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이유
나는 이미 TV 오락물의 하나로 자리 잡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극찬을 하며 권하더라도 아직까지 이를 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수도 있겠다. 이쯤 하면 조금은 독특하고 별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나를 잘났다고 하거나 유별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이 또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다수의 경연자들이 짧은 시간 내에 본인이 그동안 자신의 실력을 선보인 후 평가자들의 혹독한 심사평을 받고 눈물을 보이거나 쓸쓸히 무대 뒤로 퇴장하고 만다. 그들이 그동안 흘렸을 눈물과 땀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다는 오로지 경연자가 보여준 찰나의 순간에 대해서만 계량하고 점수를 매긴다. 가끔은 그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동정에 가깝다.
평가가 공정한가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즐기는 오락 프로그램마저도 한 사람이 몇몇의 평가자들에 의해 폄하하고 난도질당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하는 얘기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들을 걸었을 것이다. 혹평을 당하며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그 모멸스러운 순간을 홀로 견뎠을 것이다. 평가자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다른 경연자들을 칭찬하는 순간을 지켜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자기나 똑바로 하지”라고 한마디를 꼭 하게 된다. 주변에서는 여지없이 핀잔의 시선이 날아드는 건 익숙하다.
변호사라고 이런 일을 안 겪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매 순간 겪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을 웬만하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 직업을 알게 되는 순간 열에 아홉은 국내 유수의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들을 얘기하거나 본인이 안다는 판사나 검사의 이름으로 한마디를 거든다. 마치 내가 그 지인의 부하직원이라도 되는 양, 나를 줄세우고 평가하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거론하는 이름들 중에는 나와 같이 근무했거나 현재까지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분들과의 친분을 얘기하지 않는다. 성격이 그리 둥글지 못한 나에게는 참으로 고역이지만 그분들과의 친분에 관한 얘기를 단지 듣는 척만 한다. 물론 전혀 듣지 않는다. 그분들은 자신의 이름이 왜 거기서 나오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친분관계가 회자되는 것이 결례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신출내기 변호사였을 때 나 역시 경연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그들이 소위 “살 수 있는”(나는 나를 판 적이 없다) 수많은 변호사들 중 하나였을 것이고, 그 찰나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평가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잘났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나를 폄하할 만큼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다. 나의 시간에 충실했고 내 노력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나 역시 그때만큼은 20대의 내 젊음과 인생을 걸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푸른 청춘들은 나와 같이 경연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눈물과 땀으로 밤낮을 지새울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지 못할 망정 그들의 노력을 단 한번의 경연으로 혹평할 수 있는가? 그들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누가 감히 탈락이라고 할 것인가? 어느 누구도 그럴 자격이 없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다.
오늘도 보석처럼 빛나는 젊은 그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대들의 땀과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