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주제는 아들이었다. 수학이 어렵다고 했단다. 수학이 싫어졌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아들과 수학 문제를 함께 풀었다. 그 시간은 즐겁고도 진지했다. 아들은 나와 함께할 때 수학을 좋아했다. 문제를 풀고 나면 환하게 웃었다. 도대체 왜 수학이 싫어진 걸까?
그날 저녁,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사건의 시작은 학교 수행평가였다. 아들의 수학 수행평가는 문제들이 한 장에 줄줄이 나열된 시험지였다. 어딘가 익숙한 구성. 예전에 했던 구몬이나 눈높이 학습지와 비슷했다. 똑같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하고, 계산 실수를 줄이는 연습.
예전엔 우리도 그걸 시켰었다. 하지만 한 달 전, 그만두게 했다.
왜 그만뒀을까? 간단하다. 더 이상 그런 방식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수학을 단순한 ‘계산 게임’으로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수학은 원래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아이 역시 그 방식에 질려 있었다. 반복적인 계산, 정답만 요구하는 문제, 실수하면 같은 문제를 또 풀게 되는 구조. 처음에는 따라갔지만, 점점 지겨워졌고, 흥미를 잃었다. 결국 아이는 그 방식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번 학교 수행평가는 바로 그 지겨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형식 자체가 문제였다. 시험지가 딱 ‘그때 그 학습지’처럼 보였고, 아이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수학을 다르게 생각한다. 수학은 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먼저 상황을 읽고, 어떤 구조인지 파악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표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 다음, 해결 방법을 고민한다. 계산은 마지막 단계다.
계산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거기까지 도달한 경로다. 이 과정을 연습하면 문제를 푸는 힘이 생긴다. 빠르게 푸는 능력이 아니라, 낯선 문제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는 힘.
하지만 학습지는 이걸 놓친다. ‘생각’보다는 ‘속도’와 ‘정답’이 먼저다. 단순 반복, 시간 체크, 실수하면 다시 반복. 아이는 점점 생각하지 않고 푸는 법만 익힌다. 이게 문제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아이와 함께 문제를 천천히 읽었다. 어떤 조건이 있는지, 무엇을 물어보는지 하나씩 짚었다. 직접 문제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보게 했다.
계산은 마지막에 했다. 실수보다 중요한 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답에 도달했느냐다. 풀이과정을 쓰게 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게 했다. 한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 수학이 재밌어졌다.
아이는 점점 수학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풀었어?”라는 질문에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야”라고 대답하는 순간이 생겼다. 그게 바로 수학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번 학교 수행평가가 그 흐름을 깨버렸다. 다시 수학이 질리게 느껴졌을 것이다. 한 문제씩 차근차근 가던 아이에게, 예전 학습지처럼 빽빽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시간은 재지 않았지만, 문제를 보는 순간 지겨움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이거 또야?’라는 반응. 그게 바로 아이가 수학을 싫어하게 된 이유다.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질렸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이가 수학이 싫어졌다는 말에 걱정이 앞섰다. 나는 그런 방식 때문에 싫어진 거라고 설명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감정이 올라왔다. 서로 말이 길어졌고, 결국 말다툼으로 번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눈높이, 구몬 같은 수학은 과연 ‘수학’인가? 속도와 정답이 강조되는 수업에서, 아이들은 생각할 기회를 잃고 있다. 눈으로만 계산하는 법을 배우고, 과정은 생략한다. 문제의 본질보다는 빠른 풀이에만 집중한다. 당장은 점수가 나올지 몰라도, 머지않아 수학은 멀어지는 과목이 된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학을 다시 ‘사고의 언어’로 돌려줘야 한다. 문제를 보고 ‘이건 왜 이런 조건이 붙었지?’라고 물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계산보다 먼저 ‘이 문제의 핵심이 뭘까’를 고민하게 해야 한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풀이과정을 만드는 능력이다.
우리는 가끔 ‘지금 잘하면 된다’는 말로 교육을 판단한다. 하지만 아이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억지로 시키면, 나중에 완전히 놓아버릴 수도 있다. 수학은 즐거워질 수 있는 과목이다. 생각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오히려 수학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다.
아들과 수학을 함께할 때, 나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아들은 생각을 잘했고, 질문도 많이 했다. 그건 배움의 시작이었다. 수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한 장의 시험지가 그 흐름을 끊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가? 단순한 연산 훈련인가, 아니면 사고를 키우는 도구인가?
수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안에 아이의 생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수학이다.
사실 수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과목 그 이상이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순서로 접근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수학을 넘어서 사회의 여러 문제를 푸는 힘과도 닿아 있다. 수학은 어쩌면, 세상을 풀어가는 작은 알고리즘의 연습일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는 언젠가 또다시 꺼내게 될 것 같다. 아이와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며, 나도 여전히 수학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