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다. 정신의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힘들지만 동시에 보람 있는 점은 다양한 환자분들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어렵게 꺼내시는 이야기에는 정말 다양한 삶이 담겨있다. 환자분들 중에는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이 있기도 하지만 각기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감정을 느끼신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제각기 다르시다. 오열하며 강렬하게 슬픔을 발산하는 분이 있으신 반면, 아픈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눈물 한 방울을 조용히 흘리시는 분도 계신다. 진료실 책상 너머에서 펼쳐지는 환자분의 삶의 흐름을 따라가고, 감정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는 일은 내게 참 의미 있는 일이다. 진료를 마치고 떠나시는 환자분들의 뒷모습을 보며 진료실 밖에서도 계속 흘러갈 그분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내가 정신의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하게 된 건 아마도 이러한 ‘인간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내 호기심은 영상을 선택하는 데도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시대이지만, 나는 소소하게 개인의 일상을 담아낸 영상인 브이로그(Vlog)에 눈길이 가게 된다. 브이로그에는 대부분 특별한 장면은 담겨있지 않다. 늦잠을 자서 아침 등굣길을 뛰어가는 학생의 모습, 새로운 연인이 생겨 설렘을 느끼는 젊은 청춘들, 박봉과 고된 노동에 신세 한탄을 하며 홀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가장의 모습. 각자의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화면을 넘어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상 편집 기법에서도 제작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다락방에서 친구들과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소곤거리며 영상을 제작하는 분이 있는 반면에 활기차게 야외를 활보하시며 씩씩한 목소리를 그대로 영상에 담으시는 분도 계신다. 각각의 방식으로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신다. 이처럼 브이로그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BJ도, 눈길을 사로잡는 충격적인 연출도 없다. 그저 평범한 우리네 삶이 차분히 담겨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평범함’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어느샌가 비슷한 형태의 브이로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단순히 다른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참고하는 것을 넘어 동일한 내용, 동일한 편집 방식으로 브이로그를 제작한다. 공산품처럼 규격화되어 생산된 이러한 영상들에는 어떠한 감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작권은 마치 ‘거대한’ 창작물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백억 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 유명 작가가 발간한 책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작권은 정의 그대로, 창작자의 감정과 생각들이 표현된 모든 창작물에 부여된다. 특허권과 같이 권리를 부여받기 위한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지도 않다. 창작물이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자동으로 권리를 갖게 된다. 막대한 창작 자본이나, 창작자의 사회적 권위가 창작물이 저작권을 부여받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조건은 결코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오늘 하루 자신의 마음을 기록한 평범한 브이로그에도 분명히 저작권이 존재한다. 삶의 기록뿐만 아니라 삶을 담아내는 촬영 기법에도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창작자의 의도가 담겨있고, 그것이 독창적이라면 저작권이 존재하는 것이다. 무단으로 타인의 브이로그 내용과 촬영 기법을 도용하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을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일 수 있다.
내일도 출근해서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삶을 들어볼 것이다. 그 삶 속에 담겨있는 마음에는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저작권이 있기에 하나하나 더욱 소중히 귀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