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의 라면과 새로운 깨달음
살다보면 '난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 했던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해보고 나서야 비로서 알게 된다.
'사람들이 이래서 그랬구나!'를 깨달음과 함께 모두가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성장 포인트가 아닐까?
"엄마, 어제 밤에 자려는데 배가 고파서 도저히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머리 속에 컵라면이 둥둥 떠다니는데
내가 먹었을까요? 안 먹었을까요?"
"먹으려고 하다 결국 안 먹었을 것 같은데....."
"틀렸어요. 저 일어나서 컵라면 먹고 밥까지 말아먹었어요. 그리고 골아떨어져 잤어요."
임신 8주가 되니 이제 변화가 시작되나 보다. 딸은 어려서부터 먹는 것을 좋아해서 토실토실했다. 동생도 만만치 않게 통통했으니 이런 모습을 정상으로 여겼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 짖굳은 남학생들이 "뚱보"라고 놀렸다. 나는 애들 장난 정도로 가볍게 여겼지만, 어린 딸에게는 충격이었다. 그 이후 딸은 배가 부르면 먹지 않고 군것질은 엄격히 자제해 지금까지 살이 찐 적이 없다. 딸의 다이어트 엄격함은 종종 우리에게 잔소리로 이어져, 남편이 라면을 자주 먹으면 한 달에 1번 이상은 절대 먹지 마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딸이 자다가 일어나 라면을 먹고 바로 자다니. 별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딸에게는 정말 별일이었다. 이제 딸도 여러 면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 모두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딸의 뱃속에 있는 아기로 인해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옷입는 것, 스케줄의 우선순위, 대화주제, 일하는 방식, 소비 품목등 딸의 작은 변화들이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하다.
나도 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제일 큰 깨달음은 나의 엄마가 얼마나 나를 힘들게 낳으셨을지를 알고, 엄마의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해하게 된 것. 딸에게 초유를 먹이려했다가 젖몸살로 고생할 때 엄마는 젖몸살이 아이 낳는 것보다 더 힘들 수 있다며 위로해 주셨다. 엄마도 다 해 봐서 아셨다. 엄마의 인내심과 너그러움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기를 낳아보니 알 수 있었다.
일일히 나열을 할 수 없지만, 나의 모든 것이 아이의 태어남과 동시에 바뀌었다. 입에서는 엄마는 '쉴 자유'도 '아플 자유'도 없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원래 아이 둘을 낳을 계획이었지만, 딸을 낳고는 남편에게 절대로 둘째 아이 낳자는 말 꺼내지도 말라고 못을 박았었다. 1년이 지나니 이 예쁜 딸이 혼자 자라는 것이 안스러워서 둘째를 낳아주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힘든 것은 이상하리만큼 쉽게 잊게 되어, 다행이도 남동생을 낳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역할이 엄마가 되어 일상의 우선순위는 확 바뀌었다. 인생의 계획은 육아와 연결되어 마구 바뀌는 가운데 난 많은 부분에서 수더분해지고 너그러워졌다. 꼬질꼬질한 옷을 입은 아이의 엄마를 봐도, 집안이 엉망이 되어 발디딜 틈이 없어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괜찮게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난 아이를 안 낳는데도 이유가 있고, 하나만 혹은 둘, 셋을 낳는 데도 다 그들만의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까지 '민'으로만 살았던 딸이 '엄마'가 되면 어떻게 달라질까? 아이 넷을 계획했었지만, 지금은 아이 숫자에 대해 말 안하고 있으니 한명만 낳을 수도 있고, 어찌 어찌하다 4명까지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다 일어나 라면이 아니라 족발에 떡볶이을 먹는 일이 일상이 될 수도 있고, 뚱뚱한 아줌마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엄격한 식단 관리로 아주 세련된 모습의 엄마로 유모차를 끌고 출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딸이 엄마가 되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변화를 겪으며, 딸의 이해의 폭이 얼마나 넓어질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어떤 엄마의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 이 궁금함이 내게는 살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