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수 없나요? 그러면 책을 읽어요.

-독서가 중요한 이유

by 김산

‘관찰의 이론 적재성(Theory-ladenness)’이란 말이 있습니다. 관찰자는 관찰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경험한 지식이나 관점으로 먼저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우리는 그림을 한 번은 어떤 사물로, 한 번은 다른 사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고, 우리가 해석하는 대로 그것을 본다.’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을 ‘오리-토끼’ 그림을 떠올려 보세요. 토끼라고 생각하면 새가 보이지 않고, 새라고 생각하면 토끼는 보이지 않은 현상 말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무언가에 관해서 ’안다(혹은 본다)’라고 말한 순간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는 토끼라고 말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새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요?

그림 하나를 보는 데도 이런 오차가 생기는데,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상황에서 생기는 착오는 얼마나 클까요? 또, 유튜브에서 새로운 소식 하나를 보고서 큰 지식을 얻은 것처럼 하는 일, 수년 전에 보았던 책 몇 권으로 세상을 아는 척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더구나 요즘처럼 변화 속도가 엄청난 시대에는 잠시 게으르게 살면 이미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말겠지요? 그러니, 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쉼 없이 자기를 성찰하는 일, 새로운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멈춰서는 안 된답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자기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요. 이미 아는 것이 많으니 더 공부할 까닭이 없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보잘것없는 인간이고, 공부가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면 사유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 내가 뱉은 말은 정당한가, 내가 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등을 두루 생각하는 일을 사유라고 합니다. 문제는 일상적인 삶을 사는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냥 사는 대로 생각할 뿐이지요. 그러니 함부로 말하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을 쉽게 비난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유하는 힘을 얻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라고 했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여행하면서 낯선 환경에 놓인 적이 많은데, 그럴 때 비로소 생각이 일어난 경험을 했습니다. 뉴질랜드 남섬에 펼쳐진 엄청난 규모의 호수를 보면서 그동안 알았던 호수를 고쳐서 알게 되었습니다. 길은 잃었는데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없어서 매우 ‘작아진 나’를 만났지요. 함께 하지 못했는데 다음에는 꼭 함께 하고 싶은 벗을 떠올렸고, 함부로 말한 이에게 미안한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 후엔 더 겸손해지고,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독서입니다. 인간은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얻습니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책으로 기록되고, 책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것이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인류의 모든 연구 성과도 책으로 남아 있으므로 책을 읽는 일은 가장 본격적이고 적극적인 학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은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줍니다. 책에 기록된 내용을 수용하거나 비판하는 사이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 말이죠.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국가 폭력’과 그 앞에 당당히 맞섰던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카뮈의 『페스트』에서는 인간 삶의 부조리를 보거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도 만나지요. 백석의 시에서 식민지 시대를 살던 이들의 상실감, 함경도의 정서와 풍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학뿐 아니라 철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 삶의 이유와 방법, 더 나은 삶을 탐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고정관념은 줄고, 다양한 사람의 삶을 이해할 힘이 생깁니다. 우리는 더 겸손해지고 너그러워져서 주변의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삶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었는데, 그가 스케치한 이탈리아 풍경이 지금의 유적과 유사한 것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괴테는 이탈리 여행 이후에 예술적, 인간적 성숙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는 세밀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이 생기면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탐구하는 태도, 보고 들은 것을 조선 사회로 돌려서 허례 의식이나 봉건적인 세태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 권의 책은 모두 여행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맬컴 엑스(Malcolm X)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감옥도 살았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스스로 글을 쓰고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전을 통째로 베끼고, 감옥 안에 있는 도서관 책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되고, 이슬람과 흑인 역사에 대한 정체성과 인종차별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힘으로 지성을 갖춘 흑인 인권 운동가가 되었으며, 멋진 연설가이자 지도자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도 때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책은 성공적인 삶을 열어줄 힘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만 뽑으라면 여행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여행할 수는 없으니, 여행에다 하나를 보태겠습니다. 독서입니다. 이 둘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여러분의 말에 향기가 묻어나서 여러분 곁으로 고운 사람이 모여들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요. 그럴 사정이 안 된다고요? 그러면 도서관으로 오세요.

2025.7.10. 지산