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22
숙진암 바위 밭에서 복숭아 솎아내기를 하고 있는데, 끝물 매실을 지고 내려오시던 염소 영감님이 자기 밭에 들러 보리수 열매를 따가라고 하셨다. 처음엔 흘려들었지만, 이내 다시, 더 간곡하게 말씀하신다. 일손이 부족해 도저히 딸 수 없고, 해마다 오던 부산 손님도 올해는 오지 않았다고 하고. 그 말투와 표정이 하도 정성스러워, 하던 일을 멈추고 보리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올라가니 숲 그늘 아래 두 그루의 보리수가 붉게 익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다. 편과 함께 따기 시작했는데, 역시 손놀림은 편이 한참 빨랐다. 울창한 그늘 아래에서 열매를 따니, 땡볕에 서 있던 것과는 달리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졌다.
열매의 크기는 앵두만 했지만 따기는 훨씬 수월했다. 앵두는 볕에 익어 쉽게 으스러져 조심해야 했지만, 보리수는 손에 쏙쏙 들어왔다. 어느새 한 바가지를 가득 채웠다. 제법 많이 딴 셈이다.
이 보리수는 석가모니의 보리수도, 슈베르트의 가곡 속 보리수도 아니다. 보리수는 보리수, 왕보리수, 뜰보리수… 등, 여러 종류가 있다는데, 10월이 아닌 지금 익어 있는 걸 보니 이건 뜰보리수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우리는 이 열매를 ‘뽈똥’이라 불렀다. 진주 지역의 말이라는데, ‘보리 똥’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 말이 더 궁금했다. 찾아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열매 표면이 마치 포리(파리) 똥처럼 보여 ‘포리 똥’이라 불렸고, 그것이 변해 ‘보리 똥’이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이름 하나에도 사람들의 눈과 입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침밥 뒤 커피를 마시는데, 편이 오늘은 과일 대신 뽈똥 한 접시를 커피잔 곁에 놓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 막상 놓여 있으니 의외로 조화롭다. 소박하고도 정다웠다.
커피를 비우고 생강을 심어둔 곳으로 갔다. 보리를 모두 베어낸 6월 중순이 지나도록 생강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속으로 은근히 약이 올라 있었다. 생강이 게을러도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실은 약이 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적당한 표현을 찾다가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다.
편이 구포 시장에서 종자 생강을 사 올 때, 할머니가 “생강은 심으면 보리 벨 때쯤 순이 나지”라고 하셨다 한다. 편은 “그러니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덧붙이며, 내가 나중에 순이 늦게 오른다고 투덜댈 것 같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늦게 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래도 5월에는 나겠지” 하는 내 주관적 기대가 객관적 사실을 누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생강밭엔 잡초만 무성했다. “나는 안 나오고, 나오지 말라는 놈들만 잘도 자라네.” 투덜대며 거칠게 잡초를 뽑다가, 모양이 조금 다른 풀이 있어 파보니 생강순이었다. 그 순간부터는 작전이 바뀌었다. 조심조심, 살피며 풀을 뽑았다. 세 개의 순은 확인했고, 나머지 세 개는 끝내 찾지 못했다.
생강 재배법을 찾아보니 의외로 까다로운 작물이었다. 밑거름, 토양 조건, 습도와 배수, 싹 틔우기, 웃거름, 순이 날 때까지 덮는 방법까지…. 나는 그중 어느 것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게다가 생강 순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강잎이 땅대나무 잎과 비슷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조건 하나 제대로 마련해 준 것 이 없는 데도 이렇게 싹이 난 것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생강이 부지런했기 때문이었다. 생강 탓을 하며 투덜대던 내가 참 한심했다.
생강의 ‘게으름’보다 더 무거운 것은 결국 내 ‘무지’였다. 그리고 그 무지 덕분에 다시 얻은 깨달음이 있다.
“사람은 눈을 감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 조금 안다고 많이 아는 체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