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괭이질과 쑥국

by 로댄힐

①구제역(口蹄疫)의 여파가 내게도 미쳤다. 인근의 한우 사육 농장에 퇴비 한 트럭을 주문할 때 농장 주인은 밝은 목소리로 한 3일 후에 배달하겠으니 토요일에 전화를 한 번 더 달라고 했다. 그래서 토요일에 확인 차 전화했더니 태도가 확 변해 있었다. 불과 사흘 전에 주문 건으로 서로 통화했는데 그 사실을 잊은 듯했고, 아니면 응급실에라도 있는 듯,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20일 이후에나 가능하며 지금 바쁘니 조금 후에 전화드리겠다.”는 말을 한 후 끊는 것 아닌가. 난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조금 후에 전화가 왔다. 퇴비를 배달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서 하는 말이 구제역 때문이라고 했다. 이동 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는데 퇴비를 싣고 농장을 나가다가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된다면서 거듭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음성이 아까보다는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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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그런 이유라면 내가 더 적극적으로 협조할 일, 벌금도 벌금이지만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구제역 확산을 막는 일이 더 중요한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럼요. 그런 이유라면 농장에서 퇴비 실은 차를 빼내면 안 되죠.” 하고 맞장구쳤다. 그러고는 꿩 대신 닭이라고 매실나무들에 복합 비료를 빙 둘러 뿌리고는 흙으로 덮었다. 사실 농협 조합에 포대 거름 두 종류를 좀 많이 주문하기는 했는데 그건 가을에 나온다. 그래서 소똥 거름을 사려고 했던 건데 차질이 생겼으니 밑거름을 비료로 대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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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대신, 퇴비를 부리려고 했던 그 터에 곡괭이를 들이밀었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 들깨 심을 궁리를 하고 있었지만, 땅속에 돌이 많아도 너무 많고, 그 돌들의 크기 또한 보통이 아닌지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퇴비 쌓아둘 일이 없어졌으니 “기회는 이때다.”라고 결행에 옮긴 것이다. 삽이나 괭이로 되지 않아 든 곡괭이가 오늘로 3일째다. 그래도 진척은 겨우 몇 뼘이다. 앞으로 며칠 더 하면 끝을 보게 될 거다. 곡괭이질 또 무거운 돌을 캐내어 옮기는 일 등인지라 편이 걱정을 많이 한다. 나 또한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놀이’한다고 생각하면서 밭일을 한다. 그러니까 ‘놀기 삼아 하는 일’이라는 명분을 좌표처럼 세워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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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안톤 슈낙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는 책도 썼다. 이 책은 ‘1월에는’에서부터 ‘12월에는’에 이르기까지 12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2월에는’이라는 장에는 ‘잃어버린 날들을 찾아라’, ‘북쪽으로 나는 새에게 편지를 띄워라’, ‘보이지 않는 천사를 관찰해 보라’, ‘아주 작은 재산만을 모으도록 하라’, ‘사랑의 고백을 한 번 해보라’, ‘움트는 꽃봉오리에 숨결을 불어넣어라’, ‘아야, 아야 봄의 삽질을 조심해라’ 등, 7개의 소제목이 있다. / 그 가운데 봄의 삽질, 삽질할 때 땅속에서 ‘아야, 아야 아프게 하지 마.’ 하는 소리가 울려 나오면 하던 삽질을 멈추면 행복해진다는 건데, 곡괭이질을 멈추지 못하고 3일이나 해댔다. 앞으로도 한 일주일 더 해야 할 것 같고. 곡괭이는 돌멩이도 깨고 풀뿌리도 찢으며 지렁이 동굴도 파헤친다. 이를 어쩐다? 안톤 슈낙 식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이 2월에 곡괭이질 하지 않거나 아니면 한 번 판 후 무슨 소리, 신음이 들리는지 귀를 쫑긋해야 한다. 곡괭이질 안 할 수도 없고 매번 귀를 쫑긋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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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어제 또 오늘, 편이 쑥을 캐어 국을 끓여 주었다. 밥 먹으면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고 했다. 오늘은 캔 후 돌아앉으면 쑥이 올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건 하루가 다르게 가속이 붙을 것이다. 원래 쑥이라는 말이 캔 후 돌아보면 새 쑥이 쑥쑥 올라와 있어 ‘쑥’이라고 한다고 하지 않는가. 매화도 그렇다. 하루가 다르게 나무들이 꽃을 매단다. 길뫼재 앞의 매화밭은 이제 꽃밭이다. 상 피었다. 이 부근에서 맨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다. 사실, 정원의 매화는 동양적, 한국적 미의 극치이지만, 매실 밭의 매화는 어수선하다. 그건 2월의 일기(日氣) 때문에도 그렇고 밭에 얽혀 있는 마른풀들 때문에도 그렇다. 그래도 매화 아닌가. 좋게 보려고, 무조건 좋게 보려는 생각으로 매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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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지렁이 동굴이 파헤쳐져도 곡괭이질, 삽질을 멈출 수 없어 안톤 슈낙 식 2월의 행복과는 틈이 있었는데, 편이 불편한 팔로 캐어 끓여준 쑥국에서 2월의 행복은 또 다른 길로 내게 왔다. 내일 완도의 고금도에 간다. 봄이 오는 바다, 섬의 봄바람을 맞으러 간다. 동백이 피려나. 피려는 동백, 핀 동백보다 더 동백답지 않으려나. 아무튼, 내일 나는 2월의 남도 섬에 다니러 간다. 편도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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