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PARK Nov 29. 2022

주체적인 삶을 위한 모험, 시작!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구름 한점 없는 파란 제주의 하늘. 해변가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인도 짜이를 마시고 있었다. 산속의 도인같은 모습을 한 게스트하우스 촌장은 담배를 오른손에 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 날씨가 좋다'라고 말하는 듯 가볍게 말했지만, 그 말은 나를 한참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동안 How보다는 What을 쫒아다니지 않았는가?


2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한량이라지만 이렇게 자주 백수가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번에는 2년 동안 회사를 다녔고, 이직 인터뷰를 해서 오퍼까지 받아놓았다. 하지만 난 백수를 선택했다. 


믿는 구석이 있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모아놓은 돈이 떨어지면 다시 경제 활동을 해야 할 운명이다. 그렇지만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선택하고 싶었다. 신기루 같은 커리어를 위해서, 트렌디한 산업에서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일이라서 같은 이유가 아닌, '나의 삶의 일부로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름 나의 욕망대로 살겠다고 살아온 것 같은데, 결국 사회가 원하는 상에 나를 맞추어 왔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 발 사이즈는 250인데, 사회가 준 신발은 230이었다. 


나를 그 틀에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나를 학대하고, 혐오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식의 삶에 과감하게 도전할 용기는 없었다. 왜냐하면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해야, 경제적 안정 및 물질적인 보상, 그리고 무의식에 깔려있는 성공에 대한 열망을 충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 (소박하고 게으른 삶)은 우선 이 성공을 이루어야 가능하고, 그 때 그런 삶을 살아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우선은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것이 더 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조함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나의 행복을 미루어야 하는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왜 현재를 희생해야 하는가?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데! 이러다가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갑작스럽게 삶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공을 위해서 앞으로 돌진하는 스타일도 아니였다. (일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승진이니 뭐니 관심없고, 단 1초도 더 회사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먹고 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무서우니 안전 지대에 머물렀었다.





퇴사 통보는 쉽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도 않았다. 머리 속으로 내 시간의 가치를 계산했을 때,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에. 일을 그만두는 것은 쉬웠다. 그만둔 일로서 생겨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의미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 


9-6라는 루틴으로 채워졌던 시간이 완전히 나의 소유가 되었을 때, 사실 해방감보다는 혼란감이 더 컸다. 이 시간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지? 어디서, 누구하고, 무엇을 해야하지? 고민하게 되는데, 그만큼 우리가 남이 어디서, 누구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한 시스템에 길들여졌다는 표시가 아닐까. 


어쩄든 힘들게 얻은 나의 시간이므로, 최대한 잘 이용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 및 실험들을 해나가고자 한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철학책들을 읽고 글을 쓰는 것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삶이 아닌 것들은 전부 깨붓고, 기다란 낫은 넓게 휘둘러 삶이란 것을 바짝 깎아내고, 삶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구석으로 몰아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만큼 작은 핵심만 남도록 - <월든>


매거진의 이전글 끊임없는 변화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