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고립과 고독, 그로 인해 훼손되는 인간 존엄과 개인의 안락
올해로 87세가 되는 노인 김복남은 화학적 자살을 택했다.
죽은 것은 아니나 죽은 것과 다름없다. 치매로 인해 기억이 대부분 날아갔다. 다리 근육이 다 빠져 걷지 못한다. 화장실 조차 혼자 가지 못한다.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에는 잠을 잔다. 정신이 들면 일어나 먹는다. 그리고 다시 잔다.
복남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복남은 씩씩하고, 동네 곳곳을 다니며 커튼도 맞춰오고, 노인정에 가서 화투도 치고, 웃고, 떠들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엊그제 떨어진 계란을 사고, 머리를 볶았다.
어느 날 손녀는 복남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회사 다니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몇년 간 살던 동네를 떠나 손녀만 따라 생경한 동네에 터를 잡았다. 그곳은 노인이 살기에 부적절했다. 그나마 있는 노인정에 갔으나 기존에 노인정에 다니고 있던 노인들이 이유모를 텃세를 부리는 통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살던 동네가 아니라 길도 낯설었다. 혹시라도 나갔다가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복남은 산책 조차 할 수 없었다. 동네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복남은 귀가 좋지 않았다. 보청기 없이는 말을 잘 못알아들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만 생활한지 1년 반이 넘어갔다. 복남을 그곳에 데리고 온 손녀는 밖으로만 나돌았다. 운동하러 간다, 뭘 배우러 간다, 친구 만나러 간다며 복남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복남은 그렇게 홀로 시간을 보냈다.
홀로 시간을 보내도, 보내도, 복남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또 길었다. 귀도 들리지 않는 복남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남의 무력감은 깊어갔다. 복남은 점점 더 살고싶지 않았다. 가만히 숨 쉬는 것이 싫었다. "나이들면 죽어야지" 를 입버릇 처럼 달고 살았으나 단 한번도 진심인적 없었던 복남이었다.
이제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복남은 죽고싶었다. 복남은 손녀에게 말했다. "제발 나 좀 죽여다오. 계단에다 굴려다오. 내가 나갈테니 문만 열어다오." 복남의 말에도 손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계단에서 구르는 대신 화학적 자살을 택했다. 대한민국 노인이라면 매일 꽉 찬 약봉지 하나 쯤은 먹어야 산다. 당뇨, 혈압, 심장, 신경계… 그는 어느날 먹고있던 모든 약을 끊었다. 죽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죽기 위해서.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 복남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노인의 화학적 자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