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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독서법이야.

정독과 통독을 넘나드는 파도타기.



책 한 권을 사면 어떻게 읽어?


내가 읽은 책에는 나의 메모와, 인덱스와 생각들이 그득한데

책마다 다가가는 방법은 조금씩 달라.


난 여행 에세이는 가볍게 읽으면서 그 분위기를 느끼는 편이고

육아서는 내 상황과 비교해보면서 전체적으로 통독하는 편이야.

내가 사랑하는 박웅현, 이지성, 김병완, 안철수, 박경철, 정호승, 법륜스님 등의 책은

자잘 자잘하게 행간을 씹어가면서 정독하는 편이고.

과학이나 예술 관련 책은 좀 더 깊숙이 알고 싶은 부분은 체크해두고

관련 분야를 나중에 더 찾아서 읽는 편이야.



읽을 책 한 권을 손에 들었을 때 빳빳한 겉표지를 넘기면 그 책의 목차가 나오잖아.

그 목차를 보고, 저자의 '들어가며'를 읽으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 책을 시작하는 거지.

경건하게 읽다 보면 소름도 돋고 눈물도 나고 참회도 하고 새로운 다짐 도도 하면서

오만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잖아.



"육아랑 비슷하지 않아?"



'엄마'라는 자리를 부여받고( 책)  내 자식을 찬찬히 보다 보니 (목차) 

감동과, 눈물과, 반성과, 다짐과... 내가 그 자리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더라고.

 '엄마'라는 직책을 부여받고 나는 두 가지 능력이 일취월장했는데 그 두가지가 바로

'인내심', 그리고 '융통성' 이야.


많이도 인내하며 견디던 시간의 합이,  맘을 비우고 무식하고 유연하게 돌격하던 육아의 합이 지금의 나이더라.

절대적인 이성을 가진이든, 치밀한 계획자이든 이 육아라는 곳에 발을 들이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되어 있어.

처음 경험해보는 육탄전에 정신 멀쩡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냥 날아오는 총알 고대로 맞으면서 깡다구를 키우는 거지.

그래서 육아가 파도 타는 것에 비유되곤 하나 봐.


읽었던 육아서 곳곳마다 이 육아는 '파도타기'라는 글자가 있더라.

상황에 맞게 파도를 타라는 거지. 죽지 않으려면.

높은 파도에서는 몸을 더 숙여 낮은 중심으로 균형을 맞추고

낮은 파도에서는 좀 더 여유롭게 상황을 즐기면서 그렇게 유연하게 나를 맞춰야 한다는 거야.


맞아 알아도 뭐 생각처럼 그게 쉽게 되나 그게 그치?

그래서 계속 잊게 되는 그 부분을 상기시키려고 책을 들고 써붙이고 그러면서 어이없고 헛웃음 나오는 그 상황들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나를 단련시키는 거인지 모르겠어.



내 아이를 전체적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통독'의 마인드와.

내 아이가 가진 행간의 의미를 생각하고 고민하며 대하는 

'정독'의 자세가 적절하게 뒤범벅된 파도타기가 바로 '육아'가 아닐까 싶어.


하루 반나절은 시크한  눈빛 날리는 아윤이와

주구장창 머리 매만지며 패션 철학을 부르짖는 서윤이 사이에서 파도타기 하느라 나도 죽을 똥 쌌어.




지금도 그놈의 파도타기 ing중이지만 이제 조금 알것같아.

멀리서 봐야할때와, 가까이에서 관찰할때가 언제인지 조~금 감이 잡혀.


부산 해운대 바다 앞에서 두 아이 사진을 많이도 남겼었어.

멀찍이서 보니 내 아이들이 보이고

가까이서 보니 각자 뭔가 하는 두 아이가 보이고 조금 더 들여다보니

뭔가 응시하는 한 명과, 촉각을 느끼는 한 명이 보이더라.





아무리 내가 세운 원칙대로 애를 키우려 해도 혀 내 두루 게  돼있어.

내가 원하는 계획대로 애들이 절대 해주지 않거든.

그래서 가끔은 멀찍이서, 가끔은 가까이서, 그리고 때론 확대해가면서

책 읽는 마음으로 내 아이를 대해야 되는 것 같아.

이왕 폈으면 제대로 읽어야지.

(=이왕 낳아놨으면 제대로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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