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잘라드립니다. - 탈 벤 샤하르 | 돌아갈 곳이 주는 안정감
바다에 떠다니는 배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그 등대요.
바깥세상이 아무리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워도,
이곳은 언제나 여기에서 빛을 비추며 내가 돌아올 길을 알려주죠.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등대가 필요해요.
- 걱정을 잘라드립니다 [탈 벤 샤하르] -
나라는 사람은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모험과 도전보다는 안정이라는 키워드가 더 어울리는 삶을 추구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는 것, 이른 나이에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모두 '안정 추구'에서 생겨난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30년 정도를 살아왔고,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비춰졌다.
3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살아오니 지루함을 느꼈던 걸까, 29살의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이라는 거친 세상으로 발을 들였던 것이다.
당시 나의 결정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네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능력이나 환경을 의심하는 '네가?'보다는 나답지 않은 결정을 한 데서 나온 놀라움의 '네가?'였다. 4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보아도 예상되지 않은 놀라운 행보였으니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놀라움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창업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어느 가을날. 우리는 회사를 포기했다.
이 글은 창업 관련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야기가 아니다. 창업을 그만두고 나서야 알게 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것이다.
주로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관련 책만 읽는 나에게 여자친구가 신선한 책을 선물해 주었다. '걱정을 잘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한 이발소의 단골손님이 오랜 기간 이발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그의 지혜를 관찰해 풀어낸 이야기로 세상과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짧고 가벼운 책이었다.
이야기의 중간쯤 "등대가 든든하게 느껴지는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읽고, 창업을 그만두던 시기의 경험이 떠올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적었다.
우리는 1년도 해보지 못하고 창업을 그만두었다. 아이템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전망이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함께 의기투합하던 사람들과의 관계 이슈로 잘 항해하고 있던 배를 멈춰 세웠다. 당시 폐업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기에 멈추는 것에 동의했지만, 멈추면 안 되는 내 커리어와 인생의 관점에서는 막막함이 앞을 막아섰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에 실패한 나는 앞으로 해야할 일, 가야할 곳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사장인 사업을 하거나, 초대기업에서 일을 해야 한다.'
공동창업자가 되어 함께 창업을 하는 것도,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마치고 막상 행동에 나서려니 30살의 나는 단독 창업도, 초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 그 당시에는 그랬다. 30살은 참으로 어중간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말이다.
앞길이 막막해지니 함께 창업했던 친구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궁금해졌다. 한 명은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로 손쉽게 기존의 로펌에서 다시 일할 수 있었다. 다른 한 명은 박사과정 중 휴학을 하고 일을 하고 있었기에 돌아갈 학교가 있었고, 마지막 한 명 역시 박사과정 중에 파트타임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뭐야 나만 돌아갈 곳 없이 새로 시작해야 되는 거야?'
그때는 그랬다. 나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 잔머리를 굴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공하기 힘든 창업이라는 길에 들어섰으면 그것 하나에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에'라는 잘못될 가능성은 내 시나리오에 없었다. '돌아갈 곳'이라는 옵션은 비겁하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창업을 그만둔 순간 나만 돌아갈 곳이 없었다.
'걱정을 잘라드립니다' 속 등장인물인 아비는 주인공에게 현명한 지혜를 주는 이발사인 동시에 염색약 수입 사업을 시작한 사업가이다. 그의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그 덕분에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과 이발소를 두고 주인공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하지만 사업이 잘된다고 해도, 이발소를 그만두진 않을 거예요.
여긴 제 등대거든요.
등대는 항해하는 선박이 육지나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할 때 사용하거나 항만의 소재, 항의 입구 등을 알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연안의 육지에 설치된 등화를 갖춘 탑 모양의 구조물을 뜻한다. 즉, 잘 알지 못하는 곳을 탐색할 때 기준이 되어주는 곳이며, 모르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일종의 의지할 수 있는 곳이다.
저는 여기서 편안함을 느껴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겁고, 분위기도 평온하고,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죠.
밖에서 아무리 모험적인 시도를 하더라도,
여기에 등대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걱정이 훨씬 줄어들어요.
제게는 안전하게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요.
이야기에서 아비가 말하는 등대의 가치는 그 존재만으로도 안정감의 기반이자 창의력의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도전에도 안정감을 주며 동시에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 시절 나의 등대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돌이켜 봐도 나의 도전과 성공을 응원하는 가족 이외에 내가 기댈 곳이나 돌아갈 곳은 없었다. 반면 나와 함께했던 친구들은 더 많은 등대를 뒤에 두고 있었기에 창업을 그만둠과 동시에 더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다.*
* 커리어적인 등대가 없었던 나는 약 6개월 간 백수생활을 지내야만 했다.
재테크 관련 강의와 책을 보면 절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전업투자자를 꿈꾸며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하루 전체를 투자에 활용하면 더 성공할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며, 현실은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월급이 없어지면 더 힘들 것이라 말한다. 그들도 투자 혹은 사업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데 있어 기존의 직장/월급이라는 등대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만의 등대가 있다면 안정과 도전이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된다. 4년 전 나는 두 단어가 반드시 대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게 말하자면 패기 넘치게 하나만을 선택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현명하지 못했다.
등대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경제적인 부분 이외에도 어떤 이에게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등대가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자신만의 취미나 의식이 등대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가 누군가의 등대가 되어줄 수도 있다.
아비의 등대 이야기를 보며 그 가치를 몰랐던 때가 떠올라 글을 적어보았다. 등대의 가치를 알게된 지금은 그때보다 더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그때의 내가 가진 유일한 등대가 가족이었던 것처럼. 앞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등대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살아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