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의 소비패턴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용돈을 받으면, 딱히 쓸 데가 없어서 그대로 저금을 했다. 초등학교 때 매달 7천원의 용돈을 받았는데, 아빠 구두 닦아드리기, 뽀뽀하기, 심부름값 등으로 잔돈을 벌 수 있었고 그 잔돈을 모아 9천원이 되면 만원으로 바꿔주셨기 때문에 어떻게든 9천원을 만들어 만원으로 바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모으는 것 하나는 잘한다.
내 동생도 용돈을 받아 딱히 쓸 데가 없어서 그랬는지, 그 아이는 자기 돈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도 없어해서 가끔 동생이 입었던 청바지에서, 책상 서랍에서 심심치않게 돈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동생은 남편의 월급통장을 본인이 관리한다고 해놓고 통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남편 통장에 돈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부러운 녀석.
반면, 지인은 어릴 때 돈이 생기면 무조건 무언가를 샀다고 한다. 뭔가를 사면 그거 하나는 남는 거라는 마인드로 살아왔는데,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런 소비 패턴이 똑같이 이어진다고 했다.
사춘기 아이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외모에 한창 신경 쓸 나이니 화장품이나 옷 등 사고싶은 게 넘친다. 내가 어릴 때는 갖고 싶은 마음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른만큼 아니 어른보다 더 필요한 게 많아 보인다. 나도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야 물건 귀찮은 걸 깨달았는데, 아이에게 미니멀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집안일로 규칙적인 아르바이트를 시키며, 용돈 기입장을 강요하지만,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용돈은 받는 즉시 사라지고, 아르바이트는 돈 필요할 때만 반짝하고, 용돈 기입장은 어디 쳐박아뒀는지도 모른다. 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집안일 아르바이트를 시키지만, 아이는 그 중 최단시간 고액을 받을 수 있는 화장실 청소를 선호하게 되었고, 명절이나 각종 무슨무슨 데이에 어른들로부터 받는 용돈으로도 아르바이트 안하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영악함을 배웠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불만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용돈도 더 많이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으면서 엄마 카드를 사용한다는데, 왜 저만 쉽게 돈을 주지 않는지 화가 날만도 하다. 그래도 티내지 않고 제 상황을 받아들이는 걸 보면 기특하다.
백화점에서 스스로 옷 쇼핑을 하면서 비싼 청바지 한벌 값으로 싸고 좋은 옷 여러 벌을 소장할 수 있다는 가성비의 개념을 알게 되었으니,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를 해나가길 바랄 뿐이다.
가계부를 쓰기로 했다. 남편도 나도 전공이 약학이다 보니 정년에 대한 걱정이 없어 노후를 불안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내가 놀아보니 노는게 참 좋더라. 남편과 죽이 잘 맞으니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남편을 빨리 은퇴시키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런 마음에 남편을 10년 후에는 은퇴시키기로 마음먹었으니, 은퇴를 위해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보험금, 부모님 용돈 등, 가계 전반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았다. 우리의 취미생활을 위해 가족이 함께 다니는 미술학원, 검도관에 더하여 아이 과외비로 들어가는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고, 많이 드리는 건 아니지만 양가 부모님 용돈에 각종 경조사 비용, 보험료 등 숨만 쉬어도 들어가는 돈이 꽤 많았다. 은퇴를 해도 줄일 수 없는 비용들을 생각해보니 10년 후에 은퇴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먹는 거 외에는 남편과 나를 위해 쓰는 돈도 없는데, 한 달간 소비를 파악해 보고 많이 놀랐다. 그렇다고 줄일 수도 없는 돈들이니 어쩌랴, 조금씩이라도 더 아껴봐야지. 내가 어릴때부터 돈 모으는 거 하나는 잘 했으니, 어디 해보자! 남편, 파이어족 만들어줄께!
남편에게 내 통장의 여유돈을 주며 말했다.
"내가 10년안에 은퇴시켜준다했지? 칠백만원 줄테니까 천만원으로 채워서 통장에 넣어놔."
남편은 사채도 이렇게까지 이자를 떼지않는다며 한숨을 쉬었지만, 이제 내가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니 돈 벌 일도 없고, 어릴때 아빠한테 그랬던것처럼 이렇게라도 모으는 재주를 발휘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냐. 남편아, 살짝(?)만 도와주라!
내가 구매한 가계부의 사용 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