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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May 03. 2023

우울하지만 고기는 먹고 싶어

zest for life

우울증인지 조울증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고 있다. 주말에는 넘치는 에너지로 일, 워크샵, 친구 약속, 런던 시내 관광 등 빡빡한 스케쥴을 모두 소화했는데, 오히려 아무 계획없는 월요일에는 무기력에 휩싸여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모든 것들이 귀찮았고, 어자피 나는 아무것도 못해낼 것 같았다. 커리어, 사는 곳, 비자, 인생 목표 및 방향성 등 고민하는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았다. 차라리 계속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사느니, 스스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오늘도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펑펑 울었다. 하지만 사실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이 감정들이 아니라, 미루어지는 일이었다. 할 일이 쌓여있는데,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이 일들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 속상했다. 원격 근무 일은 11시에는 시작했어야 하는데, 저녁 7시까지 시작도 못했고, 3주전에 친구에게 부탁받았던 일도 아직 못했고, 지원서도 더 넣어야 하고, 6월 여행 일정도 짜야 하고, 장봐서 냉장고에 음식도 채워넣어야 하는데... 이 빌어먹을 우울증과 무기력증 때문에, 이 좋은 날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는 것이 짜증났다.


그러던 중 매캐한 탄 냄새가 올라와 내 코를 자극했다. 핸드폰 진동이 윙 울렸고, 하우스메이트로부터 '우리 정원에서 바베큐하고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너도 와!'라는 메세지가 왔다. 바베큐? 우울하지만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지. 역시 식욕은 위대하다. 어느 항우울제가 울음을 뚝 그치고, 옷을 주섬주섬 입어 고기를 먹으러 거실로 내려가게 할 수 있으리라?


잡초로 무성하던 정원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고, 일을 도와주러 온 친구와 하우스메이트들은 불을 피워놓고 바베큐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잘 구어진 소세지와 치킨, 그리고 맥주를 손에 쥐어주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아 배가 고팠던 나는 순식간에 저녁을 해치웠다. 그리고 하우스메이트 옆에 앉아, 멍하니 불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아직도 초봄 날씨인 런던의 저녁은 쌀쌀했다. 하지만 유쾌한 사람들, 모닥불, 그리고 달콤쌉싸름한 맥주는 따뜻했다. 내 인생이 엉망진창인것 같더라도, 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래, 인생 별거있나.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 보내고 그러면 되는거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가지니,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을 다 가보고 싶고, 발레도 배우고 싶고, 텃밭도 가꾸고 싶다. 내 이름을 걸고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고, 멋있는 옷을 입고 화려한 파티에도 가고 싶다. 나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나뿐인 인생의 과즙을 최대한 짜내어 맛을 음미해보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은게 많은데 죽겠다고? 

힘들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죽어야지. 


그 대신 날 너무 몰아넣지 말고, 생각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도 멈추고,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지. 


친구의 도움으로 심리 상담 서비스에 가입했지만, 막상 상담은 안하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당장 상담을 잡고, 친구에게도 솔직하게 이번주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히려 말하지 않고 혼자서 아파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가 더 슬퍼할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난 내 미래를 모르겠고, 커리어도 모르겠고, 돈도 많이 없고, 해야 할 일은 쌓여있다. 하지만 한번에 하나씩 해나가려고 한다. 어자피 제일 중요한 것은 따뜻한 사람들과의 편안한 시간이다. 고통스럽고, 내 마음이 허해지고 차가워지면 오늘의 바베큐를 떠올려봐야지. 

한 달 전의 또 다른 바베큐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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