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 게임과 가위바위보
"아빠, 오늘은 도블 게임하자! “
아들이 박스에서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도블은 테이블 위에 카드를 놓고, 한 장씩 뒤집는다. 뒤집은 카드와 내 카드의 그림 중에 일치하는 그림을 찾아 먼저 말하면 사람이 뒤집은 카드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카드를 가져간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손이 빠른 사람이 유리한 게임이었다.
"근데 아빠, 먼저 뒤집는 사람이 항상 유리하잖아요.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요! “
"좋아. 그럼 가위바위보로 누가 먼저 할지 정하자. “
나는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는 이번에 바위를 낼 거야. “
아들은 순간 멈칫했다.
"진짜요? 바위를 낸다고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이번에는 바위를 내기로 했어. “
아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바위라면 제가 이기려면 가위를 내면 안 되고, 보를 내야겠죠. 근데 아빠가 진짜 바위를 낼까요? 아니면 속이려고 이렇게 말한 걸까요? “
아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몇 초간 심각하게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저는 가위를 낼게요! “
"좋아. 준비됐지? 가위, 바위, 보! “
나는 약속대로 바위를 냈고, 아들은 가위를 냈다.
"아이고, 내가 이겼네! “
아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말했다.
"진짜 바위를 낼 줄 몰랐어요. 아빠는 속이는 줄 알았는데! “
"왜 그렇게 생각했어? “
"아빠가 바위를 낸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보를 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위를 냈죠. “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게임이론이야. 서로의 선택을 예측하려고 하다 보면, 정작 가장 단순한 선택을 놓치게 될 때가 많아. 그런데 이 상황은 더 재밌는 특징이 있어. 바로 제로섬 게임이지."
가위바위보는 누군가가 이기면 반드시 다른 사람이 져야 하는 구조다. 도블 게임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을 때, 내가 이기면 내가 먼저 카드를 뒤집을 기회를 얻고, 아들은 기회를 잃는다. 이처럼 한쪽의 이익이 반드시 다른 쪽의 손실로 이어지는 상황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한다.
제로섬 게임의 특징은 승자가 얻는 이익과 패자가 잃는 손실의 합이 항상 '0'이라는 점이다. 축구 경기, 체스 같은 승패가 명확한 경쟁이 모두 제로섬 게임이다. 도블 게임에서도 먼저 카드를 뒤집는 사람은 상대방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니,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띤다.
제로섬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규칙이 단순하고 명확하다는 점이다. 승리와 패배가 분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목표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체스나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는 이러한 경쟁이 참가자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고, 관중들에게도 흥미진진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단점도 존재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패자가 느끼는 좌절감이 커질 수 있다. 또한, 한쪽의 이익이 반드시 다른 쪽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협력이나 윈-윈(win-win) 전략이 배제된다는 한계도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제로섬 게임은 때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아들도 어릴 적 유치원에서 처음 가위바위보를 했을 때 그랬다. 게임에서 지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한동안 가위바위보 자체를 하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가 이기면 반드시 내가 져야 한다"는 구조가 아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단순한 일화지만, 제로섬 게임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제로섬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이는 곧, 제로섬 게임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거나 불편함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로섬 게임은 규칙이 단순하고 승패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간관계나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아들은 다시 도블 카드를 준비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제가 먼저 하도록 가위바위보 다시 해요. 이번엔 아빠가 뭘 낼지 꼭 맞출 거예요!"
나는 웃으며 카드를 섞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게임이론은 단순한 놀이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원리다. 제로섬 게임은 우리의 삶 곳곳에 존재하며, 때로는 경쟁과 갈등을, 때로는 흥미와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제로섬 게임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선택을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우리의 선택이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최선일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고민들이 경제와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