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김밥

아이는 도시락 뚜껑을 열지 못했다.

by 박대노

김밥을 정말 못 싼다. 다른 음식은 곧잘 해서 나가서 사 먹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도 듣는 편인데, 김밥만큼은 한 번도 제대로 싸 본 적이 없다.


내가 똥 손이라 그런가?

그런 것도 같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보고 그리는 거 맞느냐고 딸아이가 놀리는 거라든지, 흥이 나서 몸이 반응할 때 남편이 다른 데 가서는 춤추면 안 된다고 집에서만 하는 거라고 다짐을 받는 걸 보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만 같다.


아닌데……. 주판이나 피아노같이 손가락만 쓰는 건 또 곧잘 하는데……. 이상하다.

김밥을 싸는 건 손가락이 아닌 손, 손목과 연결된 몸의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인 것인지, 아무튼 잘 못 싼다!




내가 처음 김밥을 싼 건,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이다.


그전까지는 내가 김밥을 쌀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도 없고, 친정 엄마나 동생이 예쁘게 싸준 김밥을 먹기만 하면 됐었는데, 육아휴직도 한 마당에 김밥 싸 달라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라 넘치는 의욕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싸게 된 것이다.


친정 엄마와 동생은 전생에 김밥 여왕, 김밥 공주라도 되는 것처럼 정말 예쁘고 맛있게 김밥을 싼다. 나도 김밥 여왕 딸인데 뭐, 내 동생만 김밥 공주겠는가?

그리고 싸는 건 처음이지만, 많이 먹어보지 않았던가? 재료 손질하는 것쯤은 인터넷에 넘치고 넘치는 레시피를 참고로 해서 준비하면 되겠지!


엄마가 싸주는 첫 도시락인데 멋들어지게 싸주고 싶은 마음에 3단 도시락을 준비했다. 1단은 김밥, 2단은 유부초밥, 3단은 모둠 과일.

도시락을 열어보고 뿌듯해할 아이를 기대하며 아이 가방을 쌌다.


소풍에서 돌아온 아이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가 싸 준 도시락 때문인가?

“김밥 다 먹었어?”

“엄마 김밥도 맛있었는데, 친구들이 나눠 준 김밥 먹느라 다 먹진 못했어.”

“엄마가 열심히 쌌는데, 엄마 김밥 먹지…….”

서운함을 표시하며, 집에 돌아와 도시락 가방을 열었는데, 과일 칸에 과일이 그대로다. 유부초밥 칸에도 유부초밥이 그대로다.

“하나도 안 먹은 거야?”

“아니, 먹긴 했는데…….”

아이는 말끝을 흐렸고, 김밥 칸을 열어 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밥 칸은 다 풀어진 김밥 재료들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며 지들끼리 단합대회를 하고 있었다.


그랬나 보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 첫 칸을 열어본 아이는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김밥을 보고는 뚜껑을 열어 도시락을 먹기가 너무 창피해서, 그나마 괜찮았던 두 번째 칸, 세 번째 칸은 열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거였다.

차라리 왜 이렇게 엉망으로 싸줬냐고 징징거리지…….

엄마가 열심히 싸 준 첫 김밥인데 안 먹고 와서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맛은 있었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면 두 번째 칸을 열어볼 생각도 못했을까?

아이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엄마가 김밥도 제대로 못 싸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그 뒤로, 딸아이는 소풍 때마다 자기는 김밥 안 좋아한다고, 유부초밥 좋아한다며 유부초밥을 싸 달라고 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내 아이를 나보다 더 잘 아는 동생이 깔깔대며 말했다.

"너무 '언니 딸'스러운데! 그 아이는 말 그대로 친구들 김밥 먹느라, 친구들이랑 노는 게 바빠서 언니가 싼 김밥을 안 먹은 거야!"

"매정한 것! 난 6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을 떠올리며 펑펑 우는데, 넌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하겠냐!"

나와 동생의 반응을 본 딸은 그저 씨익 웃고 지나간다.

"뭐야! 이모 말이 맞는 거야? 그런 거야?"


아! 그 눈물의 김밥은 그저 일하느라 잘 챙겨주지 못했던, 부족함 많은 워킹맘이 낳은 죄책감 덩어리였을 뿐이란 말이더냐.




요즘은 접어 먹는 김밥이 유행이란다. 김밥보다 만들기가 쉬워 웬만한 똥 손들도 쉽게 할 수 있단다.

좋아! 남편아! 오늘은 내가 접는 김밥으로 도시락을 싸갈 터이니, 기대하고 기다려라!

네모란 햄을 굽고, 계란 지단을 만들고, 양파와 당근을 볶고, 매운 어묵 볶음에 콘샐러드까지……. 이제 접기만 하면 된다.


어라, 이게 머선 일이고? 사각형의 멋진 김밥을 도시락 통에 넣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김은 젖어서 너덜너덜해지고, 재료는 쏟아지고, 대충 추슬러서 접어 보려고 해도 접어지지가 않는다. 모양이 나오질 않는다.

“김으로 덮어버리고 랩을 칭칭 감아서 반으로 갈라. 먹는 사람이야 불편하겠지만 모양은 잡힐 거야.”

보다 못한 딸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먹는 사람이 불편하다며?”

“그건 그 사람 몫이고……. 엄만 할 만큼 했으니까 그만해. 맛은 있어”


김밥 사건 때보다 2배로 나이를 먹은 딸의 위로 아닌 위로, 조언 아닌 조언을 들으며 랩을 칭칭 감은 김밥을 반으로 갈라 도시락 통에 넣었다.

보기에 나쁘지 않다. 속이 가득 찬 사각 김밥이 예쁘게 보이기도 한다.

남편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며, 먹기 힘들 거라는 말은 전하지 않았다.

그건 딸아이의 말대로 먹는 사람의 몫이니까.



TO에 엄마가 아니라 엄마 이름을 기냥 써넣는 센스를 가진 내 아이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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