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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une Jul 26. 2022

그녀는 너무 예뻤다

외모, 평생 가꿔도 끝없는 그것.

그녀는 너무 예뻤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이 차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셋( 엄마, 나, 동생) 중에 가장 예쁜 건 우리 엄마다. 난 옛날부터 엄마가 예쁜 엄마라는 점도 좋아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 엄마랑 비교해도 우리 엄마는 얼굴도 이쁘고, 피부도 좋고, 또래 아줌마들보다 옷을 훨씬 세련되고 예쁘게 잘 입었다. 엄마는 오랜 시간 금은방을 운영하셨는데, 금은방 주인이었기 때문에 직업상으로도 항상 옷도 예쁘게 입고 화장도 머리도 이쁘게 하고 액세서리도 세련된 것을 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부자인 줄로 착각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옷과 화장품에 돈을 쓰는 여자인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엄마는 주로 보세 가게나 인터넷으로 저렴한 옷을 사 입었지만 자기한테 잘 어울리게 입는 법을 알았고, 옷을 세심하게 관리해서 깨끗하게 오래 입는다. 엄마는 내가 취업하고 첫 보너스로 선물할 때까지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없었고 그 뒤로도 스스로 산 적은 없다. 옷은 항상 깨끗하게 다려 입어야 한다는 신조가 있었고, 내가 처음으로 독립해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도 행여 딸내미가 서울에서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닐 세라 다리미를 사서 올려 보내 주셨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의 스트레스


읽을 때마다 내가 우는 책,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보면 그녀가 독립을 하고 엄마를 만나러 갈 때마다 화장을 고쳐하고, 옷에 보풀을 손으로 다 떼 가며 단장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내 대학 시절이 그대로 떠오르며 ‘이런 사람이 또 있었다니! ‘ 하고 너무 공감했다.


대학 시절 나는 4인실 기숙사에 살았다. 방학이나 명절 때마다 다들 집에 내려가는데, 나는 집에 내려가기 일주일 전부터 어떤 옷을 입고 내려 갈지 고민하고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었다. 내려갈 때마다 내 외모에 대해 잔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이번에야 말로 욕먹지 않을 테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는 서울에서 옷을 촌스럽게 그렇게 입고 다니냐", “또 살찐 것 같다?” 등등 엄마는 외로운 서울생활 중 내려와 오랜만에 만나는 감격스러운 순간도 포옹 한 번 해보기 전에 매번 외모를 지적하며 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엄마의 끝없는 외모 지적 때문에 동생은 엄마와 인연을 끊을 뻔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서 집에 내려갔다. 예쁜 옷을 꺼내 입고 화장하며 꽃단장을 하는 나를 보며 룸메이트들은 항상 남자 만나냐고 물었다. 그렇다. 소개팅, 미팅 보다도 까다로운 모녀팅을 할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그래도 이번엔 좀 이쁘게 보이겠지 라는 마음으로 단장을 했다. 감지 않은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추리닝 입고 KTX를 타러 나가는 다른 지방 친구들을 보며 난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근데 나 이제 그 마음 알 것 같아


여전히 스트레스받지만, 엄마가 잔소리하는 이유를 이해는 한다. 경쟁 심한 한국 사회, 특히 외모도 경쟁력인 현대 사회에서 내 딸이 남에게도 이뻐 보이고 대접받았으면 하는 그 마음. 알고 보면 참 괜찮은 앤데, 외모 때문에 타지에서 남한테 무시받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한 절반 정도는 남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나름 최선을 다해 단장을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렇게 외모에 신경을 쓰는 엄마 얼굴이 점점 나이가 들어감을 느낄 때마다 “우리 엄마 언제 이렇게 나이 들었지"하고 문득 본인보다 내가 더 아쉽고 슬퍼질 때가 있다. 지금 내 나이에 엄마는 딸 둘을 키우면서 보험일을 하러 다녔고, 이후에는 금은방을 운영하며 주 6일을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지는 생활을 해오셨다.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백수생활을 즐기고 계신데 밖에 나갈 일이 없으면 딱히 화장을 하거나 꾸미시지 않는다. 거의 한평생 아침마다 화장하고 머리에 저렇게 뿌려도 되나 싶을 만큼 스프레이를 뿌리는 엄마를 봤었던 나로서는 거의 하루 종일 집에서 화장도 안 하고 편한 옷만 입고 있는 엄마가 때로는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성 동지로서 매일 머리하고 화장하는 것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집에 있으면서도 꾸미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엄마 스스로가 뭔가 자신감을 조금 잃어가는 것 같아서 때때로 마음이 쓰인다. 귀찮아도 일단 화장하고 좀 꾸미고 나면 왠지 전투력과 자신감이 상승하는 그 느낌. 엄마가 그 전투력과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 같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리면 더 이쁘지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매일 화장 안 해도 돼서 지금이 너무 편하단다. 세수조차 선택사항이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나도 코로나가 시작되고 재택근무를 하며 근 일 년 동안 마스카라 뚜껑을 열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니 그 심정 모르는 바가 아니다. 심지어 나갈 때 마스크도 끼니까 이건 뭐 대충 눈곱만 떼면 출근이 가능할 듯하다.


하지만 말은 너무 편하다고 하면서 여전히 거울 볼 때는 “나 언제 이렇게 늙었니" 하며 한숨을 쉬고, “여기를 좀 일찍 고쳤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좀 떙겨 볼까?” 하시는 엄마를 볼 때마다 진짜 괜찮으신 거 맞나 싶다. 주름을 걱정하지 않고 웃을 일을 더 많이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 엄마는 웃을 때 제일 이쁘니까. 이제 동지끼리 외모 지적은 하지 말고, 대신에 서로 이쁘다고 해주자. 우리끼리 아니면 누가 그런 얘기해줘,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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