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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아이들의 용기와 에너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설이]는 내 마음을 후벼 팠던 책이다.

읽다가 수시로 멈추게 하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찔려 반성하게 하고, 내 아이를 떠올리게 했던 그런 책.

이렇게 오래도록 곱씹고 싶은 책은 무조건 글쓰기 수업 도서로 넣어 함께 읽고 글을 쓴다.

작가는 말한다. 책 속 주인공 설이의 그 되바라짐은 아이의 용기이자 결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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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모순적인 태도를 용납하지 않고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는 것.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것.

고집을 꺾지 않는 것.

일방적인 요구 조건에 응하지 않고 조목조목 따지려 드는 것.

이런 설이의 모습이 사실 나에게도 낯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른 아이의 모습은 어른에게 예의 있고, 서로 배려하며 따뜻한 언행을 하는 그런 모습 아닌가.

그런데 책 속 설이는 따뜻하면서도 직설적이고 또박또박 말을 하지만 결코 예의 없게 느껴지지 않는 소녀다.

심지어 어른들의 잘못과 치부를 잘도 들여다보는 아이다.

우리 집 중3 아이의 폭풍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났다 싶으니 중1 아이의 폭풍이 도래했다.

워낙 주장도 강하고 싫고 좋음이 분명한 아이였으니 그 폭풍은 오죽할까.

여기에 생리주기까지 겹치면 폭풍이 거세다.

몇만 번 마음을 다잡고 타이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놔버리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어두운 폭풍 안으로 아이도 나도 빨려 들어가 버리고 야 만다.

소리가 커지고 마음에 없는 말로 상처를 주고 힘으로 제압하고 눈빛으로 협박한다.

신기하게 아이와 갈등이 생기면 마무리는 늘 부부 싸움이다.

나의 날카로움은 남편이 보기 싫고 아이를 나무라는 남편의 모습은 내가 싫다. 즉 나는 중간에서 이쪽으로도 혼내고 저쪽으로도 싸우며 우스운 꼴이 되고야 만다.

결국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만 잔뜩 하고 늦은 시간 꺽꺽 울다 마음이 진정된 아이는 어김없이 내 품에 안긴다.

늘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그만 말하라고 했다. 버릇없는 것이라고, 어른한테 이런 행동은 잘못이라고.

그런데 설이를 보면서 문득 나의 모순적인 태도와 나의 잘못을 이 용기 있는 아이는 하나하나 조목조목 알려주는 것인가 싶었다.

엄마 행동을 잘 살펴보라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엉망인 엄마 모습은 정말 싫다고. 정말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다고

아이는 자꾸 나에게 대들고 따지며 달려드는 것 아닐까.

마음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늘 화가 나고 서운하고 때론 눈물이 나게 속상하다.

사나운 아이들의 용기와 에너지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작가의 말에 나 혼자 수업을 하다 울컥해 눈물이 고이고

수업 후 멍하게 앉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내 아이를 생각했다.

나는 자기 할 말은 하는 아이가 되라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버릇없어 보이면 그건 잘못됐다고 혼을 냈다.

혹시 아이가 이런 내 모습 때문에 혼란스러울까.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고달프다. 그래서 내 아이들은 더 주장해. 할 말은 해. 하며 키웠던 것 같다. 묵묵히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미소 짓는 것은 말 그대로 마음에 답답한 떡 하나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을 테니까.

칭찬받기 위해서, 엄마 아빠에게 혼이 나니까, 어른에게 말대답을 하면 안 되니까. 아이는 마음속 답답함을 숨기고 착한 아이가 되어 가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이니까.

아이는 어리고 약하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때론 양보하고 희생하는 부분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작가의 말대로 가족의 소중함보다 더 먼저, 그 아이 자신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한 거였다.

아이를 혼내며 밤마다 가족 분위기를 망친다고 화를 냈다.

잘못된 행동 하나로 왜 가족의 편안한 저녁을 망쳐버리냐고.

주장하는 아이와 주장을 묵살하는 나.

속상한 마음에 하루 종일 마음이 내려앉던 오늘 설이가 도도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 아줌마. 아줌마 애들 엄청 똑똑하네요! 용기 있게 할 말 다 하는 애들이잖아요."

혼낼 일이 있으면 혼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시 곱씹어 보니 어쩌면 내가 가장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리고 약한 아이를 대한 나의 말투나 태도가 문제일 수도 있고, 아직 더 보듬어 줘야 할 여린 마음을 못 본척했을지도 모른다. 그 치졸한 엄마의 모습을 이 용기 있는 아이가 귀신같이 찾아내고 느껴 수시로 나에게 달려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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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이, 아윤이 자신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그 사실을 나도 잊지 않아야겠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하고, 내 맘대로 생각하는 그 미성숙한 엄마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다시 설이를 읽었다. 나에게는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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