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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영 Aug 01. 2016

군산 내항 언저리

탁류가 저만치 물러난 자리에



한여름 뙤약볕이 머리 꼭대기에 머문다. 한창 무더운 때이지만 초록 잎사귀 무성한 언덕을 등에 지고 강바람, 바닷바람이 함께 볼을 스쳐 지나가니 군산 읍내 한 바퀴를 걷는 것이 그리 버겁지는 않다. 물론 평일 낮 시간임에도 골목골목을 기웃대는 이들이 제법 되는 까닭이 그 때문은 아니다. 저마다 사연은 있겠지만 그네들을 이끈 것은 열에 아홉 군산에 머물고 있는 옛 시간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꽤 오래된 건물인 것만은 대번에 알겠다.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 미즈커피, 장미공연장 그리고 군산세관까지 군산 내항 따라 장미동 일대에 차례로 들어선 건축물들은 일제 때부터 꿈쩍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본래는 다들 무엇이었는고 하니 근대건축관과 근대미술관은 각각 조선은행 군산지점, 18은행 군산지점이었다. 미즈커피는 일제강점기 식료품과 잡화를 수입 판매했던 미즈상사 건물이다. 다다미방이 남아있는 이곳은 현재 북카페로 활용하고 있다. 장미공연장은 1930년대 조선미국창고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했던 창고로 한때 유흥업소로 활용되다 지금은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보수하였다. 그 앞에는 본래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나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단장한 장미갤러리가 있다. 군산세관 본관은 호남관세 전시관으로 문을 열어두고 있다.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쉬지 않고 걸으면 10분 남짓 되는 항구 안쪽 길가에 근대의 흔적과 수탈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군산시가 그 한가운데 군산의 옛 시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근대역사박물관을 새로이 마련함과 동시에 일대를 군산근대역사벨트로 조성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군산의 근대기는 비단 여기에 묶이지 않는다.      



일명 '히로쓰 가옥'이라고 하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화중지병畫中之餠야속하기만 했던 쌀 곳간 

금강을 타고 서해에 이르기까지 수려한 물길이 흘렀건만 안타깝게도 100여 년 전 군산에는  채만식이 소설 <탁류>에 그려낸 것처럼 흐릴 탁濁, 흐를 류流 글자 그대로 흐린 물이 흘렀다고 한다. 개항 이후 강점이 시작되면서 일제는 너르고도 비옥한 호남평야의 쌀을 탐냈다. 조선시대 호남의 세곡이 모이는 군산창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군산진이 설치되어 있던 이 땅은 이내 일제의 쌀 수탈 기지가 되고 말았다. 세상이 혼탁해지자 곳간 가득 차고 넘치는 것이 쌀인데 그 쌀 한 톨을 그리워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주변을 그저 서성이기만. 그야말로 화중지병畫中之餠, 그림의 떡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탁류는 저만치 물러나고 그 자리에 자박자박 다시금 좋은 흐름이 생겨나고 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그 시절의 기억이다. 군산 내항 가장 가까운 장미동의 장미는 탐스러운 꽃 장미가 아니다. 감출 장藏, 쌀 미米 자를 쓴다. 


1899년 군산항이 열렸고 동시에 장미동을 비롯하여 군산내항 인근은 치외법권 조계지가 형성되어 격자로 정비되기 시작했다. 군산까지 쌀을 감춰 오고 또 감춘 쌀을 단숨에 바다 건너로 가져가고자 일제는 항구 코앞까지 기찻길을 내고, 갯벌 위로는 뜬다리를 놓았다. 근대미술관과 근대건축관 사잇길에 이제 더 이상 기차가 지나지 않아 녹슨 철길이 보인다. 들풀에 잠겨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기 십상이다. 뜬다리는 본래 4기 가운데 3기가 남았다. 뜬다리는 부잔교浮棧橋라고도 한다. 밀물 때에는 다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썰물 때에는 수면이 낮아지는 만큼 다리 높이가 저대로 조절되는 선박 접안시설이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가득한 내항, 멀찍이 물러나 있는 바닷물과 갯벌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어선들 때문인지 그 위로 떠 있는 부잔교가 더욱 덜름하게 느껴진다.      


일제 강점기에 전당포로 운영되었던 사가와 가옥.
근대건축관으로 단장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근대건축관 내부 모습. 한때 예식장과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일본식 정원이 멋스러운 군산 유지들의 터전 

어디 뱃길, 기찻길뿐이었겠는가. 일제는 호남의 쌀을 더 쉽고 빠르게 나르고자 1908년 전주에서 군산까지 약 40km에 달하는 도로를 냈다. 전군가도全群街道, 현재 전주와 군산을 잇는 26번 국도로 ‘번영로’라 이름 붙어있다. 그 긴 길이 굴곡 없이 직선으로 시원히 뻗어있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 신작로라는데 다시 한 번 놀란다. 1926년에는 군산 시내와 내항을 원활히 연결하기 위해 터널을 냈다. 해망굴海望窟이다. 한여름 땡볕이 무색해 질만큼 터널 안은 서늘했다. 전군가도의 군산 끝자락이 닿고, 해망굴이 관통하는 월명산 북측 월명공원에 오르니 군산 내항과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월명공원 산책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 조금 더 내밀한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신흥동, 영화동, 월명동 등 내항 가까이의 원도심은 강점기 일본인 주거지역이었다.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 대표적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포목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히로쓰의 집이었다. 2층의 목조 가옥으로 집안의 방과 방은 기다란 복도를 따라 연결되어 있는데 온돌방도 있고 다다미방도 있다. 복도에서 볕이 들어오는 쪽으로 벽 대신 통유리 창을 내 석등, 작은 석탑이 배치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규모는 그보다 훨씬 작고, 가옥 내부로 들어가 볼 순 없지만 본래 전당포였다는 영화동의 또 다른 일본식 가옥 사가와에서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작은 연못 주변으로 멋스러운 수목과 수수발, 5층 석탑이 배치된 일본식 정원을 조금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원도심 가장 깊숙한 곳에 1909년 창건한 동국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 조동종 우찌다 스님이 금강선사라는 이름으로 일조동에 개창한 것을 191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대웅전과 요사채를 지었다. 해방 후에 동국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1970년에 조계종 사찰이 되었으나 그 모습은 일제 때 그대로다. 단청이 없는 것이며 지붕의 경사가 깎아지를 듯이 급하고 용마루가 일직선에 가까운 것, 대웅전과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복도로 연결된 것 모두가 우리의 전통 사찰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본 동종이 설치된 범종각과 범종각 주위에 놓인 화강암 석불상 또한 사찰보다는 단정한 신사를 떠올리게 한다.      





수탈의 흔적 위로 새로운 추억을 포개어 

동국사로 드나드는 길목 여인숙 간판에 눈길이 간다. 1960년에 지은 건물로 2007년까지 실제 여인숙이었다. 이후 영업을 하지 않아 흉물스레 있던 것을 창작문화공간으로 단장했단다. 같은 여인숙이지만 여러 이웃이 모여 뜻을 이룬다는 새로운 의미의 여인숙與隣熟이다. 전시실에서는 2014년 입주작가들이 지역의 관광해설가와 함께 군산이라는 지역을 알아가는 아카이브 형식의 <군산의 발견-육하원칙>展을 선보이고 있다. 걸으며 마주했던 눈 익은 장면들도 더러 있는데 근대도시 군산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시각은 어떨까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더라.  

 

군산 여행의 또 다른 백미는 이성당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문을 연 이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이다. 대표 메뉴인 단팥빵과 야채빵이 나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게 바깥으로 줄이 늘어질 만큼 인기다. 그 틈에 끼어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겨우 야채빵을 입에 넣는다. 부드러운 식감의 빵 속에 양배추와 당근, 양파 등 잘게 썬 야채를 마요네즈에 버무린 소가 들어 있다. 어딘가 모르게 샐러드를 ‘사라다’라고 했던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진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달래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원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초원사진관이다. 1998년에 개봉했으니 십 수년이 지났음에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아련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가 보다. 들어오는 이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사진관에서 사진사였던 남자 주인공이 주차 단속원이었던 여자 주인공의 증명사진을 찍어주거나 편지를 남기던 장면을 따라 해본다. 뼈아픈 수탈의 역사, 뺏고 빼앗기던 땅에 남겨진 것들 위로 새로운 추억들이 한 겹, 두 겹 포개어지는 군산이다. 제법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그 모습이 흐뭇하더라.





위 글은 2014년 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농민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생활정보지 <전원생활>에 기고했던 '근대를 거닐다' 연재 가운데 2014년 8월호 '군산 내항 언저리'편의 원문임. (글 : 서진영 / 사진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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