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쓰기
"만일 내가 다른 아버지를 두었더라면..." 하고 매일 아침 중얼거리는 주인공에 대해 엽편 쓰기.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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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푸르스름하네요. 항상 그렇듯이 창틀이 가장 먼저 윤곽을 드러냅니다. 그 다음은 창에서 가까운 천장, 그리고 제가 받은 상장들이 걸려있는 벽이 선명해질 차례입니다. 제가 디뎌본 적이 오래된 널찍한 바닥, 음습하고 각진 모서리에도 푸른 빛이 마저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윽고 하얘져요.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야속하게도 언제나 어긋남이 없습니다. 모든 사물이 색깔마저 뚜렷해졌을 때 즈음 여러 명의 구두굽 소리가 들리겠죠. 제겐 결코 가볍지 않은 네 개의 바퀴 소리와 함께요.
오늘은 제 오른쪽 안구 적출이 있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왼쪽 것과 합치면 벌써 199번째에요. 수간호사 선생님은 200번째가 되면 작은 축하 파티를 열 거라고 했지만 글쎄요, 200번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왜 하필 안구일까요. 아마 심장이야 아버지 말씀처럼 조직 형성이 워낙 복잡해서 이제 겨우 17번 적출했을 뿐이고, 다른 장기들도 100회를 채우기엔 시간이 까마득해서 그렇겠죠. 아마 다른 수술 100회 째에는 다들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거니까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왠지 빈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들 안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200번째 축하 파티. 참 웃겨요. 선생님들은 늘 일의 자리가 0으로 채워진 숫자를 좋아해요. 그것이 일종의 마침표라고 생각하죠. 왜 사람들은 마침표를 기념할까요. 왜 순간을 매듭짓는 것을 좋아할까요. 왜 순환하는 시간을 분절하고 정의할까요. 아마 저와는 다르게 방향이 있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 것일지도요.
제 창가에서 보이는 작은 집, 아버지도 아시죠. 예전에 그 집에 민석이라는 개구진 아이가 살았잖아요. 20여년 전, 제게 두 다리가 있었을 때요. 침대에 누워있는데 어느날 “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 말고 누군가가 그 단어를 또 쓰다니, 놀란 마음에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저 멀리서 꼬마가 어떤 남자를 그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어요. 남자는 그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었구요. 반대로 그 남성은 꼬마를 민석이, 혹은 아들이라고 불렀어요. 네, 기분이 이상할 수 밖에 없죠. 그 둘의 관계는 저와 아버지의 관계와는 다른 점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민석이가 다른 꼬맹이로부터 아버지로 불린다는 거에요. 아버지라는 호칭이 자신을 쏙 닮은 타인에게 계승되고 허락된다는 것이 재밌지 않으신가요?
아버지는 늘 제가 자랑스럽다고 하셨죠. 저로 인해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될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면서요. 저는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강연장을 다녔죠. 아버지는 두 다리가 잘려 침상에 묶여있는 제 모습조차 예쁘게 여기셨어요. 그 덕에 누운 채로도 무대 위에 오를 수 있었구요. 한 4달 쯤 전이었던가요, 아버지는 제게 오늘 밤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상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상을 받는다며, 저를 데리고 비행기에 오르셨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눈이 모두 없는 상태였어요. 다른 선생님들이 저를 침대 째로 실어주셨구요. 아직도 그날 밤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에 와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와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눈이 없는데도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 세례가 느껴졌다니까요.
이토록 감사한 일들을 뒤로 하고 이제는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차례인 것 같아요. 아마 이 편지를 읽고 계실 때 즈음이면 저는 방에서 사라져 있겠지요. 저는 저와 오래 전부터 연락해 온 분들의 도움을 받아 아주 먼 곳에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는 모르는 분들이에요. 이 분들이 곧 저의 뇌를 꺼내서,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폐기할 예정입니다. 붙잡혀 간 게 아니에요. 저의 부탁으로 하는 일입니다. 뇌만은 저의 유일하고 온전한 장기로 남아야 한다며, 지금까지 지켜주신 것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아버지라면 저를 손쉽게 찾아 다시 살려낼 지도 몰라요. 하지만 만약 이걸 읽고 계시다면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버지, 삶은 방향이 있어야만 하는 시간 같아요. 다만 여태껏 시간은 제게만 계속해서 돌고 돌았죠. 제 방 안에 스미는, 항상 끔찍하리만치 되풀이되는 푸른 새벽빛 처럼요. 민석이의 아버지가 민석이를 보는 눈빛에는 어쩐지 모를 아쉬움, 네가 나와 영원히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 그런 것들이 들어 있었어요. 민석이도 마찬가지였구요. 오히려 요새 들어서는 민석이가 반대로 자기 아버지에게 더 자주 짓는 표정이지만요.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아버지가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그것이 없었어요.
저에게는 안구 적출이 어떤 숫자로 끝나던지 상관 없어요. 199번째라도 좋아요, 끝나기만 한다면요. 저의 시간에도 방향과 끝이 있었더라면,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아쉬움의 눈빛을 받아볼 수 있었을까요. 매일의 푸른 빛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만일 제가 다른 아버지를 두었더라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