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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Jul 03. 2023

'잘' 떼버리기

실패에 휘둘리지 않을 힘 - 자기 발견과 인정

   똥 싸고, 밥만 먹어도 칭찬을 듣던 나는, 나이를 먹으며 칭찬받는 횟수가 줄었다.

"아이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지……."

  안타까운 잔소리는 하지 않을 이유로 가득한 내게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내가 못 하는 건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야.'

  마치 열심히만 하면, '잘'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학창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희망하던 미대진학이 아닌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러 산업군을 거치며 직무만큼은 디자인을 지망했다. 조금이라도 그림과 비슷할까 어리댔다.  현장을 겪으며 알게 된 원리도 있었지만, 제대로가 아닌 아쉬움은 늘 있었다. 그래도 칭찬과 함께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고, 잘하고 싶은 열정에 취해 스스로를 다잡기도 했다. 그즈음 불안감도 함께 자라났다.  어떤 직업이든 시류에 무감할 수 없을 거다. 더욱이 감각적이어야 하는 이 분야는 계속된 배움과 개발이 필요했다. 연차가 쌓이며 잔꾀도 자란  나는 드디어 저 아래 똬리 틀고 있던 불안의 근원을 대면했다.  그 계기는 어떤 한마디 때문이었다.

"자기 포트폴리오,  촌스러운 거 알고 있죠?"

"……네. 좀 그렇죠?"

  알량한 자존심이 상대에게 타격감은 주지 말라했지만, 이미 그 한마디로써 판정은 끝났다.  도태…….

  눈물이 올라오는 걸 겨우 참고 돌아선 나는 며칠 동안 잠 못 들며 홀로 속앓이를 했다.

'나를 잘 알아? 당신이 왜 그런 말을 해?'

'내 일의 농도를 왜 함부로 판단해?'

  하지만 이미 결정 나 버린 실패감과 미래에 대한 암울은 어떤 자위로도 회복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무기력하게 고여 있었지만, 속으로는 터진 하수구 마냥 솟는 울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둘렸다.  타인의 편협과 몰이해로 탓하며 오랫동안 억울해 왔던 것 같다. 가라앉힌 앙금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부유했고,  감정 따위에 묶여 전진하지 못하는 내 모습도 꼴 보기 싫었다.  점점 만족감이 줄고, 외부의 평가에 많이 휘둘렸다. 즐거웠던 작업은 힘이 들어가고, 일과 사람에 대해 감사함은 불만이 되어 차단했다. 몰랐지만 그것은 고립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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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나는 부족하고, 능력 없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보면 좋고, 나쁜 감정의 근원을 살뜰히 살피지 않고, 고양이 똥 덮듯 내색하지 않는 걸로 잘 난 척을 했던 것 같다.  매정한 것 같지만, 나 자신을 잘 몰랐다는 것.  결과적으로 나는 부족하고, 능력 없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나 자신을 괴롭히고, 무리하며, 스스로를 (또 남을) 얼마나 원망했던 걸까?'

  끝없는 억울함이 향한 곳이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을 인식하니, 쟁여두었던 억울함과 분노가 너무나도 하찮아졌다.  '잘'이라는 모호한 기준과 칭찬. 고 따위 얄팍한 토양에 자존감은 뿌리내릴 수 없었나 보다.  이제 더는 도태됐다고, 찌부러져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남)에게 분노와 탓을 하지 않고, 오늘을 살고 싶다.  안개 같던 '잘'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이것이 또 다른 족쇄가 될까 염려스럽지만, 그건 다음의 과제로 두고) 지금의 과제를 해야겠다.  이제 나는, 그냥 한다!



[나를 위한 후기]
•다양한 취향의 시대.  좋은 것, 멋진 것은 많지만, 보편적인 좋음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뭐 좀 그러면 어때?'라는 마인드도 필요하다.
•남을 칭찬 할 때도 내 기준으로 칭찬하는 것은 지양하자.
•무조건적 수용보다 '왜?'라는 질문도 용감히 해 볼 수 있으면 한다.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는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 발생한다. 자신을 기만하지 말고, 솔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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