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최대치의 운동에너지

내 좁은 배 안에서 이루어진 신비한 일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내 배에서 꼬물거리던 그때를.

아이들은 자주 움직이고 자주 딸꾹질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배에 손을 올리고 함께 딸꾹질하는 기분을 느꼈다. 병원에서  초음파를 통해 아이를 봤을 때 점 하나가 어떻게 인간이 된다는 건지 알 수 없었고,
그 점이 몇 달 사이에 형태 있는 무언가로 바뀌는 게 신기했다. 모호하고 신기하고 애매하고 신비했다.
크기에 비해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기억이 난다.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이 아이들은 용감할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다.

눈코입이 생겨나고 장기들이 하나하나 생겨났다.
몇 달 동안 아이들의 몸 하나가 완성해야 하니 얼마나 큰 에너지가 필요했을까.

평생 써야 할 운동에너지 중 가장 많은 열량을 소모하는 때가 이때였을까. 어쩌면 그 에너지를 발판 삼아 지금 잠도 없고 반항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잘 노는.. 그런 아이들로 커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크면서 남편과 아이들 어릴 때 이야기를 자주 한다. '지금'은 내가 볼 수 있는 모습이니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 기억에만 의존해야 사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 같다. 이제 하다 하다 초음파 사진 점 하나와 우렁차던 심장소리가 떠오른다. 대 환장 파티다.

누군가 아이를 키우는 건 아이를 건강하고 온전하게 독립시키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맞아' 하면서도
떠나 보낸다는 말 한마디를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한 몸이던 우리였으니 결국 완전한 독립에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이들을 혼낸 날은 더 미안한 마음으로 작은 내 안에서 꼬물거리던 점 하나를 생각한다. 분명 명분이 있는 잔소리와 혼냄이었는데도 결국은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즉.. 오늘 아이를 혼냈다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용한 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