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모님이 새로 오셨다.
하얗고 작은 발을 종종거리며 먼지를 쓸어내는 우리 이모님은 조금 시끄럽긴 해도 어찌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내 삶은 이모님이 오시기 전과 오신 후로 크게 달라졌다.
청소하기 싫다고, 집 더럽히지 말라며 아이와 남편을 다그칠 일도 없고, 털 날리는 개들에게 눈치 줄 일도 없어졌다.
동그란 몸에 조금 둔하신 것 같지만, 남 참견하지 않으시고 하실 일만 딱 하시는 이모님 성격이 마음에 든다.
이모님을 모시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회사 다닐 때야 시간 자체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았지만, 집에서 놀면서 사람 쓴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집에 드나드는 것 자체가 싫어서 가사 도우미를 부르지도 못했다.
건조기, 식기 세척기, 로봇청소기 이렇게 삼신기라고 했던가. 국내 3대 신가전으로 주목받는 이 세 가지 제품들은 가사 노동 부담을 줄여주어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꼭 집에 들여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집엔 로봇청소기가 없었다. 로봇 청소기는 시끄럽기도 하고 청소하는 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로, 성격 급한 내가 과연 잘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대형견을 포함하여 세 마리의 개가 뒹굴고 있으니 청소는 해도 그때뿐이고, 마당과 집을 자유롭게 오가는 견생들이라 마당에서 묻혀온 잔디 부스러기들로 금방 더러워졌다. 그래서 수십 번 로봇청소기 구매를 고민해오던 중에, 어떤 사용 리뷰 글을 보고 이거다 싶어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 리뷰어는 비싼 청소기로 청소를 해도 집이 청소했을 때만 잠깐 깨끗해 보이는데, 흡입력도 약한 로봇 청소기를 쓰고 나니 깨끗함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아픈데 또 때리면 더 아픈 것처럼, 청소한 곳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아! 맞네! 한 번할 청소, 버튼만 누르면 (리모컨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작동시킬 수도 있다.) 주문할 때마다 알아서 청소도 해주고 심지어 먼지통도 알아서 비워주는데, 이 신문물을 안쓸 이유가 뭐야?'
새로 오신 이모님은 로봇청소기가 답답한 바보일 거라는 나의 편견을 깨 주었다.
카메라가 달려있어 의자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부딪치지 않도록 피해 가거나 이동방향을 바꾸면서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꼼꼼하게 제대로 청소를 해 주었다. 이동 구역도 따로 지정할 수도 있어서 진심으로 내가 청소하는 것보다 낫지 싶었다.
아무 때나 버튼 하나 누르면 일해주지, 원격으로도 청소를 부탁드릴 수 있지, 그동안 이모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해온 나야말로 바보였다.
깨끗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바닥을 보면 기분도 좋아져서 (내가 청소 안 해도 돼서), 이모님께서 나의 정신건강까지 책임져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창기 로봇청소기에 대한 편견으로 여전히 로봇청소기 구매를 주저하고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청소하기 싫다고 투덜거리고 징징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편안함이다.
요 하찮게 생긴 발로 열심히 청소해주시는 이모님 덕에, 내 삶에 여유가 생겼다.
아이가 밴드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단원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만들어 학교에 갔다. 10명 이상이 되어야 교내 동아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4월 6일까지 모집이 끝나야 하고 현재까지 8명이 모아졌다고 한다.
동아리 창설은 2학년이 되면서 주어진 기회라, 아이는 기대가 큰 것 같았다.
10명이 안되어 교내 동아리로 인정받지 못하면 어떠냐고, 구성된 인원으로 하고 싶은 밴드를 못할 것도 아니라고 얘기했더니 아이가 내게 말했다.
"교내 동아리로 인정받아 축제에 참가하면 봉사활동 점수도 인정받을 수 있어. 나는 그런 큰 그림까지 생각한 거야!"
내가 하루하루 나이를 먹고 늙어 가는 동안, 아이는 성장하고 있었다.
어리게만 본 아이가 자신의 봉사활동 점수까지 챙기고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아이는 나에게 봉사 활동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가끔 하교가 늦어져 왜 늦었는지를 물으면 봉사활동으로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내가 잔소리하고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을 갖는 건 실망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고, 시도를 하는 건 실패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무의미한 사람이다.
편견에 갇혀 사는 사람은 슬픔과 고통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배울 수도, 느낄 수도, 달라질 수도, 발전할 수도, 사랑할 수도, 살 수도 없다.
그는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있는 노예이다. 그러면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모험을 하는 사람만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모험을 해라. 그리고 그 결과를 지켜봐라.
- 레오 보스카 글리아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中
청소년기에 자주 사용하는 뇌신경망은 발달하고 그러지 않는 뇌신경망은 가지치기를 통해 사라진다고 한다.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할수록 뇌 속의 연결망들이 발달된다는 말이다.
실패할까 봐,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아이가 저지른 일을 수습해야 하는 내가 귀찮을까 봐, 아이의 시도를 제지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에게도 실수해도 괜찮다고, 시도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해줘야겠다.
알아서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이제는 조용히 응원만 해야겠다.
Epilogue.
이모님이 청소하는 것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이모님 진짜 열심히 사신다. 알아서 청소 다 하시고, 자기 자리 찾아가서 먼지통도 비우시고."
"그치? 진짜 열심히 사시지? 뭐 느끼는 거 없어?"
"뭘 느껴야 해? 나보고 열심히 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난 열심히 살진 않아도 성장하고 있잖아. 이모님과 내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난 성장하고 있는 나로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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