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

나의 죄의식이 쓴 글, 할머니에 대한 기록1

by 동자

부유하게 자랐으나 가난한 집에 시집와 죽도록 시집살이를 당했다. 시어머니가 죽으니 며느리한테 시집살이를 당했다. 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들 내외는 맞벌이를 했다. 덕분에 손주들 뒷바라지와 집안일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평생 집안일을 했다.

처음부터 아들의 집에 얹혀산 것은 아니다. 부부는 열심히 돈을 벌어 서울에 작은 집을 샀으나 아들은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작은 집을 판 돈을 아들에게 쥐여주고, 아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성실히 일해 번 돈으로 산 집을 내어주고, 몇 년간 뒷바라지를 하며 긴 고달픔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 끝을 맞이할 새도 없이 며느리가 죽어버렸다. 홀아비가 된 아들과 새파랗게 어린 자식 둘을 남겨두고.
그 새파랗게 어린것들을 길러내고 뒷바라지하는 것은 또다시 그의 몫이었다.
오래지 않아 그의 남편이 떠나갔다.
부부의 집을 가져간 아들은 사업에 실패해 큰 빚을 졌다.
종국에 그 아들은 모든 걸 팔아치웠다. 가족들이 살아야 할 집마저도.
월세집을 전전하며 10여 년 간 10번의 이사를 했다.
가족들이 살 집마저 팔아치운 아들이 월세를 제때 낼 리 만무했다.
집주인이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온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 놓으면 그는 새파랗게 젊은 집주인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에게는 아들 하나 말고도 딸들이 여럿 있었으나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났고, 모두 진절머리를 냈다.
끝까지 그를 붙잡고 있던 딸은 병에 걸려 수년간 고생하다 죽었다. 그렇게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그 모든 것은 없는 집에 시집온 죄, 자식에게 분별없이 퍼 준 죄로 그가 견뎌야 할 삶의 무게였다.

그 무게를 견디게 하는 것은 새파랗게 어린것들이었다. 그들을 갓난아기 때부터 업어 키웠다. 그의 손녀와 손자가 그의 세계였고, 우주였다. 그들의 말은 법이고, 규칙이었다.

그 무게를 견디며 평생 집안일을 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머리가 하얗게 샜다.

그즈음, 그의 머리가 하얗게 샐 때쯤 그가 길러낸 손녀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 손녀는 그동안 밀린 월세,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매일 울었다. 행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돈이 없어 매일 돈만 생각했다.
그러다 그 손녀는 그가 죽기를 바랐다.
그가 없으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도 되고, 그러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생활비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돈이 모이면 집을 살 수 있고, 그러면 조금 행복해질 것 같았으니까.

그의 딸들이 그를 보고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할 때 그 손녀는
저 여자들은 자기 엄마한테 무슨 말을 저따위로 하나 생각했지만, 어느 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 손녀는 자기가 인간인가 싶어 한참을 울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이 무섭게 느껴졌다.
노쇠하여 거동이 불편한 그를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으나 그런 생각을 온전히 지우지 못했다.

새파랗게 어린것들을 업고 다니던 그는, 이제 늙고 병들어 어린것들의 부축 없이는 멀리 나가기 어려웠다.
이제 새파랗게 어린것들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고, 그를 일종의 의무 같은 것으로 여겼다.
새파랗게 어린것들에게 그는 짐이었다.
평생 그들을 위해 살았으나 그들은 그것을 잊었다.

오갈 데 없는 그의 유일한 낙은 홀로 방 안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그는 감옥 같은 방 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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