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고 있는 모든 김사원에게
최근 굉장히 핫했던 <<서울에 자가 있고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라는 드라마가 굉장히 각광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아버지 세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잔잔한 위로와 위안을 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좀 과장되게 연출한 부분도 있지 않은가 싶었는데,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고 좀 더 재밌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보면 그냥 웃어넘길 만했다.
난 이제 30대를 시작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부장이 아닌 사원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짠한 김부장이 아닌 팀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김사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김사원은 적당한 지방대학에 진학했다.
서울권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과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대학생 시절 그 누구보다 학업에 집중했고 대외활동도 하며 스펙을 쌓아나갔다.
이런 노력의 결실이 맺어진 것처럼 대기업에 입사하여 의젓한 사회인이 되었다.
'축하해', '부럽다', '어떻게 들어간 거야?' .....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느껴지고 마치 내가 대기업에 걸맞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올라가곤 했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하던 것만큼 청록빛은 아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살 만한 곳을 찾아보니 월세 80만 원은 기본이었고 전세는 매물이 씨가 말라 구하기 녹록지 않았다. 어찌어찌 반전세로 조그마한 원룸 하나를 구해 계약하고 나오니 벌써부터 서울살이가 쉽지는 않겠다는 기분이 확 몰려왔다.
회사는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자율출퇴근이라고 해서 8시 출근하여 5시 퇴근을 꿈꿨지만 8시 넘어서 퇴근하는 날이 다반사였고, 이럴 거면 그냥 10시 출근을 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기 일쑤였다.
입사하기 전 퇴근 후 이것저것 취미생활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겠다던 김사원의 다짐은 한 달도 안 돼서 물거품이 되었고, 지금은 그저 27인치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톱니바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고 첫 월급이 들어오는 날, 월세, 대출이자, 관리비, 식비, 교통비, 핸드폰비 등 지출해야 할 것들을 정산하고 나니 남은 액수를 보고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왔다.
'대기업...?'
쥐뿔도 아닌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돈도 많이 받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면서 불평불만만 해대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김사원은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가엽게 느껴졌다.
무언가 보상받는 느낌을 받았던 입사 전의 모습이 어쩌면 앞으로 있을 나날들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겠구나 하면서, 내일도 어김없이 출근하기 위해 알람을 확인하며 잠에 든다.
이야기 속 '김사원'은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청년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아왔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사회 속에서 김사원은 적응하기 위해 힘써야 했고, 하루하루 버티는 게 어느새 목표가 되어버린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내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비록 내 이야기지만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김사원, 이사원, 허사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파랑새는 언제 오나요'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문장 같다.
파랑새는 없다고, 그걸 바라고 버티려고 하면 너무너무 힘들 거라고.
그럼에도 난 놓지 못했다. 언젠가는 끝이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치 행복한 나날들의 연속은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더라 ㅎㅎㅎ
돌이켜 보면 파랑새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입사하고 어리숙한 나에게 모르는 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라고 말씀해 주시고, 너무 힘든 날에 표정을 읽었는지 커피 한 잔 사주시면서 같이 산책해 주셨던 다정한 동료분들.
오래 걸리고 실수도 했지만 짜증 부리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셨던 고객사분들.
4개월간 미친 듯이 야근하면서 일했지만 성공적으로 서비스 런칭을 해서 뿌듯했던 프로젝트.
이 외에 하루가 쌓여 좋은 감정들이 깃들었던 시간들....
그때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이 지나고 보니까 하나같이 소중하지 않았던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가 내게는 크지 않다.
'제가 일했던 3스타가 저를 3스타로 만들어주진 않더라고요'
흑백요리사에 출연하신 손종원 셰프님의 이 한마디가 모든 걸 정의해 준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내가 그 수준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건 미성숙한 나라는 존재에게 오늘 하루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무언가 선물해 주는 것.
맛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달해 줄 작은 선물이 될 수도 있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가끔 밑바닥인 것처럼 느껴지고 모든 것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껴지더라도 절대 여러분의 탓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그냥 그런 날인 것뿐이다.
서툰 하루라 할지라도 자책하지 말자. 정말 괜찮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처음 살고 있는 하루니까.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잠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한마디 해주길 바란다.
'괜찮아!!!'
- 어디서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모든 '김사원' 분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