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리뷰

허무주의, 선과 악, 메시아, 종교 등 이것저것 개많음

by 지라르


드디어 진격의 거인을 다 봤습니다.


사람들의 진격거에 대해 호들갑을 떨면

킹 받아서 보기 싫었는데,


저도 똑같이 호들갑 떨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일단 떡밥회수가 기가막힙니다ㅜㅜ


진격의 거인이 떡밥을 잘 뿌리고 그걸 기가 막히게 회수해요


그래서 떡밥회수면에서 대단한 작품인데,

진격거는 단순히 ‘떡밥을 잘 회수한다’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아요.


어떤 비밀스러운 장면을 볼 때

자세한 내용까지는 유추하기 힘들지만

나중에 이 비밀이 풀리겠지 생각하며,

인지 정도는 보통은 하는데,


진격거는 보는 사람도 모르게 떡밥을 뿌리고,

회수할 때 ‘그 장면이 사실 그때의 복선이었어?’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들어요


예전에 봤던 장면과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연결하는데,

이때 오는 카타르시스를 정말 많이 느꼈습니다.


'다이나 프리츠'가 그 거인이었어?

이 때 심장 멎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심장을 바쳐야 해서 멈추면 안 돼

심장을 바쳐야하니까!


... ㅎ


그러니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커녕

오히려 시간을 내서 봐야 되는 작품으로 저에게 자리 잡아서

이 작품은 명작을 넘은 어...갓작. 킹작이다


떡밥에 대해서는 더 할 얘기가 있어요

진격거는 보는 사람도 모르게 떡밥을 잘 뿌리지만

회수도 보는 사람도 모르게 가져간 것이 많아요


그래서 진격거를 다회차할 맛이 나요


2회차, 3회차 할 때마다

숨겨진 서사를 찾을 수 있다!


관객의 노력과 몰입에 따라 카타르시스를 더 느낄 여지가 충분한 작품


이 즐거움은

본인이 얼마나 유미르의 백성에 가깝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차등적인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괜히 진격거 봤다고 아는 척했다가

제대로 안 봤네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도 있다능 ㅎㅎ




저의 두 번째 명작의 기준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진격거는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아요
삶과 죽음이 맞닿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 누구도 100% 옳은 선택을 할 수 없게끔 서사를 만들어 놓았어요


자연스럽게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관객 스스로 하게 해요


관객이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필연적으로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지와 연결되네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물의 감정과 선택은

우리가 평소 겪어보지 못한 상황 속의 감정이라서

'이때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식의

타인의 이해를 거울삼아 나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니까


역시 진격거는 ...갓작이다!


이 글은

진격거 보고 개호들갑 떠는 글이 아니라

(그것도 맞기는 한데)


그것보다 제가 쪼랩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을 다루는 북튜버가 아닙니까


와타시 북튜버 다까라!


진격의 거인을 철학적, 심리적, 윤리적으로

더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몇 가지 책들을 키워드로 나눠서 이야기 해보려구요.


이 책들은 제가 진격거를 보면서

생각난 책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진격거를 포함한 언급하는 모든 작품들은

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주의 부탁드리겠습니다


0. 세계관 정리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정체불명의 식인 거인.

이 거인들에 의해 인류는 절멸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인류는

50m의 거대한 삼중의 벽

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를 건설하여

거인으로부터 보호받는 평화의 시대를 영위하게 됩니다.


다운로드 (8).jpeg 진격거 삼중벽



한때는 거인의 공포 속에 두려움을 떨었던 인류였지만

이제 벽으로 인해 마리아의 품속에서 안정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주인공 에렌에게 마리아의 보호는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에게 벽은 수평선을 볼 수 없게 하는 높고 단단한 벽일 뿐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외벽인 월 마리아의 문이 부서집니다.

이로서 인류는 100년간 누린 안녕과 평화가 무너지며

본격적인 '진격의 거인'의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1. 자유와 안정


진격거의 등장인물들은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다치고 죽어요


하지만 그 인원들은 소수였고,

대부분 인류는 벽 밖은 나가볼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안쪽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벽과 체제의 지배를 받아 자유는 없지만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려 한 거죠.


에이리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보면

자유는 불안과 책임의 무게감이 따르기 때문에

일부로 자유가 구속되더라도

권위 안으로 들어가는 심리를 설명해요


벽을 넘나들 수 있는 자유는 누릴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책임에 대한 부담은 없다


이런 거죠.


가볍게 얘기하면

누가 알아서 저녁메뉴를 선택해 주면 되겠다

요런 느낌?


그런데 진격거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째서 이토록 자유를 위해 희생을 할까.


그들의 싸움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자유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에 이런 문구가 나와요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가 일이 잘못되어서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자유가 정말 목숨을 희생을 하면서까지

가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자유는

인간의 속성이 그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자유는 어떤 것에 가깝나요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자유다"

-엘렌 예거




2. 영웅주의


흔히 영웅이라고 하면

대의나 이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이익을

초월하는 행동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용기와 자기희생, 그리고 명예와 결합된 미덕으로 그려지기도 하죠


진격의 거인은

하나하나가 다 영웅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너무 멋져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중에서 엘빈 단장이

영웅에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가 외친 스스메는 제 심장을 허벌나게 뛰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웅주의는 동료들의 목숨을

대가로 쓰기 때문에

작중에서 이 악마 같은 놈,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불려요

(쓰레기는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영웅주의에는

좋은 면도 있지만 안 좋은 면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엘빈 같은 인물이

그렇게 까지는 싫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의를 핑계 삼아

자신의 입지를 다지거나,

자신을 포장하는 위선적인 인물은 아니었으니까요)


어쨌든 난 이렇게는 조사병단처럼 싸우지는 못할 테니까

이 지점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겨요


1.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2. 보통 사람도 영웅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여기서 저는 두 권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는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책입니다.


이 책의 작가는 전 세계 신화와 서사를 분석해.

“영웅의 탄생과 여정”에 공통된 구조를 제시합니다.

책에서 제시한 영웅의 여정에 엘빈을 대입해 보면


엘빈은 평범한 학생이자 한 교사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호기심 많던 소년 엘빈은

수업시간에 질문을 던집니다


“왜 벽 밖에 인류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어요?"


그의 질문에 수업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말을 하지 않지만,

집에 돌아와 그에게 충격적인 진실의 단서를 전합니다.


그 단서는 이렇습니다


정부의 공식 역사가 모순투성이이며,

벽 밖 인류의 존재했으나

정부가 사람들의 기억을 개조했다는 가설이었죠.


어린 엘빈의 순진한 입방정으로

이 사실이 군국에 새어 나가

결국 아버지는 숙청됩니다.


이 사건으로 세상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천명으로 여기고 나아갑니다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는 이 과정을

"모험의 부름" 이라고 하더군요.


그 외에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조력자나 스승의 존재가 필요하고

연속적인 시련과 보상 또한 필요합니다.


정을 수락하고 그 길에서 포기하지 않은 자.

바로 영웅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정을 수락하고 그 길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은 쉽지만 행동하라고 하면 무진장 어렵습니다


모두가 조사병단처럼 거인과 맞서 싸울 수는 없어요

적어도 저는 못 싸워요.. ㅎ


그러면 보통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없는 건가?


이 질문에 떠오른 책은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석탄을 나르며 아내와 다섯 자식을 키우는

아주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일 때문에 어느 수도원에 갑니다.

그런데 거기 있던 애들이 뭔가 좀 이상했어요.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머리는 엉켜져 있는 상태였으며

신발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바닥을 막 닦고 있었죠.


이런 모습도 이상한데,

자기를 발견한 애들 반응도 이상했습니다.

그저 사람이 들어온 것뿐인데 경계가 심했었죠,


그러던 와중에 한 아이가 다가와서

도와달라는 말을 합니다.


주인공은 어으어으어엉

하면서 버벅거려요


그러다 수녀가 나타나 아이를 감쌌고

허겁지겁 일 얘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옵니다.


그때부터 엄청 고민해요.


나서야 할 것 같은데

내 자식과 아내를 생각하면 쉽지 않았고,

하지만 안나서기에는 죄책감이 그를 압박합니다.


주인공은

오랜 결심 끝에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소설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입니다


저는 이 책의 주인공이 정의감에 불타서

아이들을 보자마자 고민도 없이

구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좋았어요


고민하는 모습이 저와 같아서 위로가 되었거든요.


물론 그 또한 대단한 결정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리바이, 엘빈 그런 인물들보다는 인간적입니다.


평범하고, 정의감이 강하지 않는 사람도

보통의 수준에서 영웅적인 행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거리를 주는 것 같아서

진격의 거인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백성을 지키지 않는 왕은 이미 왕이 아니다.
반드시 찾아내서 겁쟁이 왕으로부터 「시조 거인」을 빼앗아라."

-그리샤 예거




3. 선과 악


진격의 거인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작품에는 명확한 선악의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프리츠왕은 악이 확실하긴 해. 미친넘임)


작중 인물들은 각자의 ‘정의’를 믿고 행동하지만,
그 정의는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예를 들어, '샤비'나 '라이너' 같은 인물은
‘교육을 통해 주입된 악’을 믿고 자라죠.


그들에게 벽 안의 인류는 괴물이고,
그 괴물을 처단하는 것이 정의였습니다.


그리고 괴물이라고 생각한 파라디 섬의 사람을 죽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벽 안 사람들을 보고, 함께 숨 쉬며,

악마라고 생각한 그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때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세계


그 순간 ‘누가 악인가’가 아니라,
‘누가 우리인가’를 묻게 돼요.


선악의 모호함을 다루는 게

복잡한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잘 다뤄야 해서

어렵고, 어렵지만 진격거처럼 잘 다룬다면 명작에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선악의 모호함을 잘 다룬 작품 중 하나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입니다.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이 애니메이션이 자주 떠올랐어요.


내용을 잠깐 말해보자면,

배경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시대에 독일에

한 천재 외과 의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 앞에 위급한 환자 나타납니다.

천재 외과 의사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병원장의 연락을 받습니다


지금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환자로 왔다


의사는 큰 생각 없이

오페라 가수를 수술합니다


수술은 대성공


하지만 먼저 온 환자는 죽게 됩니다.


그 환자의 아내는 복도에서 울고,

주인공을 보자 달러와 하소연을 합니다.

왜 내 남편이 먼저 왔는데 수술이 미뤄지냐고


그는 당황합니다.

그러면서도 원장님 지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정당화하지만,

죄책감은 그를 압박합니다.


그러던 중

머리에 총상을 입어 위급한 소년이

그의 앞에 환자로 나타납니다


그는 소년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으나

또 한 번 병원장이 연락이 옵니다.


지금 시장이 위급하게 왔다고,

그를 먼저 살리라고

하지만 의사는

원장의 말을 무시하고 눈앞의 소년에 최선을 다합니다.


결국 시장의 수술은 다른 의사가 맡게 되지만

죽게 됩니다.


하지만 소년의 수술은 성공해요


그때부터 의사는 병원 정치에서 밀려나고,

그의 약혼녀였던 원장의 딸과도 파혼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아직 깨어나지 않는 소년 앞에

자신의 상황을 푸념하듯 얘기합니다.

그러다 감정이 북받쳐 원장을 죽이고 싶다고 말해요


진정을 찾은 의사는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소년에게 말합니다


고맙다. 너 덕분에 생명의 가치를 알게 되었어.


그는 비록 병원 정치에 밀려나지만


생명은 돈으로 차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는 신념을 지킵니다


며칠 뒤, 병원 원장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원장이 죽자 의사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빠르게 승진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이제는 청년이 된 그 소년을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그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선행으로 살린 소년이

사실은 연쇄 살인마였다는 것을


의사는 의사로서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는 신념을 지켰고

직업윤리를 지켰다 생각하며 이 충격을 떨쳐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이 살린 지금은 청년이 된 그 소년의 악행을 멈추겠다 결심을 하고

병원을 나와

저지하러 떠나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선행이 악행으로 돌아오고

옳다고 생각한 신념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파괴로 돌아온다면


그 세계는 회색지대로서

모순을 해석하기 바쁜 세계일 것입니다.


<몬스터>도 그렇고

<진격의 거인>도 그렇고

이런 회색지대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회색지대는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회색지대를 잘 표현한 다른 작품들을 함께 보며

비교해 보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격의 거인을 보며

옳고 그름이 복잡해질 때 우리가 충격을 받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강요받고 자란 게 아닐까요


4. 선택의 강요


진격의 거인 세계관은

헬파티 세계관으로

허무가 만연하여 좌절의 연속입니다


그 속에서 조사병단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아요.


마이클센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 짓거리를 잘해두었어요


전차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 전차는 앞에 5명이 묶여 있는 선로로 향하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서 있는 곳에는 레버(전환기)가 있습니다.
그 레버를 당기면 전차가 다른 선로로 갈 수 있는데,
그쪽 선로에는 1명이 묶여 있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레버를 당겨→ 1명 죽고 5명 살게 한다면
다수의 행복을 중심으로 한 공리주의적 선택을 할 수 있고


레버를 당기지 않아 → 5명 죽고 1명 산다면 → “의무론적 선택”
사람을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는 의무론적 선택 즉 칸트식 도덕을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레버를 당겨 1명을 죽이고 5명을 살게 한다고 했을 때

그러면 그 한 명이 나랑 굉장히 친한, 내가 아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선택을 강요하여 독자를 압박하는 짓거리를

<정의는 무언인가>가 기가 막히게 합니다


진격의 거인에서 주연들에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게 딱 이 느낌이에요


무엇을 선택해도 모두가 행복할 수 없어ㅜ

누군가는 피해를 받아

그리고 넌 그 선택의 책임을 저야 해

그럼에도 넌 선택해야 해

자 이제 이 둘 중 무엇을 선택할래?


이런 느낌이에요


웹툰 <가담항설>에서 이런 내용이 나와요


한 신하가 다른 신하들이 반정을 하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조정을 떠나요.


그 반정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어떤 이유로

절벽 아래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신의 대리자가 말합니다


알아 네가 우리에게 모종의 계획을 미리 알렸다면 넌 밀고자가 되었겠지.
그저 두고 보기엔 방관자가,
참여하기엔 가담자가,
반대하기엔 배신자가 되었을 너를 이해해.
너는 언제나 옳은 길을 가려했으니,
결국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했을 거야.
다만 그게 너의 양심에서 나온 결정일까.
아니면 그 어느 것도 감당하지 못하고
모든 선택에서 도망쳐버린 너의 나약함일까?
이곳에서 투신하려는 지금의 너는 어느 쪽이지?

-가담항설 중-



선택이라는 건 잔인합니다


작중에서도 리바이는

엘빈의 마지막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나는 선택하겠어. 꿈을 포기하고 죽어줘.
신병들을 지옥으로 보내줘.
짐승 거인은 내가 해치운다

-리바이


그러고 나서도 리바이는

엘빈이 아닌 아르민을 살리는 선택까지 합니다


이제 리바이는 엘빈의 죽음까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해요


어떻게 이야기를 이렇게나 가혹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런데, 그 가혹한 순간이

진격의 거인에서는 거의 매회마다 나와요


이런 선택을 매번 강요하는 세상이면

인간을 초월한 어떤 존재

즉, 신이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진격의 거인은

공허하고 황폐하기 그지없는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엘렌이 메시아적 존재로 각성합니다



5. 메시아와 종교


에렌 예거는 구원자이자 파괴자라는 이중적 상징성을 지닙니다.


땅울림을 반대하는 자에게 파괴자이고
‘예거파(Yeagerists)’에게 그는 구원자예요.


만약 예거파가 없었다면 앨런은 파괴자로만 있을 겁니다

어떠한 메시아도 추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그들은 에렌을 에르디아 민족의 ‘구원자’로 숭배하며,

그의 쿠데타, 대학살까지도 ‘민족생존을 위한 필요악’으로 정당화합니다.


그래서 엘렌의 계획에 군사적, 대중적 지지를 제공하며

정당성과 신성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요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개인의 도덕 판단을 마비시키고,

정치적 운동을 죽음의 숭배로 변질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작품이 떠오릅니다.


바로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Dune)》입니다


<듄>의 주인공 폴은 "퀴사츠 헤더락"으로
이는 종교적 예언이자 정치적 도구로,


작중 비밀 종교집단에서 수세대를 거쳐 유전자조작으로 만들어낸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종교집단이 유전자조작만 한 것이 아니라

훗날 "퀴사츠 헤더락"이 정치적인 지지를 받게 하기 위해


세계관 가장 중요한 물질이 나오는 행성의 주민들에게

어떤 종교를 심어 퍼트리게 합니다.


"훗날 한 예언자가 나타나 우리(프레멘 종족)를 구원해 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폴은 이 해성의 주민들에게 나타났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전쟁을 일으키죠


그를 신격화하여 지지하는 세력들 덕분에

파괴자이지만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진격거의 엘런도 그렇고 듄의 폴도 그렇고

메시아적 시선으로 본다면 주인공에게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이게 진격거가 대단한 점 같아요.

여러 키워드와 작품을 비교하며

나의 생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종교 공학적으로 봐도 이 두 작품이 비슷한데


월교라고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벽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진짜 벽을 숭배했다기보다

왕족 입장에서 사람들이 벽을 좋게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정치적 입장이 있기 때문에 월교를 만든 것으로 보였죠.


모든 사람이 벽을 무너트리면

왕가는 무너지니까


영화 〈듄〉에서도 이와 유사한 '종교의 공학적 설계’가 드러납니다.

폴이 메시아로 추앙받는 배경에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비밀 종교집단(베네 게세리트)이


여러 행성의 민중들에게

수 세대에 걸쳐 ‘예언의 씨앗’을 뿌려둔 결과가 있었죠.


‘언젠가 외부에서 구원자가 찾아와 우리를 이끌 것이다’라는

신화를 퍼뜨렸습니다.


이는 종교라기보다 정치적 보험이었습니다.


그 믿음의 틀은 이미 오래전에 권력에 의해 설계된 신앙 체계였습니다.


어쩌면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믿음을 이용하기 위한

종교적 설계는 필수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네요.



6. 허무주의


이게 애니메이션으로 봐서 그렇지

실제 진격거 세계관에 내가 놓여있다고 상상하면 사람 미칩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거인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해.

거인은 얼굴도 빡세.

임무 나갈 때마다 내 옆에 동료가 계속 죽고,

동료가 죽더라도 최소한 뭐라도 얻으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야

그래서 다 포기하고 걍 벽안에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초대형거인이랑 갑옷거인 나타나 벽 문을 와당탕탕 부수어서

자유는커녕 안정된 삶도 못살아


이 세계관 사람들은

난이도 극악 모드에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로 태어나는 건데

이 정도면 안티크라이스 해도 이해해줘야 해요



어쨌든 뭘 해도 헤쳐나갈 수 없는 세상에서는

필연적으로 허무를 겪을 수밖에 없어요.


어차피 노력해도 행복할 수 없는데,

어차피 노력해도 자유로워질 수 없는데

어차피 노력해도 죽는데,

어? 사람은 원래 죽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지?


제가 인상 깊게 봤던 릴스 중에

신해철 님이 생전에 했던 말이 있어요.


내가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미래를 1달 뒤든 1년 뒤든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오늘 땀을 흘리고 있는 거하고

아무것도 디자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늘 하루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정말 달라요.


그거라도 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사람은 그게 몸이 힘들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고요.

보이지 않으니까 못하는 거지



꽤나 인상 깊었습니다.


미래를 디자인할 수 없을 때

허무는 무대 위에 주인공이 됩니다.


허무주의와 관련해서 제가 알기로 가장 유명한 소설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입니다


오랑이라는 도시에 페스트라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아요.

페스트에 걸리면 무조건 죽고, 치료방법 따위는 없어요


걸리면 고통스럽게 있다 죽어야 해.


결국 이 도시는 파라디 섬처럼 폐쇄가 되어

페스트를 마주합니다.


페스트라는 대재앙 앞에 인간은

어떠한 긍정적 미래를 디자인할 수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이었죠.


이 소설은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

인간은 다양한 군상을 보여줍니다


- 전염병의 도시인 오랑을 벗어나려는 도피,

- 페스트를 신의 심판이라고 받아들이는 순응

- 아무리 돌봐도 호전되는 환자는 없이 계속 죽지만

그럼에도 환자를 살피는 의사의 저항

- 전염병? 오히려 좋아라고 외치는 환영

- 누군가는 이 참상을 남기려고 하는 기록


진격의 거인에서도 이 군상들이 다 나온 것 같아요

도피는 안쪽으로 도망가고 싶은 사람들

순응은 애니메이션 2화 초반에 보면 이제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혼자서 외치다가 잡아먹힌 인물이 있어요

저항은 당연히 조사병단

환영 : 거인? 벽? 난 이게 좋아 => 악질 라이스(프리츠) 가문

이 밥 가문, 밥밥비라라 가문이 원흉이야

기록은 뭐 없나? -> 지라르(영상으로 지금 역사를 기록하는 중임)


다 나왔네요.



전염병에 오히려 좋아라고 환영하는 사람이 가장 신기했는데,

이 인물을 자세히 보니까 약간 이해가 되긴 했습니다.


이 인물은 범죄로 인해 체포될까 불안감에 시달리지만,

페스트가 창궐하여 자신만 겪던 개인적 불안감이

도시 전체의 거대한 불안감 속에 묻혀버리자

오히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인물이에요.


비슷한 상황으로는

"좀 100"이라는 만화에서

엄청 노력해서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간 주인공이

그곳에서 온갖 부조리를 겪게 됩니다.


주인공은 점차 생기를 잃어가며 삶의 의지가 정말 꺼지려는 찰나에

세상에 좀비가 창궐해요.

주인공은 좀비의 소식에 눈이 반짝이며


"나 이제 회사 안 가도 돼?"


이 사람에게는 오히려 좀비가 있는 세상이

자유와 평화의 세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재앙 앞에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

의사 리우는 묵묵히 환자를 돌봄으로써 저항합니다


환자를 돌보아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지만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암담한 허무 속에서 나아가는 방법은

자신의 맡은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격의 거인에서

엘빈 단장의 마지막 연설은


상당히 극적입니다


거인을 죽이기 위해서는 시선을 돌릴 미끼가 필요한데

그 작전에는 병사들이 그 거인을 향해 돌진해야 했죠.

이 거인은 요염하게 돌 같은 걸 대포처럼 던져서

사실상 대포를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았죠.

대원들은 절망합니다. 죽어라는 거니까.


그러니


한 병사가 얘기합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의미가 있나요?

싸우다 죽든 명령을 어기고 죽든 의미 없는 거잖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lgHgDevaRxs

www.youtube.com

image.jpg

[진격의 거인 3기 명장면] 2쿨 4화 (3기 16화) 엘빈 연설 & 돌격씬



그의 마지막 연설로

병사들은 극도의 허무에도 돌진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게 가능한 까닭은

그의 연설이

나의 존재가 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

남은 사람에게 어떻게 의미를 줄 것인지를

되새기며 관계의 힘을 이야기해서 인 것 같아요


엘렌 아빠에게 진격의 거인을 계승하기 전에

그리샤 예거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든 자식이든 이웃이든 좋으니까

벽안에서 사랑을 해라

그러지 못하면 되풀이될 뿐이다

같은 역사를 같은 증오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어쩌면 진격의 거인 작가는

증오를 끊어내기 위한 유일한 길을

관계의 힘을 믿고 나아가는 것.

이라고 믿고 우리에게 말하는 게 아닐까요?




7. 아웃트로

요즘 책이야기를 적게 해서

마음이 약간 무거웠는데,


이번에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제 머릿속에 다양한 책이 떠올라서

이 리뷰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할 얘기가 많지만, 체력이슈로 들어가서 쉬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즐격거 하시길 바랍니다


땡큐






토요일 연재
이전 07화『남한산성』, 말과 살의 성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