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혹시 빈 둥지 증후군?

5대의 냉장고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by 박대노

항상 높은 곳만을 보는 엄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 내가 그런 삶을 지향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30년도 더 된 옛날에, 엄마는 우리의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셨다.

돼지 뒷다리 살을 사다 돈가스를 직접 튀겼고, 식용유와 땅콩으로 마요네즈를 직접 만들었다.

아침이면 요플레 메이커에서 만든 요플레에 생과일과 꿀을 넣어 먹였다.

잘 먹고 살았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엄마가 나이프와 포크, 스푼 세트로 경양식집 흉내를 내주어도, 돈가스 위에 뿌려지는 케첩이 싫었다.

엄마가 만든 요플레의 유산균이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신맛이 싫었다.

엄마가 해주는 거라 하나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어리기만 한 딸 셋을 먹이느라 엄마는 하루도 쉬지 않았다.


지금도 엄마는 제철이 되면 소래포구에 가서 딸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살과 알이 꽉 찬 꽃게나 새우를 사다 냉동실에 쟁여놓는다.

1년에 3~4번씩 제주로 한달살이를 가는 엄마는, 아는 사람에게만 살 수 있다는 한토막에 손바닥만 한 튼실한 갈치며, 해녀가 잡은 뿔소라를 몇십 킬로그램씩 사다 살을 발라 냉동실에 꽉꽉 채워둔다.

손자 손녀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 그들이 올 때마다 찾는 아이스크림도 떨어지지 않게 잘 챙겨 놓아야 한다.

잘 산다는 게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시대가 되어, 잘 먹는 것이 상향평준화가 된 지금, 엄마는 이제 스스로 잘 산다고 생각하는 기준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의 풍족함이 현재의 결핍이 되어 냉장고 5대를 꽉꽉 채워놓아도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만 같다.

엄마는 집에 있는 것이 싫어, 매일같이 산으로 들로 걸으러 다닌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결핍을 채워 주는 사람으로 자라,

내 행복은 내가 책임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어른으로 사는 기쁨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평일도 인생이니까-김신지>



냉장고 5대를 가득 채우고도 가난한 기분이 드는 건 엄마가 서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을 보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가 풍요롭게 느꼈던 건 쟁여둔 음식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해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쑥쑥 크는 우리들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모두 출가하여, 매일같이 당신이 만든 음식을 먹어줄 딸들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엄마를 집 밖으로 내모는 게 빈집이 주는 허전함 때문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먹먹해진다.

엄마는 우리의 결핍을 채워주느라 정작 본인의 결핍은 챙기지 못했던 탓에 엄마의 행복을 책임지는 법을 익히지 못한 것만 같다.

엄마가 어른으로 사는 기쁨을 포기한 대가로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삶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도 나이 든 자식들 먹이겠다고 부엌을 떠나지 못하는 늙은 엄마의 뒷모습에 뭉클함이 밀려온다.


딸들의 어린 시절에 멈춰있는 엄마의 시계가 늦더라도 제 시간을 찾아가길 바란다.

엄마가 이제라도 어른으로 사는 기쁨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빈 둥지 증후군 [ empty nest syndrome ]

자녀가 독립하여 집을 떠난 뒤에 부모나 양육자가 경험하는 슬픔, 외로움과 상실감

(심리학 용어사전, 2014. 4.)


2022-03-07 (13).png 디지털 드로잉을 연습하고 있다. 서툴지만, 나의 어른으로 사는 기쁨이다. 이 그림을 본 남편은 내게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