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노 Jan 06. 2023

혼자 걷는 길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들어가기 전에 운전면허를 땄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운전면허를 따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좀 늦은 편이었는데, 차도 없는데 면허를 따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면허 따기를 서두르지 않았던 내게 아빠가 말씀하셨다.

"네가 면허가 있으면 어쩌다 차가 생겼을 때 너한테 기회가 돌아갈 확률이 크지만, 네가 면허가 없으면 차가 생겨도 네가 받을 수가 없어.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갖는다는 건 그런 거야."

차를 유지할 능력만 있다면 차를 사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면허를 땄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어차피 차량 유지비용을 벌 수 없었지만,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면허증을 따면서 대학원 학업과 병행하여 병원에서 주 1~2회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학생 신분으로는 나름 고소득의 용돈벌이가 되었기에.

그리고 약속대로 아빠는 내게 차를 사 주셨다. 그 당시 내가 몰기에는 좀 과한 중형세단을.......


그때부터였다. 마치 다리가 없는 인어공주처럼 걷지 않게 된 것이.

어릴 때부터 움직임이 없던 아이였다. 반드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잘했던 모든 것들은 오래도록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으면 유리한 것들이었다. 대학원에서 교내 식당까지도 차를 타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했고,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더더욱 걸을 일이 없었다. 내 다리가 퇴화될 거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는지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요즘 대부분의 도시에 산책로 조성이 잘 되어 있지만, 내가 사는 곳도 산책로와 자전거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타지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의 열정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관심은 없었는데, 얼마 전 이곳까지 나를 보러 찾아온 지인과 외곽 커피숍에 나갔다가 그들이 찾아오는 이 길이 얼마나 예쁘고 이용하기 편하게 잘 되어있는지를 보게 된 것이다. 강을 따라 반짝이는 햇빛, 예쁜 나무와 꽃, 풀들이 어우러진 길을 보며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길울 왜 한 번도 걷지 않았을까.


남편과 나는 조금 이른 은퇴를 꿈꾼다. 도시를 벗어난 전원주택에 살면서 개들과 자연을 즐기며 함께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 직장생활을 하며 누리기엔 그 시간이 너무 짧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취미 생활을 하며 온전한 여유로움으로 그와 나의 교집합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는 함께 할 취미거리를 열심히 찾고 있다. 늙어서 뭔가를 배우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을 알기에, 은퇴 후엔 진정 그 취미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싶기에 지금 열심히 찾고,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테니스를 시작했고, 그림과 검도, 목공과 악기에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청둥오리가 떼를 지어 다니고, 얼음이 꽝꽝 언 개천 위로 돌을 던지는 개구쟁이들, 연을 날리는 할아버지,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애견인들, 혼자 또는 둘이서 열심히 걷거나 뛰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걸음걸음 내딛으며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주자, 바로 전화가 온다.

"나 지금 자전거 알아보고 있어!"

날이 풀리면 남편과 자전거를 타고 둘레길을 완주하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또 하나의 취미를 만들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오래 공들인 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