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자꾸만 나쁜 예감이 들었다.
레나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로트만과 직접 마주해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레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야 할까?
후자는 너무 비겁해 보였다.
도망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불행한 일을 겪는 것일까.
로트만!
그날 로트만이 들었던 소리는
모두 맞는 말이었다.
틀린 게 없었고, 옳은 말이었다.
옳은 말을 듣고도 그렇게나 비뚤어질 수 있을까?
자존심을 긁힌 건가.
확실한 건 하나였다.
어쨌든, 로트만을 만나야 한다는 것!
몇 명이든 덤벼도 싸움이라면 질 자신이 없었다.
로트만이 데리고 다니는 놈들이
어떤 수준이든 간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들을 제압해서 겁을 주면,
더는 레나를 건드리지 못할 수도 있다.
문제는 겁을 준다고 해서
그가 진짜로 물러설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뒷골목에서 자라난 놈이다.
무지하고 무모하며,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놈이다.
힘 앞에 굴복한 척은 하겠지만,
마음속까지 꺾이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더 큰 힘을 끌고 와서,
나와 내 주변을 철저히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내가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나?
나는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레나가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자존심쯤은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화로,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어릴 적 성경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한 아이에게 겁을 주고 괴롭혔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싱클레어.
나는 그 아이에게 시기심을 느꼈고,
동시에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를 파괴하려 했다.
힘으로 꺾어 정신까지 짓밟으려 했다.
선생들이 말린다면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며,
몰래 다시 찾아가 괴롭혔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을 그만두게 만든 녀석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데미안.
그의 말은 힘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리석은 행동을 멈출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멈춘 이유는
단순히 남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뚤어진 나를 되돌려
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데미안은 그 길을 보여주었다.
내가 로트만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은 든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데미안처럼 로트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를 이해할 자신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데미안처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로트만에게 분노하고 있으니까.
그를 이해하고 싶지도,
용서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칠 것 같은 분노 속에서
나를 억누르는 단 하나의 마음이 있다.
레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런 생각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로트만이었다.
혼자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를 보고 피할까, 다가갈까 망설였다.
그때, 로트만이 나를 발견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트만은 순간 눈을 피했다.
혼자였기에 더 긴장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눈을 다시 들었다.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내게 다가왔다.
손이 살짝 떨렸지만,
내 시선이 거기로 향하자 황급히 숨긴 것이다.
"니 녀석, 오랜만이군."
나는 짧게 대꾸했다.
"그래, 저번에 술집에서 봤지."
"너, 그 술집 여자랑 무슨 사이라도 되냐?"
"그건 왜 묻지?"
"알려줄 수도 있잖아? 혹시 그 여자랑 이거라도 되는 거냐?"
그는 새끼손가락을 치켜들며 비열하게 웃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 여자의 뒤를 봐주면서
뭐라도 바라는 거냐?"
그 순간,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 이상 말하면 나도 참지 않아."
바로 그때, 그의 뒤편에서
두 남자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덩치가 컸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그들의 눈빛은 기선제압을 하려는 듯 매서웠다.
로트만은 그들을 힐끗 돌아보더니,
자신감이 생긴 듯 비웃었다.
"그래. 안 그래도 그년부터 어떻게 하고 나서,
너도 찾을 생각이었거든."
"넌 그렇게 할 수 없어."
"정말 못할 것 같아?
방금 그년이 어디 있는지 찾았거든."
그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로트만은 뒤에 있는 남자 중 하나에게 말했다.
"마르코 씨, 그년 여기로 데려와요."
"알겠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본능이 먼저 반응했다.
주먹이 로트만의 얼굴로 날아갔다.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처음 맞아본 듯, 그 충격에 놀란 얼굴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아프다며 괴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마르코라고 불리는 남자는
다시 돌아왔고,
로트만의 뒤에 있던 남자와 함께
동시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첫 남자가 달려드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벽 쪽으로 몸을 틀어
간신히 피했다.
그의 어깨가 벽에 세게 부딪혔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게 찔렀다.
남자는 한쪽 팔을 움켜쥐며
숨을 몰아쉬었지만,
금세 균형을 잡고 다시 일어섰다.
두 번째 남자는 빠르고 정확했다.
그는 내 팔을 낚아채며 몸을 틀더니
다리를 내 다리 사이로 넣어 나를 넘어트렸다.
땅에 닿는 순간,
등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퍼졌고,
숨이 턱 막혔다.
그는 내 위에 올라타고
주먹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동시에 발길질도 당했다.
아마 옆구리에 주먹을 맞은 남자일 것이다.
이마에 주먹이 박하고,
허벅지에는 발이 박혔다.
눈앞이 번쩍이며 흐려졌고,
정신이 아찔했다.
나는 겨우 그의 손목을 붙잡고
옆으로 몸을 비틀어 구르며 벗어났다.
숨을 몰아쉬었다.
나를 넘겼던 남자가 다시 주먹을 뻗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피하며
그의 복부를 향해 발을 뻗었다.
그는 숨이 끊기는 듯 주저앉았지만
곧 다시 일어서려 했다.
그 순간, 나는 주먹을 모아
턱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몸이 뒤로 젖혀지며
벽에 부딪혀 털썩 쓰러졌다.
그러나 다른 한명이 다시 돌진했다.
그는 내 허리를 감았다.
우리는 다시 뒤엉켜 바닥에 구르며
격렬하게 싸웠다.
그의 주먹이 내 옆머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몸이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
레나.
그녀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나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끌어올렸다.
그의 턱을 향해 팔꿈치를 밀어붙였고,
그는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리듯 쓰러졌다.
나의 거친 숨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두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 다리는 후들거렸고 입안에는 피가 고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섰다.
아버지에게 맞던 그 시절과는 달랐다.
지금의 나는 무력하지 않았다.
이건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아직, 로트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챙—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로트만이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다가 놓친 참이었다.
그는 당황한 듯
바닥에 떨어진 칼을 다시 집으려 했지만
손이 떨려 또 한 번 놓쳤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분노로 가득 찼다.
‘이놈은… 살려둬서는 안 돼.’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로트만은 허겁지겁 칼을 들어 나를 겨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향해 발을 뻗었다.
칼이 손에서 튕겨져 나갔고,
나는 곧장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 순간, 눈앞이 붉게 물든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저 없이 칼을 들어 그의 배를 찔렀다.
그 느낌은 짧고, 허무했고, 생생했다.
로트만은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손에 들린 칼을 내려다보니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졌고,
피를 흘리며 서서히 숨이 멎어갔다.
그가 죽는 걸 지켜보는 사이,
나는 무언가 홀린 듯 칼을 들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나를 공격했던 두 남자에게 다가가
한 번씩 칼을 찔렀다.
피비린내는 더 짙어졌고,
밤공기는 서늘하게 식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