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생윤회(此生輪廻) -이상-

2024_JINZAKA_그림일기장

by JINZ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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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24일 목요일 / 날씨: 맑음


제 목: …….




길을 걷자면 ‘저런 인간을랑 좀 죽어 없어졌으면’ 하는 골이 벌컥 날 만큼이나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아도 좋을 산댓자 되려 가지가지 해독이나 끼치는 밖에 재조가 없는 인생들을 더러 본다. 영화 <죄와 벌>에서 얻어들은 ‘초인법률초월론(超人法律超越論)’ 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진보된 인류 우생학적 위치에서 보자면 가령 유전성이 확실히 있는 불치의 난병자 광인 주정 중독자 유전의 위험이 없더라도 접촉 혹은 공기 전염이 꼭 되는 *악저(惡疽)의 소유자, 또 도무지 어떻게도 손을 댈 수 없는 절대 걸인 등 다 자진해서 죽어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모종의 권력으로 일조일석에 깨끗이 소탕을 하든지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극흉극악의 범죄인도 물론 그 종자를 절멸시켜야 옳을 것인데 이것만은 현행의 법률이 잘 행사해준다. 그러나 ―법률에 대한 어려운 이론을 알 바 없거니와― 물론 충분한 증거와 함께 범죄사실이 노련한 경우에 한하여서이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지상 최대의 흉악한 용모의 소유자가 여기 있다면 그 흉리에는 어떤 극악의 범죄 계획을 내함(內含)하고 있다 하더라도 다만 그의 용모 골상이 흉악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법률이 그에게 판재(判裁)나 처리를 할 수는 없으리라. 법률은 그런 경우에 미행을 붙여서 차라리 이자의 범죄 현장을 탐탐히 기다릴 것이다. 의아한 자는 벌치 않는다니 그럴 법하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걸인도 없고 병자도 없고 범죄인도 없고 하여간 오늘 우리 눈에 거슬리는 온갖 것이 다 깨끗이 없어져버린 타작마당 같은 말쑥한 세상은 만일 그런 것이 지상에 실현할 수 있다면 지상은 그야말로 심심하기 짝이 없는 권태 그것과 같은 세상일 것이다. 그러니까 자선가의 허영심도 채울 길이 없을 것이고 의사도 변호사도 아니 재판소도 온갖 것이 다 소용이 없어질 것이고 따라서 그날이 그날 같고 이럴 것이니 이래서야 참 정말 속수무책으로 바야흐로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춘풍 태탕한 세월 속에서 어쩌다가 우연히 부스럼이라도 좀 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면 참괴 이것을 이기지 못하여 천하 만민 앞에서 아주 깨끗하게 일신을 자결할 것이고 또 그런 세상의 도덕이 그러기를 무언중에 요구해 놓아둘 것이다.

그게 겁이 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천하의 어떤 우생학자도 초인법률초월론자도 행정자에게 대하여 정말 이 ‘살아 있지 않아도 좋을 인간들’의 일제(一齊) 학살을 제안하거나 요구하지는 않나 보다. 혹 요구된 일이 전대에 더러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찍이 한 번도 이런 대영단적(大英斷賊) 우생학을 실천한 행정자는 없는가 싶다. 없을 뿐만 아니라 나환자 사구금(赦救金)이니 빈민 구제기관이니 시료 병실이니 해서 어쨌든 이네들의 생명에 대하여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편 그윽이 보호하는 기색이 무르녹는다. 가령 종로에서 전차를 기다리자면 “나리 한 푼 줍쇼” 하고 달겨든다. 더러 준다. 중에는 “내 십 전 줄게 다시는 거지 노릇 하지 마라” 한 부인이 있다니 포복할 일이다. 또 점두(店頭)에 그 호화 풍모로 나타나서 “한 푼 줍쇼” 소리를 될 수 있는 대로 듣기 싫게 연발하는 인간에게도 불성문으로 한 푼 주어 보내기로 되어있다. 그래서 암암리에 사람들은 이 지상의 암을 잘 기를 뿐만 아니라 온연히 엄호한다. 역 눈에 띄지 않는 모순이다.

즉 그런 그다지 많지 않은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한 층을 길러서 이쪽이 제 생활의 어떤 원동력을 게서 얻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먹여 살려서는 그런 것이 역연히 지상에 있다는 것을 사실로 지적해서는 제 인생 생활의 가치와 *레종데르트을 교만하게 긍정하자는 기획일 것이다. 그러면서 부절히 이 악저로 하여 고통과 위협을 느끼는 중에 ‘네놈이 어디 나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나 해보아’ 하는 형용할 수 없는 무슨 투쟁심을 흉중에 축적시켜서는 ‘저게 겨우내 안 죽고 또 살앗’ 하는 의외에도 생활의 원동력을 흡취하자는 것일 게다.

하루 종로를 오르내리는 동안에 세 번 적선을 베푼 일이 있다. 파기록적 사실임에 틀림없다. 한 푼 받아 들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꽁무늬를 빼는 꼴을 보면서 ‘네놈 덕에 내가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알기나 아니?’ 하고 심히 궁한 허영심에서 고소하였다. 자신 역 지상에 살 자격이 그리 없다는 것을 가끔 느끼는 까닭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를 먹여 살리는 바로 상부 구조가 또 이렇게 만족해하겠지’ 하고 소름이 연 쫙 끼쳤다. 그때의 나는 틀림없이 어떤 점잖은 분들의 허영심과 생활 원동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꾸물꾸물하는 ‘거지적 존재’ 구나, 눈의 불이 번쩍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악저(惡疽): 악성종기

*레종데르트: 존재 이유



-글: 이상, 차생윤회(此生輪廻)│(한국 문학을 전하다 23: 오감도, 권태 이상 시, 산문전집,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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