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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보의 비대칭

by 와니 아빠 지니

주말 오후, 아들은 태블릿을 붙잡고 있었다. 이따금 피식 웃거나 “와, 대박!” 같은 탄성이 들려왔다.


“뭐 보고 있어?”

20250424_0855_귀여운 캐릭터와 태블릿_remix_01jsjh5tqrfnstx2kz6vwe9ys5.png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아들은 태블릿을 꼭 쥔 채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재미있는 거 봐.”


“재미있는 게 뭔데?”


“아빠가 알아도 뭐라고 할 거잖아.”


아들이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지금 네가 모르는 걸 알고 있어.”


아들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뭘?”


“네가 보는 영상 중에 안 좋은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걸 네가 다 알기는 어려울 거야.”


아들은 눈썹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내가 다 골라서 보고 있어! 이상한 거 안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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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태블릿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아빠는 네가 뭘 봤는지 알 방법이 있지. 유튜브엔 ‘본 동영상 기록’이 남으니까.”


아들은 갑자기 긴장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품에 안았다.


“그건 안 봐도 돼! 정말로 재밌는 거였어. 이상한 거 아니라고!”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 아빠가 다 보자는 건 아니야. 다만, 네가 보는 것들이 이상한 게 없는지 가끔 같이 확인하면 어때? 아빠도 네가 즐거운 걸 알고 싶어.”


아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태블릿을 슬며시 내밀었다.


“진짜 별거 없는데... 같이 봐도 돼.”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아들이 본 영상을 하나씩 확인했다. 다행히 대부분 아이들이 즐길 만한 영상이었다. 가끔 어른이 보기엔 이상한 장난 영상도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들과 유튜브 기록을 살펴보면서 나는 우리가 가진 정보가 얼마나 달랐는지를 실감했다. 아들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을 돌아보며 문득 경제학의 한 개념이 떠올랐다.




정보의 비대칭성

이 개념은 1970년 조지 애컬로프 교수가 발표한 박사 논문 ‘레몬 시장(Market for Lemons)’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 논문에서 애컬로프 교수는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거래에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 설명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사람들이 가진 정보의 양과 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두 가지 주요 문제가 나타난다.


첫 번째는 ‘감춰진 속성’으로, 이는 거래 전에 상품이나 서비스의 중요한 특성을 한쪽이 알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를 뜻한다. 이를 흔히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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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컬로프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중고차 시장의 ‘레몬과 피치’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고차 시장에는 두 종류의 차가 존재한다. 하나는 잘 만들어지고 상태가 좋은 차, 즉 ‘피치(peach)’이고, 다른 하나는 결함이 많고 상태가 나쁜 차, ‘레몬(lemon)’이다.


문제는 구매자가 차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판매자는 자신의 차가 피치인지 레몬인지 알고 있지만, 구매자는 이를 판단할 정보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구매자는 모든 차를 평균적인 품질로 간주하게 된다. 이 때문에 싸게 사야 할 레몬도 피치와 비슷한 가격에 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시장에는 레몬만 남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피치를 가진 판매자는 자신의 차를 정당한 가격에 팔 수 없다고 느껴 시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런 역선택은 여러 곳에서 발생한다. 우선 ‘노동 시장’을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한 회사가 평균 이하의 급여를 제시하면 능력 있는 인재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서 다른 회사로 떠난다. 결국 그 회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력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우수한 인재를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보험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보험사가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보험료를 부과하면 건강한 사람들은 보험료가 비싸다고 느껴 가입을 꺼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보험사의 부담은 커지게 된다.


온라인 구매 시장에서도 역선택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상품에 대한 구매 후기가 블로그나 리뷰 사이트에 올라온다고 가정하자. 판매자가 상품의 품질을 과장하거나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면, 소비자들은 상품의 실제 상태를 알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상품에 대해 신뢰를 잃은 소비자들은 점점 구매를 꺼리게 되고, 결국 시장에는 저품질의 상품만 남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역선택은 다양한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가 접하는 노동 시장, 보험, 온라인 구매 시장뿐 아니라, 일상적인 가정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이다.


앞서 아들과의 유튜브 논쟁에서도 역선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아들이 보는 콘텐츠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해, 유튜브에 대한 불신으로 막연히 나쁜 콘텐츠일 거라 단정했다. 반면, 아들은 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으로 스스로 괜찮다고 판단한 영상만 보여주려 했다면, 아들이 더 부적절한 콘텐츠를 볼 가능성이 있어도 나는 이를 확인하거나 제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역선택을 막기 위해선 정보의 비대칭을 줄여야 한다. 내가 아들과 함께 콘텐츠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적절하고 부적절한지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 속성은 ‘감춰진 행동’이다. 이는 거래 후에 상대방의 정보를 이용해 부정직하거나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부르며, 고용주와 직원, 보험사와 가입자 간에 자주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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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로도 이어질 수 있다. 고용주(주인)는 직원(대리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고용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


예를 들어, 보험에 가입한 후 가입자가 “보험이 있으니 이제 조금은 위험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더 부주의한 행동을 한다면, 이는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또 다른 예로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을 제공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정책은 본래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직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아프지 않아도 "오늘은 그냥 쉬고 싶으니 병가를 내자"는 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바로 도덕적 해이의 예다. 회사(주인)는 직원(대리인)이 병가의 목적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 믿지만, 모든 행동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학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선생님이 시험 시간에 “나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여러분은 정직하게 시험을 보세요”라고 말하며 교실을 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학생은 정직하게 시험을 보겠지만, 일부 학생은 선생님이 없는 틈을 타 살짝 책을 보거나 친구와 답을 공유하려고 할 수도 있다. 선생님(주인)이 학생(대리인)의 행동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인 사례다.


친구 간에도 있다. 친구에게 용돈을 빌려주는 경우다. 친구가 “한 달 안에 갚을게!”라며 돈을 빌려간 뒤, 시간이 지나도 갚지 않고 연락이 뜸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친구는 처음에 돈을 빌릴 때는 갚을 의지가 있었겠지만, 막상 돈을 빌린 뒤에는 상대가 계속 독촉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갚는 일을 미루거나 잊어버릴 가능성이 생긴다. 여기서도 돈을 빌려준 사람(주인)은 친구(대리인)의 행동을 모두 확인하거나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은 단순히 경제학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소비자와 판매자, 심지어 친구 간의 관계에도 나타날 수 있는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가 가진 정보를 조금씩 공유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들과의 대화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었다. 유튜브 콘텐츠를 함께 확인하며 서로의 기준을 맞추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의 관심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유익했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이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작은 노력들이 일상에서의 갈등을 줄이고,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경제학이 가르쳐준 이 교훈은 아들과 나의 유튜브 논쟁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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