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행리단길은..가로수길을 시작으로 곳곳에 유행하는 길목에는 동네이름+길 이라는 명칭이 참 다양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난 아직도 어디가 어디인지 명확히 모르는 장소도 많고, 지방에도 많이 생긴 길이라 이름 붙여진 곳을 만나게 되면, 여기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서 장소가 되었는지 참 궁금해진다.
행궁동은 사실 나에게 참 특별한 동네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마음이 가는 동네 하나 있겠지만, 행궁동이 나에게는 참 정감있는 동네였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드는 곳은 아니다 . 그런데 오늘은 참 그런 싫었던 장소성이 상큼한 감성이 담긴 것처럼 보인건, 아마도 내가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 길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과 시선이 참 그렇지 않은가? 어떤 날은 그리 사랑스럽고 좋아보이지만, 똑같은 곳에 그대로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나에게는 미움이 대상이 되어가는 그런 것처럼.. 행리단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동일한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15년전 나에게 행궁동은
오랜시간 지방에서 살다가, 공부하기 위해서 온 이 동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이 수원화성이었다. 마음이 울적할때 어디갈지 모를때, 뭔가 일이 잘 안 풀릴때 조금 걷고 싶을때, 자연을 만끽하고 싶을때,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시장길을 걷고 싶을 때, 조용한 서장대에 오르고 싶을때, 계절을 담은 장안공원을 만나보고 싶을때, 주변에 높은 건물 없는 수원성곽을 따라 거닐고 싶을 때, 나는 그렇게 수원 화성을 자주 찾았었다.
그게 이제는 아마도 15년 이나 지난 이야기구나 그때는 정말 여기 행리단길이 조용했었다. 수원화성때문에 개발이 어려운 동네였고, 어르신들만 사시는 곳이라, 그리 볼거리도 많지 않고 동네에는 적막함이 돌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곳이 이렇게 갑자기 생기가 돌기 시작한것은 불과 3-4년전인것 같다. 점점 개발된다기 보다는 한옥과 전통과 연계된 건축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행궁과 이어지던 공방거리가 조금 활성화를 찾던 시기였을 뿐 수원화성은 크게 뭔가 변화한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순간. 가게들이 들어서더니 지금의 행리단길이 되었고, 요즘에는 북적북적 가게들이 많이 생기면서 차도 많아지고 걷는게 부담스러워 지기도 했다.
내가 알던 15년 전에 왔던 수원화성은 참 조용하고 잔잔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수원화성행궁 앞은 조금 북적이긴 하더라도 성곽길 따라 걷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요즘에 주차대란이 일어나는 그곳에도 차를 주차하고 거닐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주차장에 들어가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연무대 앞에 보이는 동북공심돈에도 직접 올라 내려다볼 수 있었고 (현재는 닫혀있다), 내가 좋아하는 장안문과 장안공원 사이의 성곽길 중간즈음에 있는 고목 아래에는 할머니 두세분이 앉으셔서 부채를 부치며,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그리도 편해보였다.
그 나무에서 동네 주택가를 바라보고 있자면 사람들이 거의 없고, 오롯이 한 집의 음식점만 오픈된 가게였는데.. 그때를 비교하지면, 지금의 행리단길은 북적함의 상큼한 젊은들의 동네가 되고, 느긋하게 시간이 지나가길 그냥 바라만 보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사라진 그 느낌이 조금은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다.
그렇게 동네를 한번 성곽길에서 걸으며 내려다보는 재미도 있었고, 골목에 그리 예쁜 카페들이 있지 않아 혼자서 팔달문시장 가서 못골시장에서 간식 하나 사먹던 추억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세대가 변했다는것을 느낀다. 그때 그 어르신들은 또 다른 길을 찾아가셨을 수도 있고, 15년 20년이 지난 지금은 또 다른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었으니,내가 기억하는 행리단길의 추억을 함께 담아주어야 한다는 것도. 내가 사실 이런 나이가 될 줄은 몰랐네. 내가 좋아하던 동네가 항상 그자리에 머물던 그때의 나일 것이라고 나도 착각을 하고 살았기에, 지금의 달라지는 세대의 달라지는 모습이 아마도 내가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조용하기만 했던 그 동네 행궁동. 지금은 행궁동 이기 전에 행리단길로 기억되는 길이라는 점도 참 다르네. 내가 알던 곳은 둥글게 사람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 동네였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흐름을 연결해주는 길이 되었다. 길이 이어지고 이어지며 골목을 잇고, 그 길을 따라 사람을 잇고, 그 길에서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길이 이가득 모여지는 곳, 그곳이 바로 수원 행리단길이 된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참 행리단길이 어색했다. 내가 기억에 담고 있던 . 내 추억과 나의 과거를 담았던 행궁동의 모습과 이질적인 지금의 행리단길이 어쩌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혼자서 느긋하게 걷던 길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듬뿍 생겼고, 음식점들이 북적이면서, 어르신들이 앉았던 거리와 벤치는 사라지고, 젊은이들이 뭉쳐다니는 길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날은 조금 내가 마음이 느긋했나 보다. 이렇게 바뀐 날씨와 풍경에도 제법 적응이 되었나보다. 따뜻해진 봄 날씨, 그리고 점점 코로나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 적응이 될 때쯤에 만난 행리단길에서 이제서야 상큼한 거리에 눈이 뜨였다. 뭔가 외국에 내가 모르는 거리에서 새로운 장소를 만난 것처럼. 내가 알고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한 거리라 생각한 이곳에서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가게들과 젊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이제는 내가 익숙한 이곳이 아닌 이방인으로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여태 보이지 않았던 간판, 가게이름, 가게 내부, 줄 서 있는 사람들, 바닥의 패턴, 벽에 씌여진 글씨, 색감이 독특한 벽면 그게 보였던 행리단길의 산책길이었다.
비로소 15년 만에 마주한 행리단길은
참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비로소 내가 행궁동이 아닌 행리단길을 만난 느낌은.. 정말 많이 변한 세월만큼. 나의 시간이 그리고 나의 나이가 변했음이 어쩌면 느끼고 싶지 않아 항상 그 자리에 머물기를 바랐는 지도 모른다. 변화에 관대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자 라는 마음을 가져야지 싶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무언가 내가 더 밀어냈던건가 싶기도 하고.
오랜만에 행리단길을 걸으며 웃어보았다. 귀여운 가게의 이름과 폰트. 상상하지 못할 한옥과 어울리지 않을듯한 일본이름의 간판과 색깔. 만화에서 튀어나온것 같은 집의 모습이 무언가 이질적이었던 행궁동의 기억을 참 잔잔하게 이어주는 골목같다.
이제 내가 알던 옛동네 , 잔잔함이 숨쉬던 어르신들의 마을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감성이 충만한 필이 가득한 동네가 되었구나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생친구들이 서로 모여 돈얘기하며 식사를 어디에서 해야하는지 욕섞어 가며 말하던 그 모습도, 힐을 신고 홍대에서나 볼줄 알았던 화장과 옷차림으로 수원 골목길을 돌아다니던 모습도, 길가에서 그리 많지 않던 차들이, 이제는 행리단길은 걸어서 라는 글자와 함께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을, 가게들도 많아져 세련된 인테리어와 비싼 양식이 더이상 어색해지지 않은 모습이.
그래도 그 사이에 변해도 다 변하진 않는구나 라는 사실도 있다. 오래된 가게 앞에 빨간레자 의자에 걸터앉아 배부른 볼록한 배를 부여잡고 낮잠을 주무시던 식당 앞의 아저씨가 참 어찌나 그리 정겹고 재미있어 보이던지..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도 늙고 세상이 변했고 젊음이 생겼다.
상큼함이었다.
참 나는 오랜시간동안 나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나보다. 세상은 점점 상큼하고 생기발랄한 모습을 찾아가는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갇혀 있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풋풋한 아이들 속에서 (물론 욕설은 아직도 적응 안되는 요즘 아이들의 실상이지만) 이제는 내 기억속의 행궁동이 아닌 조금은 바쁘고 아기자기하고 상큼함을 가진 동네가 되었다는 것을.
항상 변하지 않고 잔잔함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정서와 함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로 변해가는 것은 사람이 변해가듯 장소가 갖는 풍경도 바뀌기 마련이다. 뿌리가 바뀌지 않으면 항상 그 자리에 다시 뻗게 되듯이, 장소가 가진 힘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북적이는 모습이 나에게는 참 낮설었지만, 골목골목 새롭게 찾아드는 모습은 또 생기가 도는 장소가 또 상큼하기도 하다.
나도 이제는 조금 꼰대에서 변해야 할 때, 변화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갖는 하루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