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을 앓던 그녀

누구에게나 마음의 감기는 찾아온다.

by 아이리스 J


오래전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시골 동네로 이사 온 후

어쩌다 한인 한 분을 알게 되었다.

한인이 많이 살지 않는 곳에서

한국 분을 우연히 마주치면

잃어버렸던 가족을 만난 듯이

너무 반갑고 감개가 무량하다.

외로운 이민 생활 중에 알게 된

산소 같은 분이라 가끔 그분께 놀러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가 있다면서

소개해 준다고 하셨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어렸고

아들 둘을 가진 엄마였다.

얼굴도 하얗고 키도 크고 이쁘장했으며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했다.

그녀는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금세 나와 친해졌다.

금세 나에게 ‘언니 언니’ 하면서 따랐다.


우린 둘 다 육아에 많이 지쳐있었더라

쉽게 친구가 되어 자주 만났다.

그런데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꾸 자기 집에 누가 도청 장치를 해놨다고 한다.

누가 했냐 물으니

자기네 집에 전기 공사를 하러 온 사람이

해놨단다.

하릴없는 심심한 노인들이

전기 공사하는 사람들을 시켜서

도청 장치를 심어놓고

자기네를 염탐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면

자기 아이들을 헤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위험해서 밖엘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정신이 아픈 사람 같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할머니, 아빠가 좀 아프시고

현재 남동생도 병원에 있다고 했다.

‘아 가족 내력이 있구나.'


그녀는 결혼하고 증상이 시작된거 같았다.

외로운 이민 생활에서 발병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걸 알고나니 계속 만나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피하기보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외로운 이민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으면

그 증상이 발현했울까 싶고

뭔가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녀의 말만 몇 시간이고 들어야 했다.

그녀는 집안일도 안 했다.

그냥 누군가 말할 사람이 있으면

아이들도 방치한 채

자기 이야기만 하기에 바빴다.

아이들에겐 먹을 걸 시켜주고

게임하게 하고 자신의 우울한

이야기만 쏟아내기 바빴다.

나중엔 자기가 돈을 줄 테니

나에게 하루 세끼 밥을 해달라고 했다.

식사 때가 되면 나의 집으로 오겠다면서.


그건 아닌 거 같아 거절했다.

첨엔 그녀의 이야기만 듣고

남편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니

남편은 가정을 돌보기 위해 열심히 사는

착한 사람이었다.

가끔 저녁이 되면 나오는

그녀의 폭언과 폭력을

남편이 컨트롤할 수가 없어서

911을 불러

정신병원에 가기도 했다는걸

알게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면

약을 받아 퇴원을 하는데

약을 먹으면 또 정신이 몽롱하다고

약을 안 먹기 일쑤였다.

그런 상태가 점점 심해져서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었다.

같이 차를 타고 가면 옆에서 혼자 중얼중얼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뭔가 속에 쌓인 걸 뱉어냈다.

들어보면 시댁을 비롯한 주위 욕을 하는 거 같았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두 아이 중 5학년인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은

엄마의 그런 모습이 부끄러운 듯

엄마에게 화를 내면서

그만하라고 소리를 쳤다.


나는 어떻게 이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듯했다.

약을 먹었으면 했는데 본인이 거부를 하니

내가 뭐라고 약을 먹으라고 강요를 하겠는가.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이상한 말을 하면서 싸울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면서 나에게 '경찰을 불러줄까?' 하고

물었지만 내가 괜찮다고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그녀가 나를 따라다니면서 시비를 거는데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렇다고 아픈 사람에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는

그날 저녁 다시 시작된 그녀의 행동으로

남편이 911을 불러서 정신병원에 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집은

서둘러 정리를 하고

이사를 갔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모르는 전화반호로 전화가 왔다.

그녀였다.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녀도 그날 일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난 다른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기에..

그녀가 나에게

‘언니. 가끔 내가 힘들면 전화해도 되지?'

하고 물었다.

나는 ‘으~~ 응’ 하고

뜨뜻 미지근하게 대답을 하고 끊었다.

그리고 다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아이들도 많이 자랐을 텐데 이제는

정신이 건강해졌는지…


조용한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캐나다 이민 생활이 가끔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예전에 이민 초기에

내가 렌트해서 살았던 집주인 할머니가

계셨는데 낮엔 아들 며느리가 일하러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서 손주를 키우면서

이야기할 이웃도 없고 우울증에 걸리셨단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러다 몇 년 안 되어 돌아가셨다.


요즘 많은 사람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단지 이민자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이들조차

문득문득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깊게 병들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오늘 나는 오랫동안 소식이 닿지 않았던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려보려 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오랜만에

잊었던 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시면 어떨까요?

거창한 위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잘 지내냐'는 짧은 인사 한마디.

'보고 싶었다'는 한마디가

텅 비어있던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한 온기로 채워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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