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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Aug 04. 2023

별의별 생각

070616토 그늘막과 붙박이 창고 완성 후

                                                                                                                                       

구상과 준비

한 달여에 걸쳐서 붙박이 창고와 그늘막을 다 지었다. 사실 ‘컨테이너 트러스 하우스’라고 이름 붙은 농막도 우리 밭 바로 앞의 좁은 길가 밤나무 때문에 참 어렵게 안치했었다. 이것만으로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부산에서 여기까지 먼 거리를 다니다 보니 삽과 괭이 등 농기구를 보관할 최소공간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고 또 전면의 악양 평야, 섬진강 건너 백운산까지 조망되는 전망이 너무 좋아 그것을 앉아서 바라볼 원두막 또는 그늘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점점 더 쌓여갔다.

이런 생각을 우리 아이들 막내 이모부에게 말했더니 그렇다면 자기가 주말에 내려와서 그늘막 등을 세워 주겠다고 흔쾌히 대답한다. 이리 고마울 수가. 그를 이제부터 H로 호칭하기로 한다. 앞으로 길뫼재 일지에서 자주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재활용할 수 있는 사각 파이프 등 자재와 절단기나 용접기 등 기구가 우리 아이들 외삼촌 댁에 있기에 그걸 활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곧 일에 착수, H가 주말에 S 마을에 내려와 사각 파이프를 절단하는 등 자재를 미리 준비했다. 우리 아이들 외삼촌 댁이 있는 사천시 서포면의 S 마을은 여기서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공사

절단해 둔 사각 파이프 등 자재는 챙겨놓은 그때로부터 6개월여 후인 07년 4월 29일(일)에 이곳 동매리 차밭으로 운반해 왔다. 그리고 또 운반해 둔 그날로부터 한 달여 후인 5월 25일(금)부터 일을 시작했다. 간이 창고 벽과 지붕으로 사용할 초록색 골판과 철망 및 검정 그물망은 하동읍의 건재상에서 구매했다.

먼저 사각 파이프로 간이 창고와 그늘막의 프레임을 완성한 후 창고 문을 달고 투명 골판을 부착했다. 골판으로 벽과 지붕을 거의 완성할 무렵엔 해가 저기 서산 형제봉에 걸린다. 창고 벽에 마지막 골판을 부착했을 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는 들판을 내려다보니 평촌 마을 앞 들판에 큰 불길이 보인다. 보리 수확을 마친 후 논에 깔려 있는 보릿대를 태우는 거였데 번져 나가는 불이 논 전체를 삼키고 있었다. 다시 20여 일 후, 창고바닥을 시멘트로 포장하고 원두막에는 마루를 깔았다. 원두막 마루 자재는 진교면의 어느 제재소에서 구입했는데 자질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여기서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일을 마치고 씻을 때 몸을 가려 줄 캠핑용 간이 샤워부스인데 부산에서 구매하여 가지고 온 ‘욕실 파티션’을 간이 창고 안에 세워보니 그런대로 쓸만한 샤워 칸막이가 된다.  

   

완성

이제 공사 마무리, 그로부터 다시 1주일 후인 6월 27(수)에 원두막 마루에 칠을 함으로써 착수한 지 한 달여 만에 붙박이 창고와 그늘막을 모두 완성했다. 부산에서 먼 거리인 여기까지 주말에 내려와서 수행하는 일인지라 일의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고,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한 달여 만에 마무리했다는 건 아주 빠른 마무리였다.

주말은 물론이고 직장에서 휴가까지 내어 손수 지어 준 H, 그는 일종의 해비타트 활동을 한 셈인데 그가 가지고 있는 공작 취미나 설계하여 세우는 취미활동은 나로서는 꿈도 못 꿀 경이의 영역이다.

일을 모두 마무리한 날, 편이 부산에서 내려와 감자와 양파를 다 캐었다. 감자와 양파를 싣고 부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면 소재지 동네의 차 씨네 집에 물어볼 게 있어 차를 세웠더니 살구를 몇 알 준다. 살구, 핸들 잡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먹다 보니 그 옛날 우리 집 밭 언덕의 고목 살구나무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생각이 자꾸 번진다. 번지다 보니 별생각이 다 난다.     


마무리 후 돌아가는 길, 별의별 생각

먼저 황등이 생각난다. 다른 열매들은 홍조를 띠고 붉게 익어 가는데 살구는 황등색을 띠고 누렇게 익는다. 홍등은 안타깝고 애잔한데 황등은 푸근하다. 살구는 색상과 모양 또 만져지는 촉감으로도 푸근한 과일이다.

맛이 생각난다. 살구는 썩 맛이 있는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없는 것도 또한 아니다. 사까리(사카린)가 지배하던 그 시절의 우리네 단맛을 당원이 빼앗더니 당원은 나중에 맛의 지배권을 설탕한테 빼앗기고 말았다. 설탕도 설탕 나름, 흑설탕 황설탕은 백설탕 앞에서 맥 한번 제대로 못 추고 무너졌다. 과일 맛도 설탕 맛에 견주어졌다. 살구는 설탕처럼 단맛을 내지 않는다. 단맛 일변도에서 새삼 무덤덤한 살구 맛이 맛의 의미를 부각한다. 처음부터 단맛과 가깝지 않던 나의 입에는 맛없는 살구 맛이 새삼 맛있다.


서민들의 입도 생각났다. 옛 민화를 보면, 오막살이 뒤 안에는 흔히 살구나무 한 그루가 연분홍 꽃을 매달고 서 있다. 매화가 멋을 풍기는 양반층의 나무라면 살구는 질박하게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한 나무다. 배고픈 초여름에 먹을 것도 주고 아플 때 약도 주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살구나무의 한자로 행(杏)은 나무 아래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양이다. 글자 모양으로만 봐도 먹고사는 일과 관련되는 나무임을 눈치채겠다.


목탁도 생각났다.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운 살구나무는 여전히 으뜸 목탁 자재라고 한다. 산사의 은은하고 둔탁한 목탁 소리는 세상사 찌든 번뇌를 가시게 해 준다. 그 소리를 살구 소리로 듣는다면 지나친 오버일까. 속을 비운 나무 살구는 작은 방망이와 짝을 맺고는 사찰에 들어가서 매를 맞으며 살아간다. 텅 비운 제 몸을 매로 공명 시킨다. 속이 텅 빈 은행나무 목탁은 불러 터져도 또 채우는 중생들의 배를 부끄럽게 한다. 그런데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선뜩 놓지 않는 나의 배는? 그렇게 채워지는 나의 배는 살구나무 목탁의 빈 배를 보고 배움을 얻어야 한다.


물고기 눈도 생각난다. 어느 고승의 몇 제자 중에 돼지 뒷 발톱처럼 엇발 난 녀석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계율에 어긋난 속된 생활을 일삼다가 몹쓸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물고기 몸을 받아 태어났는데 등 위에 나무가 자라는 것이었다. 업! 수륙천도재로 고기 몸을 벗게 된 그는 다음 생에는 참으로 발심하여 공부할 것을 다짐한 후 자기 등의 나무를 베어 고기 모양을 만들어 부처님 앞에서 두고두고 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절집의 목어(木漁), 그 목어는 또 목탁으로 되고. 그런데 물고기는 밤이나 낮이나 눈을 감지 않는다. 늘 깨어 용맹정진할 교훈을 여기서 얻는다고 한다. 나는 선잠이 많다. 물고기 보기 부끄럽다. 작은 내 눈은 더 잘 감긴다.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어떤 시인의 좋은 시, '살구나무'도 생각났고. “씨앗 좀 퍼뜨려 달라고 꽃으로 열매로 그토록 아양을 떨었건만 꽃은 꽃대로 보고 열매는 열매대로 먹더니 씨앗마저 깨뜨려 하얀 속살 꺼내어 삶고 볶고 기름도 짜낸다. 영악한 놈들 해도 너무 한다. 이번 생은 공쳤다.”     


가는 봄의 끝자락도 잡지 못해 살구나무를 못 구했었다. 사서 심을 생각이었는데 묘목을 찾지 못해 심지 못했다. 오는 봄에는 묘목을 꼭 구할 참이다. 가시나무도 생각난다.     


생각의 흐름은 천박지축이다. 한 달여 이어진 그늘막, 붙박이 창고 마무리 후 돌아가는 길에 획득한 몇 알 살구를 손에 들고 별생각을 다 했다. 부산으로 돌아가면 오늘 저녁, 나이가 든 분들 앞에 서서 풀어낼 내 강연 주제는 ‘살구나무, 가시나무’다. ‘살구나무 묵상, 가시나무 명상’이다. 아무래도 결론은 살구나무로 난다. 마음 밭의 가시나무는 뽑아내고 살구나무를 그 자리에 심자는, 다소 교훈적인 마무리를 하게 된다. 살구나무는 희망의 메타포, 가시나무는 탐진치(貪瞋癡)의 메타포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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