약 타이밍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었겠죠. 제품과 인증이 준비된 시점에 딱 맞춰서 판매까지 연결시켰으면 가장 이상적이었을 거예요. 그러지 못한 것은 결국 해당 리더가 자기 업무만 생각하고 연관 업무를 포함한 전체 그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회사 일이라는 게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우겨서 해결될 일은 아닌 거죠.




급한 일을 예방하는

간단한 훈련 방법


리더 경험이 쌓인다고 업무의 전체 그림과 맥락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이 부분은 사고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가 회사의 성과로 만들어지기까지 어느 부서에서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는지, 또한 유관 부서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과 결과물은 무엇일지에 대해서 하나씩 따라가 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이때 회사 전체 조직도와 함께 각 부서별 역할과 책임을 참고하면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요.


그렇게 업무에 대한 회사 차원의 전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면 그때부터는 어떤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몇 번이고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걸 추천드려요. 그렇게 하면 현재 업무 구조에서 어떤 역할이 비어있는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지, 또한 어떤 이슈들이 발생할지 등도 미리 가늠할 수 있게 되어요. 군가에게는 이런 과정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사고가 터진 다음에 허겁지겁 대응하기보다는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어요. 물론 성과도 더 좋을 것이고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내야죠. 리더니까요.




급한 일을 만들지 않는

리더가 훌륭한 리더


회사에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효율성 향상이라고 생각해요. 회사라는 조직이 발명된 목적 자체가 혼자서 해내기 어려운 일들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달성하기 위함이잖아요. 그런데 회사 규모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협업의 비효율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져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조직을 나누고 역할도 정하고 업무 프로세스도 만들어 보지만, 경계 지점에서 모호한 영역과 단절된 지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같은 모호함과 단절을 이어주는 역할은 결국 리더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경계 지점에서의 비효율을 미리 발견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업무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급한 문제가 생겼을 때 카리스마 있게 직원들을 휘어잡으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리더보다는, 애초에 맡은 일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리더가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을 나무의 밑가지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하더라고요. 나무에서 먼저 자라난 나뭇가지는 튼튼한 밑가지가 되어서 새로운 나뭇가지들이 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버텨줘요. 밑가지가 튼튼할수록 더 많은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겠죠. 만약에 무거운 밑가지가 새로운 나뭇가지 위에 서고자 한다면, 그 나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 거예요. 회사에서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는 일,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가 많을수록 그 조직은 건강하고 오래오래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믿어요. 앞에 나서서 스스로 돋보이려는 리더보다는, 조직을 위해 기꺼이 밑가지 역할을 하는 리더들의 진가가 인정받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제작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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