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약해진 날. 나는 '도'를 따라갔다.
젊은 시절,
혼자 길을 걷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 하며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곤 했다.
내가 어리숙해 보여서였을까?
아님 진짜 그들은 뭔가 보는 능력이 있는 걸까?
한 번은 종로를 걷다
'영'이 맑아 보인다며 말을 걸어온 남자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삶의 방향을 못 찾고 헤매던 시절.
뭐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 같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엔 귀신이 많아요. 지금 이 카페에도 가득한데,
내 눈엔 그들이 보입니다.”
순간 내가 생각했던 건,
'이 사람 정신이 아픈 사람인가?’
딱 그거였다.
커피값만 날리고 카페를 나왔다.
그 후로도 길을 가다
몇 번이나 그런 사람들을 만났고
계속 무시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또다시 두 여자가 나를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텐데,
한 여자가 던진 말이 내 가슴에 훅 박혔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는 것 같네요.
그 아픔이 저에게까지 느껴져요.”
그 여자는 자신의 배를 만지면서
정말로 아픈 듯 얼굴을 찡그리며
이야기를 했다.
당시 아버지는 많이 편찮으셨다.
그 순간,
그녀가 정말 뭔가를 아는 것만 같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멈춰 서서 난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조상이 공덕이 보이는데 막혀있다며
그런 이유로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말.
제사를 지내면
아버지의 병세가 나아질 거라는 말.
지금의 나라면 헛웃음을 지으며 넘겼겠지만,
그때의 나는 절실했다.
결국 그들을 따라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에 내렸다.
묘한 호기심과 '아버지를 고칠 수만 있다면'
하는 간절함이 뒤섞인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20대 중반의 나는
순진했고 무모했고 궁금증이 많았다.
어느 건물의 빈방,
급조된 듯한 제단 앞에 서서
그들이 건넨 한복을 입었고
시키는 대로 몇 번의 절을 올리고 의식을 마쳤다.
의식을 마치자 그들은 내게 헌금을 요구했다.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이 얼마 없었다.
미안해하는 내게 그들은
“있는 것만 정성껏 내면 된다”라고 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모두 내어주고
건물을 나섰다.
나오면서
'혹시 저들이 나를 잡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다음에 또 와서 다시 제사를 지내라고 하며
나를 고이 보내주었다.
나오면서 문득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삥뜯긴 거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크게 후회하진 않았다.
베일에 싸여있던 그들의 정체를 확인했다는 후련함,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 했다는
위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년,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의 인사동 거리에서
또다시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다.
한 젊은 여자가
내 왼손에 '천운’이 있다며 말을 걸어왔다.
세월이 이토록 흘렀는데,
그들의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도를 아십니까’ 라거나
'영이 맑다'는 구태의연한 말만 사라졌을 뿐.
다만 달라진 건 나였다.
예전이라면 '혹' 해서
멈춰 서서 이야기를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난 그런 이야기를 웃어넘길 수 있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들어봤고,
관심이 없다고 했음에도
자기는 그들과 다르다며
이야기 좀 하자고 끈기 있게 따라왔다
그리고 목이 마르다며
커피 한잔 사달라고했다.
(그들은 항상 먹을걸 사달란다.)
날씨는 무더웠고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 무더위에 이런 일 (나에겐 '이런 일'이지만
그녀에겐 간절함일지도..)을 하는 그녀에게
차 한잔 사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난 혼자였고 시간 여유도 있었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교육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까지 합류해 셋이서 마주 앉았다.
그녀는 나름 내 사주를 풀이해 주더니
내가 묻는 질문에 열심히 답해주고는
파주에 있는 자신들의 근거지로 함께 가자고 권했다.
(이렇게 그들은 신도들을 끌어모으는가 보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지금 한국에 잠시 머무는 중이라
시간이 없다고 정중히 거절을 하고
오늘 이야기는 잘 들었고 천천히 가시라고.
나는 먼저 일어나겠노라고 인사를 하고는
카페를 나왔다.
내가 카페에 그녀와 마주 앉았던 건 사실
그 무더위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며
쉽지 않은 행동들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
작은 휴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딸 같은 그녀에 대한
나의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젊은이들은 왜 이 길을 택했을까.
그들 나름의 확고한 신념일 수도,
혹은 누군가에겐 유일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 대해
쉽게 비난하거나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사람은 마음이 약해진 순간,
아주 쉽게 어디라도 의지하고 싶어 진다는 것.
벼랑 끝에 섰을 땐 그들의 손길이
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진다는 것.
(20대의 내가 아버지의 병환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그들을 따라갔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누군가가 타인의 약해진 마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한 번쯤은 그런 연약한 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다.
약해진 마음은 죄가 아니다.
마음이 약해질때 우리는 보통
밖에서 구원을 찾으려한다.
하지만 진짜 나를 구원할수 있는 사람은
길 위의 낯선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