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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말이 먹히지 않는 이유

신빙성 있는 위협

by 와니 아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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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아이가 내 말을 안 듣지?’


어릴 땐 그렇지 않았다. 부모가 한마디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따르던 아이가, 점점 크면서 부모의 말에 반박하거나 이유를 따지기 시작한다. "왜 꼭 그래야 해요?"라는 질문은 매번 골치 아프다.


특히, 아이가 부모의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어떤 경고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 때는 답답한 마음이 더 커진다. 사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성격이 고집스러워서만은 아니다.


이번 이야기는 ‘신빙성 있는 위협(credible threat)’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던졌던 말이나 행동들이 아이와의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작은 반복이 쌓여, 아이가 부모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부모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바로 "신빙성 없는 위협"이다. "숙제를 안 하면 오늘 TV 못 본다"라고 말하고도, 결국엔 TV를 틀어주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부모의 말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나 역시도 그렇다. 매 저녁마다 아들과 ‘신빙성 있는 위협’이 ‘신빙성 없는 위협’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들은 숙제를 하다 말고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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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숙제하기 싫어요. 그냥 나중에 하면 안 돼요? “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 숙제를 안 하면 오늘 저녁에 태블릿 게임은 못 할 거야. “


아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느릿느릿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 왔다. "숙제를 하지 않으면 태블릿을 못 한다." 하지만 가끔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숙제를 끝내지 않았는데도 아들이 너무 속상해하거나 울상이 되면 태블릿을 허락해 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위협은 점점 효과가 떨어졌다.


위협이 효과적이려면 상대방이 그 말을 진짜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것이 ‘신빙성 있는 위협’이다. 신빙성 있는 위협은 내가 아들에게 태블릿을 금지하겠다고 말하고 도약 속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한 말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경고와 같은 위협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 때만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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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빙성 있는 위협의 대표적인 사례로 영화 ‘대부(The Godfather)’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마피아 두목인 돈 코를레오네는 상대를 설득할 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

이 제안은 단순히 협박이 아니라, 거부했을 때 벌어질 일을 상대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위협이다. 돈 코를레오네는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의 상대는 그 결과를 믿기 때문에 그의 제안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영화 속에서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말머리를 침대 아래에 놓는 장면이다.


대부 비토 코를레오네의 아들인 톰 헤이건(Tom Hagen)은 영화 제작자인 잭 월츠(Jack Woltz)를 설득하기 위해 그를 방문한다. 잭 월츠는 코를레오네 가문이 요청하는 특정 배우(조니 폰테인)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내 영화에 조니 폰테인을 출연시키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조니는 내 경력을 망치려 했어. 그 쓰레기를 내 영화에 출연시키느니 죽는 게 낫지!”


톰 헤이건은 침착하게 자리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코를레오네 씨는 당신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실 겁니다.”


다음 날 아침, 잭 월츠는 침대에서 깨어난다. 이때 그는 침대 위에서 끔찍한 광경과 마주한다. 그가 가장 아끼는 경주마인 "카르투시아"(Cartusia)의 잘린 머리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은 월츠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는 코를레오네 패밀리의 위협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위협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월츠는 조니 폰테인의 영화 출연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대부의 스토리는 너무 잔인한 이야기긴 하지만 ‘신빙성 있는 위협’의 중요한 사례를 보여준다. 물론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앞서 얘기한 치킨 게임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한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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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은 자동차 경주에서 자신의 두 손을 핸들에 묶는다. 상대방이 포기하지 않으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한 것이다. 이 전략은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 상대방에게 "나는 진짜다"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여기서 핵심은, 위협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만 신빙성 있는 위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사례가 많다.


한 마트에 "CCTV가 작동 중입니다"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고 상상해 보자. 표지판을 본 고객이나 잠재적인 도둑은 "CCTV가 실제로 작동 중이기 때문에 내 행동이 기록될 수 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신뢰가 작동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표지판에 적힌 경고가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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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CCTV가 실제로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떨까? 그 표지판은 단순한 장식물로 전락한다. 고객은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이 기록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잠재적 도둑도 경고를 무시하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경고의 효과는 사라지고, 마트의 안전 체계는 큰 구멍이 생긴다.


결국 이 사례는 신빙성 있는 위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실행 가능성"과 "신뢰"를 강조한다. 단순히 CCTV를 설치했다고 끝이 아니다. 카메라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를 지속적으로 심어줘야 한다. 한 번이라도 CCTV가 꺼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고객과 도둑 모두 마트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마트 관리자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CCTV가 설치된 경우에도 정기적으로 장비를 점검하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즉시 수리하며, 심지어 CCTV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추가 표지판이나 화면을 설치하기도 한다. 고객이 매장에 들어와서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들은 CCTV가 "진짜 작동 중"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앞서 얘기한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부모의 신빙성 있는 위협이 아닌 아이의 신빙성 있는 위협도 있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있다면, 그는 단순히 “이걸 사줘”라고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부모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생각해 둔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흔히 하는 말, “이걸 안 사주면 여기서 소리 지를 거야”라는 떼쓰기는 그저 순간적인 분노나 울음 섞인 요구가 아니다. 이것은 부모의 심리와 상황을 정확히 겨냥한 일종의 전략적 위협이다.

이 위협의 핵심은 부모가 체면을 잃을 가능성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마트처럼 사람들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아이가 큰소리로 울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보통 부모는 당황하거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곤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소리 지르며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상황은 사회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크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더 쉬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학습한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엄마나 아빠는 결국 내 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경험을 통해 그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이런 상황에서 한 번이라도 아이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전략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고,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이가 이런 위협을 할 때 단순히 감정에 휩싸여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명확한 논리와 목표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위협을 실행한다. 그 위협의 결과가 성공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끊임없이 계산하고 행동한다. 마트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울며 소리를 지르는 전략은, 부모가 자신의 말을 듣도록 만드는 데 충분히 신빙성 있는 위협이 된다.

어쨌든 아이와의 협상 게임에서 승리를 하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부모들의 고민일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가장 잘 써먹는 신빙성 있는 위협이 지속적으로 먹혀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신빙성 있는 위협은 ‘신뢰’와 ‘실행 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

우선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숙제를 안 하면 태블릿은 없다"라고 말했으면, 그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했다. 부모로서 아이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들지만, 신뢰를 잃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다. 신뢰는 한번 잃으면 다시 쌓기가 어렵다. 나도 가끔 반성한다.

두 번째로는 ‘현실적인 위협’이다. "다시는 태블릿을 못 쓸 거야" 같은 과장된 위협은 오히려 효과를 떨어뜨린다. 실현 가능한 약속을 해야만 위협이 힘을 얻는다.

세 번째는 ‘긍정적인 보상’이다. 위협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숙제를 잘 마쳤을 때 태블릿 사용 시간을 늘려주는 보상을 병행하면, 아이는 부모의 약속을 더 신뢰하게 된다.

아들과의 협상은 아마도 끝이 없어 보인다. 나는 오늘도 태블릿을 닫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점차 커가면서 나의 승리 숫자는 줄어들지도 모른다. 나는 반성한다. 아이에게는 때로 위협이 아닌 설득과 동기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이와의 매일 같은 협상은 끝이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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