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실패일까?

가족에 대한 새로운 단상

by 아이리스 J

요즘 한국에서 이혼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자라온 시간과 환경 속에서
이혼은 늘 설명해야 할 선택이었고,
어른으로서 끝까지 해내지 못한 결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이 질문은 사회를 향한 비판이 아니라,
오래된 나 자신의 생각을 향한 질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가족은 가장 중요하다고 배워왔다.

가족이니까 참고,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가족이니까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부모의 말은 옳고,

자식은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속에서 자란

한국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렇게 자랐다.

부모의 이혼에 대한 선택이 잘못되었더라도

그 결과를 자식이 감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강요,

희생이라는 말로 포장된 침묵도

가족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변하고 있고,

캐나다에서 살아가며

그 믿음은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캐나다 살면서 여러 가족의 형태를 본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이혼 가정일 정도로 이혼은 흔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특별한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친구의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그저 하나의 배경일뿐이다.

한국에서 이혼은 여전히

‘실패’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참지 못한 어른의 이기심,

가정을 지키지 못한 무책임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래서 관계가 무너진 뒤에도

많은 부부가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부모가 함께 사느냐보다,

어른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존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로를 미워하며 한 공간에 머무는 부모보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떨어져 지내는 부모가

아이에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전제가 자연스럽다.


이 차이는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도 드러난다.

딸이 엘리(초등학생)다닐때
부모가 이혼한 친구가 있었다.
가끔 학교에서 콘서트, (일종의 학예회)가 열리면
가족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그 친구네는 늘 대가족이 참석했다.

이혼한 엄마와 아빠,
새엄마와 새아빠,
그리고 다른 친척들까지.


한국이라면 꽤 어색하게 느껴질 법한 풍경이었지만
그들은 어색함 없이 함께 축하하고 웃고 즐겼다.
학예회뿐 아니라

생일이나 졸업식에도 모두 참석해
그 자리를 기꺼이 빛내주었다

그 아이가 밝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고

물론 아이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만

내게는 또 다른 이혼 가정의 모습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느낀 건,

아들의 베스트 프렌드를 통해서였다.

아들에겐 인도계 친구 데이빗(가명)이 있다.
아들을 통해 데이빗 부모가

데이빗이 어릴 때 이혼했다고 들었고,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얼굴에 드리운 옅은 그늘이 마음에 걸렸다.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의 안타까움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캐나다다.

이혼 가정이 흔한 사회에서 자란 아이가

부모의 이혼을

반드시 상처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예상은 맞았다.

가끔 아들에게 데이빗을 이야기를 듣는데

아이는 아주 씩씩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다.
대학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스로 용돈을 벌며 자기 삶을 책임지고 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지나치게 의존하지도 않는다.

같이 살되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관계처럼 보였다.


얼마 전,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요즘 데이빗은 어떻게 지내?

아빠, 엄마와도 잘 지내고 있어?”

아이의 대답은 담담했다.


아빠는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엄마는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가

최근에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데이빗은

그 사실을 무척 기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충격이 밀려왔다.

데이빗은 어리지만, 곁에서 엄마를 지켜보며
혼자인 엄마가 느꼈을 외로움을

마음으로 같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겨 다시 웃게 된 모습을 보며
자신도 함께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나를 찡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리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거의 모든 생각을 한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반드시 상처받은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타인의 외로움에 민감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50-60대인 우리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세대다.
부모 세대에게서는

‘무조건적인 효’와 ‘참는 결혼’을 배웠고,
자녀 세대에게서는

‘나의 감정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듣는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자기 보호인지 헷갈린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해 온

수많은 침묵들이

과연 사랑이었는지도 다시 묻게 된다.


가족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무조건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랑은 강요될 수 없고,

존중 없는 희생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제는 묻고 싶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함께 사는 형태인가,
아니면 서로의 삶과 감정을 인정하는 관계인가.

어쩌면,

가족의 의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야 그것을 다시 정의하려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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