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미니멀리스트

by 박대노

직장생활을 하며 강남으로 출퇴근하던 때의 나는 맥시멀 리스트였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쇼핑하러 백화점에 한번 들르면 전층을 뛰어다니며 물건을 쓸어 담았고, 온라인으로 쇼핑한 경우에는 내가 생각한 대로의 효용성이 없거나 약간의 문제가 생겨도 반품조차 하지 않고 쌓아두는 호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향형 인간이 사회생활하면서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을 둘 곳이 없어서 그렇게 물건을 사들이는데 집착한 건 아닐까 싶다.


그런 나는 몇 번의 번아웃을 겪으며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남편의 권유로 지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변해갔다.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 특별히 내게 필요한 물건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안에서 마당에서 동식물을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혼자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사소한 것들의 즐거움을 깨달으며 물건에 들여야 하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한 건 아니지만,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지금의 삶이 어쩌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사들인 물건들로 없는 게 별로 없는 집이라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이전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변화에 납득할 수 있을 말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물건을 관리하고, 안 쓰는 물건을 처분하는 것도 고되다. 노화는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의 진화인 듯하다. 예전에는 그렇게 사들인 물건들을 '내가 안 쓰더라도 지인들에게 나눠주면 되고, 새것에 가까운 물건이라 필요했던 지인들은 유용하게 잘 쓰니까'라는 변명을 해가며 잘도 사들였는데, 내가 안 쓰기로 결정하는 동안 방치되어 있는 시간, 누군가에게 주기로 마음먹는 시간, 받은 사람이 잘 쓰는지 염려하는 그 모든 시간들이 힘들어졌다. 아직 사십 대 중반에 불과하지만 나의 모든 소비가 지구환경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노화에 따른 물건에 대한 감정 변화가 반갑다. 내가 현재 소유한 물건에 대한 애착은 높이고, 지구 환경에 대한 죄책감은 덜고 싶다.


내가 구입한 물건을 기분 좋게 잘 쓰고 싶고, 좋아하는 물건을 오래도록 손때 묻히며 쓰고 싶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지만, 가급적 싼 물건을 살 때는 더욱 신중하려고 한다. 싼 물건은 그만큼 대체하기 쉽기 때문에, 약간의 문제에도 고쳐쓰기보다는 바꾸는 편이 쉽기 때문에, 쉽게 쓰고 버리려는 습성을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로 경제적인 이득은 덤으로 따라온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현재의 삶이 보다 안락한 미래를 위해 포기하는 삶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는 대책 없는 삶도 아니다. 그저 물질의 양은 줄이고 질은 높이는 삶을 살고자 할 뿐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다 보니, 그저 그렇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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