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화나 공장 경험기. 4편

리한나. 그녀 이야기

by 아이리스 J

⁷마리화나 공장에 80프로는 인도, 파키스탄인들이다.

15프로는 흑인들 그리고 5프로는 베트남, 필리피노.

그리고 전 직원 중 90프로는 여직원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도 있고

딸까지 포함한 가족도 있고

사촌, 이모등 일가친척이

서로 연결해 줘서 같이 다니기도 한다.

심지를 만들지 않고 저렇게 앞부분을 막아서 상품을 만들기도 한다. 저모양도 나름의 방법이 있다.

첨에 들어갔을 때

직원들 중 80프로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인들이

커다랗고 이쁜 눈만 내놓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에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얼마나 이쁠까?' 상상했었다.

그러나 눈이 얼굴의 50프로를 차지한다는데

코, 입도 얼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마스크를 벗은 그녀들을 보고 깨달았다.


그중에

나를 무척 경계하던 직원이 있었는데

이름은 '리한나'였다.

리한나의 첫인상은 서늘했다.

키가 자그마하고 다크서클이 온 얼굴을 가린 듯

찌푸린 얼굴로 나를 항상 쳐다보았다.

나이는 많이 들어 보였는데 자기 나이는 비밀이란다.

사람들은 그녀가 공장에서 스케일(무게 재는 저울)을

제일 잘하는 베테랑이라 했다.

한 시간에 4박스를 채우는 게 목표량인데

리한나는 10박스 이상을 채운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스케일을 맡게 된 후로 그녀가 나를 경계했다.

스케일은 개인 소유가 없는데

자기 스케일이라며 텃세를 부렸다.

그럴 때마다 난 그녀에게 양보했고

스케일에 욕심 내는 그녀를

'텃세 심한 무서운 직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를 주시하면서 따라다니고 참견을 하는데

왜 그러는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나에게 잘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계기는,

공장에서 몇 달에 한 번씩 있던 교육 후였다.

교육 후 작은 테스트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모든 걸 물어보며

답까지 알려달라 했다.

별거 아니기에 난 흔쾌히 알려줬고

그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영어 단어를 잘 모른다는 거였다.

심지어는 그녀의 이름 알파벳을 그리기까지... ㅠ.ㅠ

나는 그녀가 어떻게 여기에 들아왔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영어로 말은 어느 정도 했기에 영어를 쓸 줄 모를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었다.

(다른 직원들은 그녀가 평소 고집을 피우기도 했고

귀찮게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녀의 부탁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다른 직원들에게 살갑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그녀의 모든 걸 받아주자

그녀가 서서히 자기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마리화나 재배하는 모습

마스크를 벗은 그녀의 모습은 나이는 있었지만

무서운 얼굴이 아니고 오히려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파키스탄 사람이었고

그녀가 아주 어릴 때 5살 때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자기의 숙모 집에 들어가서 살았는데

숙모는 그녀에게 교육은 안시키고

그 어린아이를 하녀로 부려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했다.

그렇게 20살이 되었을 때

캐나다에 사는 사촌 언니의 도움을 캐나다에 넘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오자마자 사촌의 도움으로 어떤 공장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20년 이상을 공장을 전전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그 사이 그녀는 결혼할 시기가 되었는데

파키스탄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나 친척들이 소개해준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얼굴도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결혼사진은 행복해 보이는 사진은 없고

모두 뾰로통해 보이거나 화가 난 사진들 뿐이었다.

그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단다.

그러나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었기에

할 수 없이 결혼을 했단다.

그래도 가장 이뻤던 추억이라 그런지

그 사진들을 다 간직하고 있었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남자와 결혼하고 캐나다로 돌아와

남편이 된 그에게 영주권을 해줬는데

남편은 일도 안 하면서 리한나가 벌어오는 돈으로

주말이 되면 리한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쇼핑을 하고

생활비와 자기 용돈을 쓰며 살았다고 한다.

리한나는 그래도 결혼을 했으니

가정을 꾸리고 싶어 아기를 갖고 싶어 했지만

그 남자는 아직 아기는 이르다며

계속 미뤘단다.

그렇게 결혼 생활이 2년이 되어 가던 어느 날,

집에 가보니 그 남자는 리한나가 벌어놓은 모든 돈을 홀랑 가지고

사라졌다고 했다.


20대 초반의 여리고 어린 신부였던 리하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고

그 트라우마로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하고 담을 쌓고 지냈으며

생존을 위해 삶과 싸우며 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잔뜩 찌푸린 얼굴은

다가가기 힘든 거부감을 자아냈지만,

그것은 거대한 두려움을 은폐하려는 본능적인 몸짓이었다.

겁먹은 작은 강아지가 온 힘을 다해 짖어대는 것이

기실 앙상한 내면을 보이지 않으려는 절박한 가면이듯,

그녀의 무서운 표정 또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듯하다.

그녀가 나를 경계한 이유는

내가 일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내가 자신의 경쟁자가 되어

자신이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전의 과도한 공장 일로

한쪽 손도 기형이 되어 있었고

관절도 좋지 않아

절뚝거리며 걷기도 했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쉬는 동안

어디에 의지할 수가 없었으므로 버티며 일을 하는 중이었다.


나에게 드러낸 그녀의 본모습은

순수했고 장난스러웠고 재미있었따뜻했다.

리한나와 함께 하면 항상 웃을수있었다.

리한나는 운전 면허가 없었기에

출퇴근할 때 택시를 타고 다녔다.

캐나다는 택시비도 비싼데 그녀에겐 다른 길이 없었다.

그녀의 집과 회사가 먼 곳이 아니었음에도

버스는 돌고 돌아 1시간이

걸려야 올 수 있었기에 택시를 타는 것이

그녀에겐 최선이었다.

가끔 내가 리한나를 집에 데려다줬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차비라며

5불씩을 쥐어줬다.

내가 친구니까 해주는 거라고 괜찮다고 하면

화를 내면서 좌석에 5불을 놓고 갔다.

그렇게 정직하고 따뜻하고

마음이 이쁜 리한나를

그녀의 사촌과 조카는

아직도 돈을 빌리고 안 갚고 이용해 먹고 있었다.

리한나는

은행 카드도 사용을 못해서

사촌과 조카에게 의지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리한나의 돈을 더 빼서 자기들이 쓰고 있었다.


그걸 안후로 난

리한나가 은행 갈 때 같이 동행해서 돈을 인출해 주고

가끔 집에 데려다주고

또 가끔은 같이 복권도 샀다. ㅎㅎ

리한나의 한 가지 취미는

일주일마다 복권을 사는 거였는데

한두 장 사는 게 아니라 100불어치는 사는듯했다.

회사에서 직원들과 1불씩 돈 모아 사는 복권,

또 다른 자기 친구들과 모아서 사는 복권,

자기 혼자 사는 복권까지 해서

그녀는 100불 이상을

복권 구입에 쏟아붓고 있었다.

내가 그 돈을 아끼라고 했더니

전에 자기랑 같이 공장 일을 했던 친구가

어느 날 복권이 밀리언이 당첨되어서

공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차렸다면서

(공장을 오고 갈 때 그 친구의 식당이 보였다.)

자기도 그 친구처럼 복권이 당첨되어

회사를 그만두는게 꿈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녀의 하나뿐인 희망을

내가 꺾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복권 당첨 금액이 크게 올랐을 땐

그녀와 같이 복권을 사기도 했다.

복권되면 반반씩 가지기로. ㅎㅎ

몇 번 20불이 당첨되었었는데

너무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리한나는 학교에서 세상을 배우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거친 삶의 현장에서 정직이라는

어려운 과목을 스스로 독학했다.

많은 지식을 쌓고도

타인의 삶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이들보다,

교육의 기회조차 박탈당했음에도

누구보다 선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녀가

내겐 훨씬 더 훌륭한 스승이었다.

공장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책 속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리한나가 흘린 땀방울과,

그녀가 지켜온 서툴지만

정직한 선의 마음속에 있었다.

이렇게 난 이곳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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